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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정치인 홍문종’을 이해하려면 그의 아버지를 알아야 한다

등록 2015-06-26 20:53수정 2015-06-28 10:14

1989년 12월 국회 5공특위에서 광주민주화운동 진압 등 의혹 사건에 관해 국회에 출석해 증언할 예정이던 전두환 전 대통령을 맞이하려고 민정당 소속 정동성(가운데), 이웅희, 홍우준 의원(왼쪽)이 모여 환담을 나누는 모습. 연합뉴스
1989년 12월 국회 5공특위에서 광주민주화운동 진압 등 의혹 사건에 관해 국회에 출석해 증언할 예정이던 전두환 전 대통령을 맞이하려고 민정당 소속 정동성(가운데), 이웅희, 홍우준 의원(왼쪽)이 모여 환담을 나누는 모습. 연합뉴스
[토요판] 커버스토리 / 홍문종과 아버지 홍우준
반공주의와 부동산…그리고 전두환을 향한 흠모
“아버지는 평생 나의 ‘경쟁상대’였고 나는 아버지로부터 자기 계발의 원천인 힘을 얻었다.”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은 자서전 <하버드로 간 악동>(밀레니엄·1998)에서 이렇게 썼다. 이렇게 쓸 만하다. ‘정치인 홍문종’을 이해하려면 그의 아버지를 이해해야 한다. 홍 의원의 아버지 홍우준 경민학원 초대 이사장은 경기도 의정부 지역에서 민주정의당(민정당) 소속으로 1981~88년 11·12대 국회의원을 했다. 1988년 총선에서 낙선했다. 홍문종 의원은 1996년 4월 총선 의정부·양주 지역구에서 처음 당선됐다. 8년 만에 아버지의 지역구를 되찾은 셈이다. 그때 41살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대통령, 정대철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의 아들인 정호준 의원만큼 인지도가 높지는 않지만, ‘2세 정치인’이라 부를 만하다.

“영원히 잊지 못할 위대한 대통령”

홍 전 이사장은 독특한 인물이다. 여러 정체성이 섞여 있다. 전형적인 반공 개신교인이자 교육사업가였고, 한편 맨손으로 부동산 자산을 일군, 인맥관리에 뛰어난 사업가였으며 주로 지역민의 이익을 추구한 정치인이었다. 홍 전 이사장의 구술을 정리한 자서전 <새총으로 무지개 쏘기>(최지연 홍문종 공저·넥서스·2010)를 보면, 그는 1923년 평북 곽산에서 태어났다. 홍 전 이사장의 할머니가 기독교를 받아들였고 아버지도 신자였다. 모태 신앙인 셈이다.

우선 투철한 반공주의자였다. 홍 전 이사장은 북조선 노동당이 집권하자 6·25전쟁 전 월남했다. “공산당들은 기독교를 탄압하기 시작하며 말을 듣지 않는 목사님들을 줄지어 잡아들였고 우리가 다니는 평양 성도중학교도 ‘평화중학교’라고 이름을 바꾸도록 지시했다”고 자서전에 썼다. 홍 전 이사장의 반공주의는 몸에 깊이 밴 것으로 보인다. 1987년 10월 12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당시 민정당 소속 의원인 홍 전 이사장은 내무부(현 행정자치부) 장관을 상대로 “지난 노사분규와 대학가에서 외쳐지는 그 구호는 글자 한자 틀리지 않고 이북 북괴들이 부르는 구호와 또 그 주장이 거의 같았다고 생각을 합니다…공산당들의 갖은 비행을 제 자신이 당하고 체험한 저로서는 이런 구호만 들릴 때도 등에 참 땀이 오싹할 정도로 나고 있는 그런 지경입니다”라고 말했다.

맨손으로 자산을 이뤘는데, 비결은 ‘부동산’과 ‘인맥’으로 보인다. “그 무렵(1960년대) 대한민국에서는 재건의 바람이 불었다. 공기 좋고 물 좋은 서울 근교에 시범주택을 짓는 정책을 세워 지원금까지 나왔다. 나는 정책을 따라 대지 100평에 건평이 25평, 30평짜리 고급주택 30채를 짓기 시작했다…문제가 생겼다. 집은 다 지었는데 전기와 상수도가 연결되지 않았고 버스 노선이 없어 집을 사겠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이었다. 그러자 초조해진 업자들이 달려왔다. ‘교장 선생님! 남의 돈을 안 갚으면서 학생들을 가르쳐요?’”

