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택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자를 지난 15일 오후 3시 광주 서구 풍암동 선거대책사무소에서 만났다. 그는 ‘김대중 정신’을 강조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선거사무소를 들어가자 문재인, 권노갑, 정세균의 이름표가 달린 화환 3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하나 될 때 이길 수 있다’는 굵은 글씨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15일 광주 서구 풍암동 4·29 재보궐선거 사무소에서 만난 조영택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는 “유권자들이 ‘야권을 재편해야 한다’고 하는 소리는 못 들어봤다”며 “무능하고 도덕적으로 부패한 현 정권을 심판하는 게 급선무인데, 야당을 심판한다는 주장은 선후가 뒤바뀐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인터뷰 내내 “새로운 지도부가 들어선 뒤 당이 달라지고 있다. 뭉쳐야 이긴다”는 말이 수시로 튀어나왔다. 천정배 후보를 겨냥할 때는 “자기합리화일 뿐이다” “김대중 정신을 음미해보길 바란다”며 목소리가 올라가고 말이 빨라졌다.
-선거가 2주 앞으로 다가왔는데 여론조사에서 천 후보에게 10~15%포인트 안팎 계속 뒤지는 걸로 나온다.
“유선전화 자동응답(ARS) 조사의 응답률은 대부분 2% 미만이다. 지금의 여론조사가 이곳 판세를 설명할 수 없다. 물론 당이 그간 제 역할을 못하고 실망을 준 것도 조사에 반영됐을 것이다. 유념하고 열심히 할 것이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 등 현 정권의 경제적 무능, 도덕적 부패를 규명하고 심판하는 게 급선무다. 광주시민이 바라는 것은 단결되고 유능한 강한 야당을 만드는 것이다.”
-여론조사의 연령별 지지도 추이를 보면 (적극 투표층인) 50·60대에서 천 후보에게 뒤지는 것으로 나온다.
“주로 정치에 관심이 많은 50·60대 남성들에서 뒤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 당이 실망감을 드린 것을 겸허하게 반성하고 개혁할 것이다. 계파 갈등, 분열로 비치는 이미지를 쇄신하고, 민생을 챙기려는 게 지금 지도부의 구상 아니냐. 여기에 힘을 보태서 나가야 한다. 50·60대 유권자 민심을 지금 속단하기는 이르다.”
천 후보는 새정치연합과 광주 소속 의원들에 대한 지역민들의 오랜 ‘실망감’과 ‘박탈감’을 파고들고 있다. 90%에 이르는 표를 몰아줬지만 ‘전국정당’을 외치며 자신들을 외면하는 배신감과, 김대중 이후 호남에서 대선 후보 한 번 배출하지 못한 소외감 등이 뒤섞여 있다.
-광주, 호남 민심이 예전 같지 않다.
“허전함이 있긴 있다. 우리 지역 출신 대권 후보도 없고, 당을 책임 있게 운영하는 모습도 안 보이니까. 우리 당이 대선에서 패배하고 3년간 여러 선거에서 실패하다 보니 광주가 실망하고 채찍질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당을 재편해야 한다’거나 ‘야권을 재편해야 한다’ ‘당이 가망이 없다’는 이야기는 나도, 우리 운동원들도 못 들어봤다. ‘잘하쇼’라고만 하신다. 전당대회를 통해서 새로운 지도부를 구성한 뒤 당과 대선 후보 지지율이 올라가며 희망의 싹이 보이고 있는데, 지지를 거둬들인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점점 좋아지고 있다.”
-동교동계 인사들의 지원 여부를 두고 진통이 있었다. 영향이 있었나?
“지난 전당대회에서 동교동계를 대변하는 호남 출신 후보가 석패하고 새로운 지도부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통합의 정신이 잘 수렴되지 않는 과정에서 나온 갈등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7개를 내주더라도 3개를 얻으라’며 통합을 강조했고, 이희호 여사도 단결·단합해야 한다고 간곡히 당부하셨다. 그 정신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동교동계 원로들이 당을 중심에 두는 것은 이론이 없는 것 같다. 전당대회 이후 서로간에 진솔한 대화가 오가지 않았나. 동교동계의 정신적 지주라고 하는 분들이 분명하게 당 선거를 지원한다고 하시니 지역민들도 더이상 (갈등에 대해) 묻지 않는다.”
-이른바 ‘친노’에 대한 광주의 섭섭함이나, 부정적인 정서가 걸림돌이 되지 않나?
“민주당을 깨고 열린우리당을 만든 것에 대한 (거북한) 정서가 있지만, 노무현 정부가 호남에 대한 배려에 힘을 쏟았다. 나주혁신도시에 에너지 공기업을 유치하고,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호남 고속철도(KTX)를 시작해 이번에 개통됐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이런 걸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당에 대한 서운함이나 오해는 경청해야겠지만 본질은 아닌 것 같다.”
