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미신고 집회 모이면 다 불법…
참가만 해도 채증으로 사후 검거”
헌재 “집회의 자유 보장돼야”
참가만 해도 채증으로 사후 검거”
헌재 “집회의 자유 보장돼야”
“폭력이 없다고 준법집회는 아니다”, “대규모 집회가 되면 (불법집회가 될) 그런 개연성이 농후하다.”
구은수 서울지방경찰청장은 30일 기자간담회에서 12월5일로 예고된 2차 민중총궐기대회를 불법·폭력 집회가 될 것이라고 규정하면서 ‘검거’ 위주의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조처를 강조했다. 그는 특히 “미신고 집회에 모이면 다 불법”이라며 대규모 집회 참가자들을 미리부터 ‘범법자’로 규정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또 집회 주최 쪽의 ‘평화집회’ 다짐이나 종교계 등의 중재 노력에도 불구하고 경찰관 기동대까지 투입해 대대적 검거작전을 펼치겠다는 의도도 숨기지 않고 있다. 집회 참가자들을 위축시키려는 경찰의 이런 대응은 ‘과도한 법 적용’을 넘어 ‘기본권 침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 대규모 집회=불법? 경찰은 이날 폭력을 동반하지 않더라도 장시간 도로를 점거한 채 행진하거나 연좌시위를 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구 청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대규모 집회=불법’이라는 인식을 드러내며 도심에서 열리는 ‘대규모 집회’ 자체를 아예 봉쇄할 수도 있다는 태도를 보였다.
경찰은 이날 서울 시내 곳곳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을 규탄하고 농민 백남기씨의 쾌유를 기원하는 취지로 민중총궐기투쟁본부(투쟁본부)가 주최한 집회는 “폭력 집회로 변질될 가능성이 없다”고 허가했으면서도, 12월5일로 예정된 2차 총궐기 집회는 불허했다. 집회 주최나 내용 면에서는 사실상 다를 바가 없는데도, 유독 5일 집회가 불법·폭력 시위로 비화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 것이다. 유일한 차이라면 5일 집회가 최소 7000명 이상이 참여하는 대규모 집회라는 점 정도다. 구 청장은 “(1차 집회 신고 당시) 서울광장에 1만여명이 참석하는 집회 신고가 들어왔는데, 그 기간에 스케이트장을 만들어서 7000명밖에 (수용이) 안 된다. 1만명이 집결하면 또다시 태평로 등 주요 도로를 막게 된다. 대규모 집회는 (불법집회가 될) 그럴 개연성이 농후하다고 본다”고 했다. 대규모 집회가 원활한 교통 소통을 방해할 수 있어 집회를 금지(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12조)할 수 있다는 것인데, 경찰은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 청와대로 이어지는 광화문광장에서도 대규모 집회를 금지·차단하는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특히 광화문광장 인근 지역 집회를 금지하기 위해 경찰은 ‘광화문광장을 여가선용과 문화활동을 지원하는 공간’으로 규정한 서울시 ‘조례’와 서울 도심에 자리잡고 있는 외국 대사관 등 주요 시설을 보호하기 위해 집회를 금지(집시법 11조)할 수 있다는 조항까지 동원했다. 경찰은 대규모 집회 참가자를 수용할 수 있는 광화문광장 등의 대체 공간으로 “여의도 고수부지”를 언급하기도 했다.
이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이나 서울시 입장과도 다르다. 헌법재판소는 2003년 “집회 장소는 특별한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국가 권력에 의해 주목받지 못하는 곳에서 의견 표명을 하게 된다면 기본권 보호가 의미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광화문광장 운용을 담당하는 서울시 관계자도 “집회는 헌법으로 규정돼 있는 것인데 조례로 어떻게 규정하느냐”며 경찰의 판단에 의문을 제기했다. 게다가 교통 사정이 비슷한 서울광장 등에서는 집회를 열 수 있고, 집회가 열리는 5일은 대사관 등의 업무가 없는 휴일이라서 주요시설 보호를 이유로 집회를 불허할 명분도 없다.
■ 차벽·체포조…모든 수단 동원하라 구 청장은 5일 집회 불허 방침을 밝히며, “미신고 집회에 모이기만 해도 불법”이고 “경찰에게 폭력을 하면 현장에서 검거하고, 나머지는 (집회 참가만 해도) 채증을 통해 사후 전원 검거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복면착용 폭력 시위 참가자를 체포하기 위해 차벽과 물대포는 물론 차벽 좌우에서 무장 경관들을 ‘양날개 대형’으로 투입해 토끼몰이식 체포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밝혀 논란이 예상된다. 경찰은 또 직업 경찰관으로 구성된 ‘경찰관 기동대’를 동원해 집회 현장에서 시위대 차단조·검거조·호송조로 역할을 분담해 검거에 나서기로 했다. 2008년 7월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 때 창설한 경찰관 기동대는 당시 과도한 검거·진압으로 “백골단의 부활”이라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경찰이 5일 열리는 집회 참가자들을 ‘검거 대상’이라고 밝힌 것 자체가 집회 참가를 위축시키는 과도한 공권력 사용이라는 지적도 있다. 앞서 대법원은 2011년 “사전금지 또는 제한된 집회도 실제 이루어진 집회가 평화롭게 개최되는 등 타인의 법익 침해나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이고 명백한 위험을 초래하지 않은 경우, 집회 개최를 이유로 처벌하거나 해산에 불응했다고 처벌할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김성환 방준호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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