자산형성 비결은 부동산과 인맥
남의 돈 빌려 집을 지은 뒤
인맥으로 버스노선 끌고 와
지가 폭등하자 부동산 차익

재력 바탕으로 경민학원 설립
아들 홍문종 의원도 이사장 지내
1978년부터 공화당에 공천신청
1981~88년 민정당 의원 지내

자서전을 보면, 홍 전 이사장은 친구의 조언에 따라 아는 사이였던 윤치영 당시 서울시장을 찾아갔다. 결국 버스노선 확장을 따냈다. 이번엔 자신이 따낸 버스노선 주변 땅을 추가로 샀다. 자서전에서 홍 전 이사장은 대놓고 개발정보 취득을 통해 불로소득을 올린 것을 자랑한다. “150원씩 주고 샀던 땅을 10배인 1500원을 주고 샀고 열흘 후에 버스가 들어왔다. 하루아침에 3000원 하던 땅이 5만원으로 올랐다. 팔리지 않던 주택 역시 시장가격보다 다섯배가 뛰었다.” 자서전의 서술은 정확하지 않다. ‘윤치영’을 ‘윤치용’이라 오기했다. 대체 어떤 ‘업자’에게서 무엇을 담보로 어떻게 돈을 꿨고, 윤 전 시장과 어떻게 아는 사이인지 서술하지 않았다. 윤 전 시장은 기독교인이었다. 개신교 인맥으로 추정된다. 요컨대 치부 비결은 ‘남의 돈을 빌려 집을 지었고, 인맥으로 버스노선을 끌어와 지가가 폭등하자 부동산 차익을 크게 얻었다’는 취지로 이해된다. 이런 재력을 바탕으로 1968년 학교법인 경민학원을 만들고 경민중학교를 설립했다. 이후 차례로 경민상고(1971), 경민대학(1991)을 설립했다. 인맥 관리는 기독교라는 글로벌 종교를 통해 미국과 닿는다. 의정부에 주둔했던 주한미군 사령관과 친해졌다. 미군 공병대가 홍 전 이사장이 소유한 학교의 공사를 도왔다.

성공한 부동산 자산가가 왜 정치인이 되려 했는지 동기가 명확치 않다. 자서전에 “열심히 경민학교 건설에만 몰두하던 제5공화국 때 12·12사태가 났다. 전두환 정권이 정보기관을 통해 지역사회에서 애국적인 사람을 찾더니 나를 국회의원에 출마하도록 권고했다”고 서술했다. 진실과 맞는 서술인지 의심스럽다. 1970년대 <경향신문>과 <동아일보> 보도를 보면, 홍 전 이사장은 이미 1978년에 공화당에 공천 신청을 했던 전력이 있다. ‘학교 건설에만 몰두’했던 건 아니란 말이다.

