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이완구(65)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지난해 10월께부터 정홍원 총리 후임으로 꾸준히 거론돼 왔다.
이 후보자가 차기 총리감으로 떠오르게 된 결정적 계기는 지난해 9월30일 난제 중의 난제였던 여야 ‘세월호 특별법 협상 타결’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그 뒤에도 이 후보자는 12년 만에 예산안을 법정기한 내 통과시키고, 야당으로부터 5월 초까지는 공무원 연금개편안을 처리한다는 약속을 받아내는 등 청와대와 정부의 숙제들을 잇따라 매끄럽게 처리했다. 또 불필요하게 야당을 자극하는 언행을 자제해 야당으로부터도 상대적으로 후한 평가를 받아왔다. 김용준 초대 총리 후보자, 정홍원 총리, 안대희 총리 후보자 등 ‘법조인 총리’를 선호하던 박근혜 대통령이 첫 ‘정치인 총리’로 그를 낙점한 배경이다.
박 대통령과의 특별한 인연도 있다. 이 후보자는 충남지사 시절이던 2009년 당시 세종시 수정안을 추진하던 이명박 대통령에게 맞서 지사직을 던졌다. 원안을 고수하며 이 대통령과 각을 세우고 있던 박 전 대표와 뜻을 같이한 것이다. 당시 이 대통령이 이 후보자에게 총리직을 제안하기도 했지만 거부했다고 한다.
이 후보자는 스스로 ‘자기관리 결벽증’이 있다고 말할 정도로, 소싯적부터 철저하게 주변 관리를 하며 ‘큰 공직’에 대비해왔다. 그는 친인척 문제에 특히 신경을 써왔는데, 충남지사에 당선되자 친동생에게 “앞으로 충남에는 발도 붙이지 말라”고 경고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지사 시절 장모상을 당했을 때는 “신문 부고란에서 내 이름은 빼달라”고 말해 처가에서 원성을 샀다고 한다. 국회 인사청문회 등에 대비해 ‘육군 일병 제대’라는 병역 소집해제 처분 근거가 된 발 엑스레이 사진을 지금까지 갖고 있을 정도다.
다양한 공직도 두루 경험했다. 15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그는 기획재정부 전신인 경제기획원에서 사무관으로 근무하다 ‘경찰 공무원’으로 전업해 최연소 경찰서장과 지방경찰청장(충남·북)을 지냈다. 1996년 15대 총선에 신한국당 소속으로 출마해 정계에 입문한 뒤 자유민주연합(자민련)으로 옮겨 재선에 성공했다. 지사직을 던진 뒤 2012년 19대 총선(한나라당 소속)에서 재기를 노렸으나 그해 1월 다발성골수종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골수이식 수술과 항암치료 등으로 병마를 극복한 뒤 2013년 재보궐선거를 통해 세번째 배지를 달면서 화려하게 정계에 복귀했다.
서보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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