‘합의안’ 진상 규명 가능한가
“예전 진실위 인적 구성 좋았지만
국정원 비협조, 아무 의미 없었다”
“예전 진실위 인적 구성 좋았지만
국정원 비협조, 아무 의미 없었다”
여야가 합의한 세월호 특별법에 세월호 유가족들이 반발하는 이유는 수사권 없는 진상조사위원회가 제구실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특별검사 추천에 유가족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진상조사위에 유족들이 참여하더라도 진실규명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8일 박범계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변인은 박영선 원내대표와 세월호 가족대책위 대표단의 면담 결과를 전하며 “가족들에게 진상조사위 ‘5(여당):5(야당):4(대법원·대한변호사협회):3(유족 추천)’의 구성방식이 갖는 의미가 크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야당이나 진상조사위의 특검 추천을 새누리당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유족 추천 인사의 참여를 보장하는 게 중요하다는 게 새정치연합의 판단이다. 자료제출권이나 동행명령권(위반 시 과태료 3000만원) 등 조사권 보장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도 마련됐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가족들은 “진상조사위에 아무런 권한이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유경근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 대변인은 “진상조사위가 자료제출을 요청하고 증인신청을 하더라도 안 나오면 그만이다. 아무것도 조사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과거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국정원 과거사위)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 참여했던 인사들도 실질적인 조사권 강화가 더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참여정부 시절 진실화해위 위원장에 임명된 안병욱 가톨릭대 명예교수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위원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위원장 임명이고 그다음이 수사권”이라며 “위원장이 의지가 없으면 위원회에 유족들이 과반으로 참여해도 견제 역할밖에 할 수 없다. 또 수사권이 없으면 허깨비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국정원 과거사위(2004~2007년)’ 위원에 참여했던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도 “시민사회에서 참여한 10명과 국정원 쪽 인사 5명으로 위원회가 구성됐지만 표결은 큰 의미가 없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실제 조사 활동에서 국정원은 물론 정부기관의 비협조에 가로막혔다는 이야기다. 한 교수는 “‘꽃삽’ 주고 난지도를 치우라는 격이었다”고 말했다.
자료제출권과 동행명령권이 보장되더라도 해당 기관이나 개인이 거부할 경우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것도 한계로 지적된다. 안경호 전 진실화해위 조사관은 “과거 현직 검사를 상대로 동행명령권을 집행하러 갔는데 본인이 거부해 강제수단이 없었고, 과태료도 행정소송을 통해 벌금이 경감되는 등 실효성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히려 증인 출석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빌미 삼아 조사 대상자가 명예훼손 소송을 건 사례도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기관은 물론 청해진해운이나 해운조합 등 민간인들을 조사할 경우도 어려움이 예상된다.
또 과거사 진실규명과 달리 세월호 참사는 현재 책임을 지고 있는 청와대·국정원·해양수산부 등 정부기관을 조사해야 하기 때문에 더욱 실질적인 조사권이 필수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안 교수는 “진실화해위는 몇십년 전 이야기이고, 조사기관이나 대상이 처벌과 상관없는 과거의 일을 조사만 했다. 그럼에도 조사가 쉽지 않았다”며 “하지만 세월호 참사는 조사 대상이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