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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윗선 지시 따랐을 뿐’ 이유로 기소 면한 직원들 처벌해야

등록 2014-09-14 21:42수정 2014-09-14 22:27

지난해 8월19일 국회에서 열린 ‘국가정보원 댓글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국정원 직원 김하영씨(왼쪽)와 민병주 전 심리정보국장이 가림막 뒤에서 의원들의 심문을 받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지난해 8월19일 국회에서 열린 ‘국가정보원 댓글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국정원 직원 김하영씨(왼쪽)와 민병주 전 심리정보국장이 가림막 뒤에서 의원들의 심문을 받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재판부 ‘트위터 글 11만건’에 대해
“선거운동 한 것으로 의심”
심리전단 직원들 기소 가능

‘공무원 선거영향 행위 안된다’
선거법 86조도 항소때 적용 가능
“검찰 그렇게 할까” 회의적 시선도
원세훈(63) 전 국가정보원 원장 등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무죄 판결이 나오면서, 정보기관이 민주주의의 핵심인 선거에서 대규모 여론 조작에 나섰는데도 처벌받는 사람이 없는 ‘사법 공백 사태’가 벌어졌다. 애초 검찰과 법원이 국정원 수뇌부가 책임질 일이라며 기소 폭을 제한했지만, 1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재판장 이범균)가 수뇌부는 구체적 지시를 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면죄부를 줬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서는 실행자라도 처벌해야 국기 문란 범죄가 유야무야 넘어가는 황당한 상황을 다소나마 바로잡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심각한 범법행위, 아무도 책임 못 묻나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는 트위터·댓글 여론 조작에 ‘정치 관여’ 책임은 물어도 ‘선거 개입’ 책임은 물을 수 없다는 궤변적 논리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재판부도 노골적으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고 문재인 후보는 깎아내린 광범위한 사이버 활동을 부인하지 못했다. 증거로 채택한 트위터 글 11만건 내용이 선거법 위반에 해당하는지 판단하지 않으면서, ‘이 글들이 선거법 위반이더라도, 원 전 원장이 구체적으로 지시하지 않았으니 무죄’라는 모순된 논리를 만들어냈다. “글의 성격에 비춰 보면 국정원 직원들이 대선 시기에 선거운동을 한 것으로 의심이 들기는 한다”고 했다.

국정원 직원들이 기소를 피한 것은 ‘윗선의 지시에 따랐을 뿐’이라고 검찰과 법원이 판단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지난해 6월 원 전 원장만 재판에 넘기면서 이종명(57) 전 3차장, 민병주(56) 전 심리전단장, 직원 김하영(30)씨와 그의 팀장, 외부조력자 이아무개(43)씨 등 5명을 기소유예했다. 서울고법은 민주당이 기소유예된 5명을 기소하라며 낸 재정신청에 대해 이종명 차장과 민병주 단장을 추가 기소하라고 검찰에 명령했다. 단, 김하영씨 등 3명은 “상급자 지시에 따라 가담한 점 등을 고려”했다며 재정신청을 기각했다.

‘윗선 지시’를 이유로 기소를 면했는데, 윗선 지시 없이 독자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판단되면 이들을 기소하는 건 당연해 보인다. 기소유예한 사건을 다시 살펴 기소하는 것은 가능하다. 가까운 예로, 검찰은 ‘탈북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의 유우성(34)씨 항소심에서 증거 조작이 들통나 무죄 선고 가능성이 높아지자 2010년 기소유예했던 외국환거래법 관련 혐의를 재수사해 사기 혐의를 추가했다. 선거법 공소시효는 선거일로부터 6개월이지만, 공범인 원 전 원장이 기소됐기 때문에 시효는 살아있다.

트위터 활동을 전담한 심리전단 안보5팀(SNS팀) 소속 직원들도 국정원법 및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할 수 있다. 검찰은 아직 이들에게 기소·입건유예 등 어떤 처분도 내리지 않았다. 아직 ‘미완의 수사’라고 볼 수도 있다.

안보5팀 직원들 수사는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을 이끈 윤석열 팀장이 직무배제를 당할 만큼 민감한 사안이었다. 수사팀은 지난해 10월 안보5팀 직원 3명을 전격 체포해 조사한 뒤 ‘범행을 부인하는 1명만큼은 구속 수사하겠다’고 주장했다. 검찰 수뇌부는 윤 팀장이 의견을 굽히지 않자 직무에서 배제시키는 무리수를 뒀다. 결국 이 3명은 제대로 조사도 받지 않은 채 풀려나고 기소를 면했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14일 “국정원 직원들은 연금을 못 받는 등 불이익이 있기 때문에 형사처벌에 매우 민감하다. 이들이 기소됐다면 ‘윗선의 지시에 의해 어쩔 수 없었다’는 양심선언이 나오는 등 일이 더 커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국정원 직원 이메일에서 발견된 트위터 계정이 증거로 채택되지 못해 트위터 글 60여만개가 날아갔다. 그를 기소했다면 본인 범행의 증거물로 간주돼 증거 판단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 적용 안 한 선거법 86조 유죄?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들 행위가 ‘선거 또는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에 해당할 여지가 있음은 별도 논의가 필요하겠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선거운동에까지 이르렀다고 보기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밝혔다. ‘공무원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 선거법 86조 위반일 수도 있으나, 검찰이 ‘공무원 지위를 이용한 선거운동 금지’ 조항인 85조만 적용했으므로 그것만 판단했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법원은 공소장 변경을 통해 피고인이 적절한 법조항으로 처벌받게 하라거나, 피고인 외에 ‘진범’의 기소를 검토하라고 검찰에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재판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85조와 86조 중 어떤 조항을 적용할지는 기소 단계부터 논란거리였다. 야당과 참여연대 등은 원 전 원장 등을 85·86조를 모두 위반한 혐의로 고발했다. 검찰도 86조 적용을 고민했으나, 국정원의 행동은 명백한 선거운동이라 형량이 더 센 85조만 적용하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검찰이 항소심에서 86조를 추가하는 건 가능하다. 86조1호는 ‘(공무원이) 소속 직원 또는 선거구민에게 교육 기타 명목 여하를 불문하고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를 포함)의 업적을 홍보하는 행위’를 금하고 있다.

결국 문제는 검찰과 법원이 최고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사법 공백 사태’를 해소하려는 의지를 지녔느냐다. 한 검찰 관계자는 “검찰이 그렇게까지 해서 선거법 위반 유죄를 받아내려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김원철 김선식 기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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