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경남지사가 9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 있는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에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은 뒤 귀가하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팀장 문무일 검사장)의 칼끝이 다음 테마로 향하고 있다. 홍준표 경남지사와 이완구 전 국무총리를 소환조사한 수사팀은 2012년 대선자금 의혹과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2007년 말 특별사면 의혹에 대해서도 조금씩 수사 폭을 넓히는 모양새다. 한편에서는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이 사건의 출구 마련을 위해 ‘정무적 판단’을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시선도 있다.
특별수사팀은 팀 내부를 세 갈래로 나눠 수사를 진행해왔다. 수사팀에 추가 파견된 손영배 부장검사와 주영환 부장검사가 각각 홍 지사와 이 전 총리를 주로 맡고, 애초 팀의 주축이던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 김석우)는 역할을 바꿔 나머지 리스트 6인과 대선자금 및 특별사면 관련 의혹 등에 대한 기초조사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홍 지사와 이 전 총리 소환조사가 마무리돼 이제 ‘배턴 터치’ 시점에 도달한 셈이다.
수사팀은 지난 15일 성 전 회장이 설립한 서산장학재단의 충남 서산시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장학금·운영비 집행 내역 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산장학재단은 성 전 회장이 지역구인 서산·태안 지역에서 24년간 운영한 재단으로, 사실상 그의 정치 외곽조직이라는 의심을 받아왔다. 총선을 앞둔 2004·2008년 경남기업 기부금 수억원이 서산장학재단이 아닌 ‘제3의 기부처’로 갔다거나, 성 전 회장의 특별사면 청원에 서산장학재단이 나섰다는 의혹도 제기된 바 있다.(<한겨레> 4월25일치 1·5면)
그러나 대선자금 등 ‘제2라운드 수사’에서 수사팀이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전달자’가 수사팀에 협조하는 홍 지사 사건이나, 성 전 회장이 생전 인터뷰를 통해 구체적 일시·장소를 지목한 이 전 총리 사건과 달리, 수사팀이 들고 있는 단서가 구체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별수사 경험이 많은 한 검찰 관계자는 “불법 금품 공여자가 살아서 진술하는 사건에서도 무죄가 나오는 판국에 다른 정황 없이 ‘홍문종 2억, 유정복 3억, 부산시장 2억’이라는 기록만 들고 있는 대선자금 쪽은 수사 자체가 성립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수사팀은 그나마 구체적 진술이 확보된 새누리당 전 당직자 김아무개씨를 중심으로 대선자금 수사의 물꼬를 튼다는 계획이다. 한아무개 전 경남기업 자금담당 부사장은 “2012년 대선 직전 회장실에서 새누리당 캠프 관계자 김씨한테 2억원을 건넸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팀은 김씨 주변의 자금 흐름을 추적하는 한편, 한 전 부사장의 진술을 뒷받침할 보강 증거를 찾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특별수사팀은 성 전 회장 특별사면 의혹에 대해서도 기초조사를 벌이고 있다. 수사팀은 최근 법무부에 성 전 회장 특별사면 관련 자료 제출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대통령의 특별사면 자체는 ‘법이 인정하는 정치적 특혜’이기 때문에 가벌성이 없고, 직권남용 등 적용을 예상해볼 수 있는 혐의는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다. 이에 특사 관련 수사는 사실상 ‘출구전략’이라는 관측도 검찰 안팎에서 나온다. 대선자금 수사 결과가 신통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야당의 ‘특검론’을 견제하는 카드가 아니냐는 것이다.
수사팀 관계자는 “특별사면을 대가로 돈이 오간 구체적 정황이 나오거나 하지 않으면 사실상 처벌을 전제로 한 수사는 어려울 것 같다. 다만 이미 시민단체 고발이 들어와 있고 언론에서도 의혹을 제기한 상황이기 때문에 사실관계 확인 작업은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노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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