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 11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정계 은퇴 기자회견을 마친 뒤 나서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다음 총선이면 75살
노욕 아니냐 생각 들어”
동아일보에서 해직
투옥중 ‘박종철 진실’ 밝혀
6월항쟁 도화선 역할
1991년에 현실정치 입문
3선 거치며 영욕
노욕 아니냐 생각 들어”
동아일보에서 해직
투옥중 ‘박종철 진실’ 밝혀
6월항쟁 도화선 역할
1991년에 현실정치 입문
3선 거치며 영욕
“정치인 이부영이 그 멍에를 내려놓고 떠납니다.”
25년, 굴곡진 정치 여정이었지만 무대를 퇴장하는 원로 정치인의 고별사는 그리 길지 않았다. 11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계 은퇴를 선언한 이부영(73) 새정치민주연합 전 의원은 “다음 총선이면 75살쯤 되니까 노욕, 노추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고 은퇴 선언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좀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었으련만 능력과 식견이 모자라 여기서 그쳐야 하겠다. 정치를 떠나더라도 이 나라가 사람과 자연이 함께 사는 사회가 되도록 작은 힘이나마 보태면서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가 지나온 행로엔 현대사의 기복이 고스란히 스며 있다. 1975년 동아일보에서 해직되자마자 투옥됐다. 80년대엔 민주민중운동협의회 대표, 민통련 사무처장, 전민련 의장을 맡는 등 민주화운동에 투신하며 5차례 구속됐다. 영등포 교도소에 수감중이던 1987년, 친하게 지내던 교도관을 통해 ‘박종철 고문 치사사건’의 진실이 축소, 은폐, 조작됐다는 사실을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 전달해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되게 한 사람도 그였다.
1991년엔 민주당 부총재로 현실정치에 입문했고 이듬해 14대 총선 때 서울 강동갑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김대중 대통령이 만든 국민회의에 가지 않고 민주당에 남았던 그는 ‘조순-이회창 합당’에 따라 신한국당(한나라당의 전신)에 몸을 싣게 됐고 원내총무, 부총재를 지냈다. 한나라당 의원 중에서 유일하게 김대중 대통령의 6·15 남북선언을 지지해 ‘당을 떠나라’는 압박을 받기도 했다. 2003년엔 김부겸, 김영춘 전 의원 등과 함께 한나라당을 탈당한 뒤 열린우리당에 합류해 당의장을 역임했다. 현실 정치판에선 영욕이 갈렸다. 14, 15, 16대 총선에서 내리 당선됐지만 그 이후론 연거푸 낙선했고, 2007년엔 뇌물사건에 연루돼 구속되기도 했다.
그는 강동갑 지역을 맡을 후임으로 비례대표인 진선미 의원을 공개 추천했다. 동아일보에서 해직된 이후 작고한 이돈명 변호사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진선미 의원이 이돈명 변호사와 함께 일한 인연이 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후임 지역위원장을 사실상 ‘낙점’하는 것 아니냐는 당내 논란도 예상된다.
앞으로는 일본 평화헌법 노벨평화상 수여 운동 등 동아시아 평화문제나 남북문제 등에 집중할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이제부터 작은 정치를 떠나 정말로 큰 정치를 하는 셈”이라며 정계 은퇴 이후의 활동에 대한 설렘도 살짝 비쳤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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