-문재인 대표가 호남에 사과하는 제스처를 보여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문 대표가 ‘열화와 같은 성원을 주셨는데 대선에서 승리하지 못해 송구하다. 연이은 선거에서 실망감 드려 죄송하다’는 말씀을 광주에 오셔서 계속 하셨다. 이러한 말과 함께 진정성 있게 당의 개혁을 추구해나가면 시민·유권자가 믿어주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천 후보가 ‘호남정치의 부활’을 내세우고 있지만 안산에서 4선 의원을 지낸 그가 광주로 내려와 탈당까지 한 뒤 출마한 것에 대해 ‘명분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광구 서구갑에서 18대 국회의원을 지낸 조 후보 역시 19대 총선에서 탈당한 뒤 무소속으로 출마한 경력이 있다.
50·60대 유권자 민심 속단 일러
우리 당이 실망감 드린 것을
겸허히 반성하고 개혁할 것
민생 챙기려는 게 지도부 구상
여기에 힘 보태서 나아갈 계획
호남정치가 잘못되고 있다면
과거 당 요직에 있을 때 바꾸지
왜 이리 내려와서 주장하나
자기합리화 주장밖에 더 되나
천 후보는 책임있는 답 내놔야
-천 후보는 호남정치의 부활을 외치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어떤 정치평론가의 칼럼을 보니 ‘호남정치 복원론’이 가진 위험성을 세 가지 지적했더라. 첫째, 야권 분열의 역사적 죄인이 될 수 있다. 둘째, 지역주의 조장의 위험성이다. 셋째, 진정성이다. 호남정치가 잘못되고 있다면 과거 당의 요직에 있을 때 바꾸지 왜 이리로 내려와서 주장하나. 자기합리화를 위한 주장밖에 안 되지 않냐. (천 후보가) 이에 대한 책임 있는 답을 내놔야 한다. 호남인들의 정치적 허탈감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도전하고 개혁하는 데 주저 말아야 된다고 나 역시 생각하고 있다.”
-기존 광주 국회의원들에 대한 지역의 불만도 있다.
“호남인들의 희망을 충족하는 노력이 좀 부족하지 않았냐는 것인데, 어제오늘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고 그쪽(천 후보)에서 비판할 일은 아니다. 열린우리당이 다수당 됐을 때 잘 좀 하지, 왜 지금 와서 그러나. 책임을 통감해야 할 분들이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천 후보를 ‘철새’라고 몰아붙이지만, 조 후보도 탈당 경력이 있다.
“18대 국회 때 초선으로 죽어라 일했는데, 여성 공천을 준다며 19대 때 공천 경선에서 배제됐다. 무원칙적 공천 횡포에 항거하고 부당함을 호소하기 위한 것이었을 뿐이다. 낙선 이후 그해 대선에서 우리 당 원로들 모시고 ‘소통과 통합 지역발전 특별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전국을 두달 반 순회하며 우리 당 대선 후보를 지원했다. 지금은 경우가 다르다. 지금은 경선이라는 공정한 기회가 있는데도 어깃장 놓고 야당을 깨야 한다고 한다. 원대한 계획이 있는지 모르지만 제가 보기에는 (천 후보가) 억지스럽다.”
천 후보를 강하게 비판하던 그는 김대중 정신을 언급하며 “하나 될 때 이길 수 있다”는 선거 슬로건을 힘주어 말했다.
-하나 되면 무엇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인가?
“김대중 대통령은 자신의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라는 저서에서 후배 정치인들에게 ‘현대 정치는 대의정치고 그 중심은 정당이다. 정당 안에서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고 하셨다. 자꾸 정당을 뛰쳐나가는 사람은 옳은 태도가 아니다, 정치생명이 긴 사람도 보지 못했다고 하셨다. 김대중 정신을 추구한다고 한다면 다시 한번 이 말씀을 음미해보는 게 필요하지 않겠나. 거대 여당의 횡포에 맞서 이길 수 있고, 다가오는 총선과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호남 사람들의 시대적 염원은 정권 교체 아닌가. 뭉쳐야 정권 교체를 이루고 뭉쳐야 이기기도 하고 지킬 수도 있는 것이다.”
-조 후보가 그 적임자인 이유는 무엇인가?
“당이 정한 적법한 경선을 거쳐서 과반수 시민과 지지를 받아 후보로 나선 정통성 있는 후보다. 이곳에서 나고 자라 광주의 주요 국책사업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위원장을 했고, 나주혁신도시 유치 당시 국무조정실장으로 공공기관 지방 이전사업 조정 업무를 수행했다. 내가 가졌던 구상으로 시작했던 것들을 이제 열매를 맺고 꽃을 피워야 하는, 공인으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우리 당 슬로건인 ‘유능한 경제정당’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내 풍부한 경험도 몫을 할 수 있다. 어떠한 도전도 마다하지 않고 해나갈 생각이다.”
광주/이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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