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BAR]
며칠 전, 프리미어 12 일본과의 4강전에서 막판 역전승의 짜릿한 기쁨이 가시지 않은 채 출근한 아침 일입니다.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 공개회의 들어가니 전병헌 최고위원이 “일본의 심장부인 도쿄돔에서의 9회 역전극은 모처럼 답답해 있고 우울해 있는 우리 국민들에게 신선함과 후련함을 주었다”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다시 한번 전날의 쾌감이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전 최고위원을 비롯해 그 뒤로 정치인들이 한국 대표팀의 역전승에 관해 이야기를 이어가면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됐습니다. 정치부 기자라서기보다는 야구팬으로서 한국 대표팀의 성취를 ‘투혼’, ‘정신력’의 승리로 보는 시선이 조금은 마음이 걸렸습니다.
전 최고위원은 당내 상황에 대표팀의 승리를 빗댔습니다.
“당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이다. 계속해서 내부적으로 싸우는 모습만 보이게 된다면 결국 남는 것은 공멸뿐 이라는 것은 우리 스스로도 국민들도 잘 알고 있다. ‘생즉사 사즉생’의 각오가 필요할 때라고 생각한다. 저는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는 문안박 연대가 어제 일본 심장부에서 국민의 가슴을 후련하게 만들어낸 9회 말 역전타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대한민국 4번 타자 이대호가 그 역할을 했다. 문안박 연대는 새정치민주연합의 4번 타자가 될 것이고 대한민국의 막강한 4번 타자의 역량과 힘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 기도하고 싶다.”
오후 문재인 당대표도 전 최고위원의 발언이 담긴 트윗을 리트윗하고 다음과 같은 트윗을 올렸습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정치 BAR’를 열었습니다. 놀러오세요!
역시 일본을 이기는 건 언제나 기분좋습니다. 특히 막판 뒤집기여서 더 짜릿했습니다. 전력보다 투혼이 승부를 가른다는 걸 자랑스런 우리 선수들이 보여줬습니다. 야구뿐이겠습니까? 우리네 인생도,정치도,선거도 그렇지 않을런지요?
— 문재인 (@moonriver365) November 20, 2015
여러분들은 지난 19일 한-일 전 승부가 정말 투혼이 좌우했다고 생각하시나요? 물론 대표팀 선수들의 투혼은 100%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투혼만으로는 짜릿한 승리가 나올 수 없었디고 생각합니다.
경기 뒤 김인식 대표팀 감독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회가 한번은 올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일본 대표팀의 선발투수 오타니 선수의 외계인 같은 투구에 3-0으로 무기력하게 끌려갔지만 한국 대표팀은 그냥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차우찬-심창민-정우람-임창민-정대현-이현승으로 이어지는 중간계투진들은 5.2이닝 동안 추가 실점을 내주지 않고 버텼습니다. 애초 한국 대표팀은 선발투수진이 약하다는 평가가 대세였지만 김인식 감독은 프리미어12 경기마다 중간투수들을 적절한 시점에 마운드에 올려 약점을 최소화했습니다.
9회 대연전극의 물꼬를 튼 오재원-손아섭 대타카드도 ‘요행’이 아니라 전략이었습니다. 경기 뒤 김 감독의 인터뷰를 보면 ‘파이팅이 있고 발이 빠른 오재원을 먼저, 정교한 손아섭을 그 다음 대타카드로 쓰려 했다”고 말합니다. 이대호 선수의 역전타도 그냥 운 좋게 나온 게 아닙니다. 이대호 선수는 “초구부터 포크볼을 던질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철저하게 포크볼을 노렸고 실제로 포크볼을 멋지게 받아쳤습니다. 일본 프로야구리그에서 뛰면서 체득한 경험이 적절할 때 발휘가 된 것입니다.
약점을 다른 대안으로 가리고, 기존에 가진 자원들을 최대한 활용해서 마지막 한 번의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은 게 한국 대표팀의 승리의 바탕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현재 총선을 앞두고 있는 새정치연합은 어떤가요? 그동안 연이은 선거패배로 기초체력은 떨어졌고, 당내 자원도 빈약한 상태입니다. 또 오타니 투수처럼 새누리당은 새정치연합이 치기 힘든 ‘공’을 연거푸 던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투혼’만으로, ‘요행’에 기대 역전타를 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현재 추진중인 문안박(문재인·안철수·박원순) 연대도 당내 논란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한방’에만 기대해서는 정치도 야구도 막판 뒤집기를 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물론 내년 총선까지는 시간이 남았습니다.
참, 정치인 중에 이분도 프리미어12 한일전 감상을 페이스북에 남기셨습니다. 첫 문장에 눈길이 자꾸 가네요^^ 4대강, 자원외교 끝날 듯 끝나지 않듯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는데 말이죠.
야구가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니듯이우리 삶도 그렇습니다. 기적의 역전 드라마는 하루 아침에 써 지는 것이 아닙니다.치열한 고민과 포기하지 않는 열정이 믿지못할 기적을 만듭니다.우리 국민들에게 다시한번 도전의 힘을 준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참으로 고맙습니다. 자랑스럽습니다.
Posted by 이명박 (Lee Myung-bak) on 2015년 11월 19일 목요일
이승준 정치부 정치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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