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19일 국회에서 열린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서 댓글을 단 당사자인 김하영(왼쪽)씨 등 국정원 쪽 증인들이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고법 대선개입 판단 살펴보니
“심리전단 활동은 종북세력에 대한
사이버심리전 명분 읽어낼 수 없어
특정 정당·후보자 반대한 것”
원세훈 ‘지시 말씀’ 지침으로 인정
1심서 인정 안된 증거도 대거 채택
유죄로 인정된 트위터 글 규모
11만개→27만개 2배이상 늘어
“심리전단 활동은 종북세력에 대한
사이버심리전 명분 읽어낼 수 없어
특정 정당·후보자 반대한 것”
원세훈 ‘지시 말씀’ 지침으로 인정
1심서 인정 안된 증거도 대거 채택
유죄로 인정된 트위터 글 규모
11만개→27만개 2배이상 늘어
서울고법이 2012년 국가정보원의 인터넷 여론 조작 활동을 불법 선거운동으로 판단한 것은 국가 최고 정보기관의 노골적이고 광범위한 불법활동을 법리뿐만 아니라 상식적 차원에서 단죄할 수밖에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선거 글을 보아서는 거기에서 종북세력에 대한 사이버심리전이라는 명분을 도대체 읽어낼 수가 없다”고 못박았다.
앞서 1심 재판부는 국정원 심리전단이 원세훈 전 원장 취임 이래 정부 정책 홍보와 친북세력 대응을 이유로 심리전 차원의 인터넷 활동을 해왔으므로 대선 시기라고 해서 이런 활동을 선거운동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국가정보원법을 쭉 위반했다고 보면 되지 굳이 공직선거법 위반을 추가할 필요가 없다’는 식의 논리로 봐주기 판결을 한 셈이다.
하지만 항소심은 같은 현상을 다르게 해석했다. 국정원이 정치개입이라는 불법행위를 계속해왔다는 사실을 선거법 위반 혐의에 면죄부를 주는 논리로 쓸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선거 관련 정치관여가 선거운동으로 전환될 가능성 자체가 크게 내포돼 있는 상황에서 종전의 사이버 활동을 계속 독려했다면 선거운동의 적극적 용인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정권을 홍보하면서 반대 의견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인터넷 활동을 고수해온 원 전 원장 등이 선거 시기에 넘지 말아야 할 또다른 선을 넘었다는 판단이기도 하다.
1심은 선거법이 금지한 ‘공무원의 지위를 이용한 선거운동’을 인정하기 위한 목적성·계획성·능동성이 인정되기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심리전단의 구체적 활동 내역을 볼 때 특정 정당과 후보자를 일방적으로 반대 또는 비난하는 편파적 선거개입을 한 것으로 인정된다”고 밝혔다. 항소심은 이런 판단을 뒷받침하기 위해 27만4800건의 트위트·리트위트 글을 치밀하게 분석했다.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결정되기 한달 전인 2012년 7월 선거와 직접 관련이 없는 ‘일반 정치 글’과 ‘선거 관련 글’ 비중이 역전되기 시작하더니 그해 12월 선거 관련 글은 83%까지 늘었다. 일반 정치 글 비중은 17%로 감소했다. 선거 국면을 맞아 여당 후보 당선과 야당 후보 낙선을 위해 본격적으로 나선 사실을 입증하는 수치다.
재판부는 이런 점 등을 근거로 그해 8월20일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로 확정된 이후 작성된 대선개입 글에만 선거법 위반죄를 적용했다. 이 시기에 선거에 개입한 찬반 클릭, 댓글, 게시글, 트위트·리트위트 등 13만6000여건이 유죄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은 새누리당 후보 확정 뒤 안철수 후보의 룸살롱 출입 의혹을 제기한 우파 논객의 글을 다수 리트위트하는 등 선거 일정에 맞춰가면서 쟁점에 더욱 기민하게 대응했다”고 지적했다.
원 전 원장은 자신은 세세한 내용을 몰랐으며, 통상적 친북세력 견제 활동을 독려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그가 “진짜 금년 한 해가 아주 중요한 한 해 아닙니까. 이제 총선도 있고 대선도 있고… 우리 국가정보원은 금년에 잘못 싸우면 국가정보원이 없어지는 거야” 등의 ‘지시·강조 말씀’으로 심리전단 활동에 지침을 내린 점에 주목했다. 또 “원 전 원장은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관련해 잘못된 정보가 국민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막지 못해 여론조사에서 앞서던 여당 후보가 패했다는 얘기를 한 적도 있다”며, 결국 여당 후보 당선을 위해 뛰라는 메시지라고 판단했다.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심리전단을 확대한 것도 “보수우파를 돕겠다는 의도”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원 전 원장은 “엄격한 지휘명령체계”를 갖춘 심리전단에 “심리전 수행 차원에서 적극 활동할 것을 일관되게 강조했다”는 것이다.
항소심 판단은 1심이 대거 인정하지 않은 증거를 채택한 것도 큰 차이다. 1심은 국정원 안보5팀(트위터팀) 김아무개씨의 전자우편에 ‘시큐리티’ 등의 제목으로 첨부된 파일을 “김씨가 작성 사실을 법정에서 부인했다”며 증거로 삼지 않았다. 이 파일 속에는 국정원 직원 등이 대선·정치 개입에 사용한 트위터 계정 30개가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항소심은 김씨만 알 수 있는 활동 내역이 날짜와 장소별로 기록돼 있고, 통화내역 조회 등을 통해 사실과 부합하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업무상 작성된 통상적인 문서’로서 당연히 증거능력이 인정된다고 봤다. 이에 따라 1심에서 불법행위에 쓰인 트위터 계정은 175개만 인정됐지만, 항소심에서는 716개로 크게 늘었다. 따라서 유죄로 인정된 트위터 글 규모도 11만3600여개에서 27만4800여개로 배 이상 늘었다.
김선식 노현웅 기자 kss@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