2003년 4·24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의정부선거구에 입후보한 홍문종 후보가 의정부지구당에서 당직자들과 함께 당선 뒤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3년 4·24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의정부선거구에 입후보한 홍문종 후보가 의정부지구당에서 당직자들과 함께 당선 뒤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후 자서전에 전두환 전 대통령과의 독특한 일화를 소개했다. “내가 국회의원이 된 지 3년이 되도록 시민들과 공약한 일을 이루기는커녕 진행되는 일이 없지 않나?…할 수 없이 대통령을 만나려 하자 원내총무와 당 대표가 막았다.” 홍 전 이사장은 전 대통령과 독대한 자리에서 전철 건설, 대학 설립, 탄약고 이전 등 5가지를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전 대통령이 웃으며 “대한민국의 300명 가까운 국회의원 중 국회의원다운 국회의원을 만났소”라고 말했다고 홍 전 이사장은 기록한다. 전 전 대통령은 관계 장관과 서울시장을 불러 이를 이행하라고 지시했다. 거액의 세금이 투여되는 점 등을 이유로 실무자들이 반대했다. 실제 요구가 이뤄졌는지 이후 자서전에는 명확히 서술되지 않았다. <매일경제> 1984년 5월12일치 ‘수도권의 전원풍 주거공간 의정부 지역’ 기사를 보면, 1985년에 서울~의정부 전철이 개통될 예정이라는 내용이 눈에 띈다. 홍 전 이사장이 원하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홍 전 이사장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로 보인다. 반공주의 때문인지 전 전 대통령에게서 받은 수혜 때문인지 명확하지 않다. 홍 전 이사장은 재선된 뒤 모든 의원들이 지망하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이 됐다. 1987년 10월 12대 국회 예결위 회의록을 보면, 홍 전 이사장은 “우리 전두환 대통령께서 우리 역사로 처음 단임으로 끝나시고 이제 정말 이 민주국가로서의 처음 평화적 정권교체를 하는 우리나라로서는 영원히 잊지 못할 위대한 대통령이라고 저는 이렇게 부르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홍 전 이사장은 신문에서 대통령을 ‘한구석에다 갖다 몰아넣는다’고 문화공보부 장관에게 대책을 마련하라고 추궁했다.

의원들 사이 별명은 ‘거지목사’

철저히 자신의 지역구와 교육사업에 주력한 ‘지역 정치인’의 면모를 보였던 것 같다. 민정당 소속 국회의원이었던 남재희 전 장관은 24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기자가 “함께 의정활동을 했을 때 홍우준 전 이사장에 대한 기억이 있나”라고 묻자 “잘 기억은 안 나지만 학원을 크게 했던 것으로 기억난다”고 답했다. 남 전 장관은 이어 “당시 의원들 사이에서 (홍 전 이사장) 별명이 거지 목사라는 뜻의 ‘베거 레버런드’(beggar Reverend)였다. 자기 학교를 위해서 외국기관이나 종교단체에서 도움을 많이 청하고 다녔다. 본인도 스스로 그렇게 불렀던 것 같다”며 “그러나 학원 관련 일은 많이 했지만 (홍 전 이사장의) 의정활동은 기억나는 게 없다”고 평했다.

홍 의원은 이런 아버지로부터 많은 것을 물려받은 것 같다. 하버드대학 홍보팀 설명을 종합하면, 홍 의원은 1984년 하버드 케네디 스쿨에서 행정학 석사를 받고 1992년 하버드 교육대학원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홍 의원이 하버드대학원에 들어가는 데도 아버지의 힘이 컸다. 홍 의원이 입학을 준비하기 위해 일년간 머문 리버티대는 경민대와 자매결연을 맺은 학교였다. 또한 홍 의원은 여러차례 경민재단 이사장을 지냈다. 아들이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은 사실상 ‘가족기업’이다. 이런 가족기업에서 2005년 횡령사건이 벌어졌고, 이사장인 아들은 기소되지 않고 경민대 학장인 당시 82살의 아버지가 기소돼 재판을 받은 셈이다.

2세 정치인이 ‘평생 경쟁상대’인 아버지와의 경쟁에서 이길 시간은 많지 않아 보인다. 홍 의원은 3선 의원이지만 정책, 법안발의, 상임위 활동 등 의정활동이 크게 두드러진 것은 아니다. <한겨레>가 지난 17~18일 지역에서 오래 활동한 여야 정치인들을 만났다. 홍 의원의 단점으로 권위적인 리더십을 꼽은 사람이 있었다. ‘선거 때마다 사무국장이 바뀐다’는 표현도 나왔다. 홍 의원이 아버지와 조금 다른 점이 있다. ‘베거 레버런드’라는 별명의 아버지와 달리, 대선 캠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고 집권당의 사무총장도 잠시 지냈다. 이른바 ‘중앙정치’ 무대에 선 것이다. 그럼에도 홍 의원이 ‘지역구를 물려받은 2세 정치인’이라는 흔한 평가를 넘어설 시간은 많지 않다. 60살의 3선 의원인 아들은 국회의원 임기가 1년 정도 남았다. 당장은 정책개발이나 어젠다보다, 검찰청 계단에 설 일이 더 많아 보인다.

고나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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