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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화투판에서도 ‘낙장불입’ 원칙인데…국회의원 표는 변경 가능한 이유

등록 2015-12-02 08:34수정 2015-12-02 08:50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이 30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찬성 196명, 반대 33명, 기권 36명의 표결로 통과됐다. 김봉규 기자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이 30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찬성 196명, 반대 33명, 기권 36명의 표결로 통과됐다. 김봉규 기자
[정치 Bar]
전자투표 시스템 결함·의원 착오의 경우 현장에서 확인 후 수정 가능
바둑과 장기는 ‘일수불퇴’다. 한번 둔 수는 물릴 수 없다. 하물며 화투판에서도 ‘낙장불입’이 원칙인지라, 얼굴 붉힐 각오를 하지 않고는 한번 낸 패를 거둬들이기 힘든 법이다.

반면 개개인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은 자신의 표를 제한적이나마 거둬들 일 수 있다. 실제 지난 30일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처리한 국회 본회의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

당시 정의화 국회의장은 비준동의안 의결을 전자투표에 부쳤다. 의원들의 이름이 켜진 본회의장 전광판에 찬성을 나타내는 녹색불, 반대를 뜻하는 빨간불, 기권을 표시하는 노란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정 의장은 40여초 뒤 “투표를 마치겠다”고 한 뒤, 30여초 뒤 “재석 265인 중 찬성 196인, 반대 33인, 기권 36인으로서 가결되었음을 선포한다”며 의사봉을 두드렸다.

그러나 다음날 언론들이 보도한 표결 결과는 달랐다. 찬성 196명, 반대 34명, 기권 35명. 국회의장이 비준동의안 가결 선포를 할 때는 기권표에 섰던 김춘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이후 반대표로 바뀐 것이다.

김 의원실 관계자는 1일 “애초 반대표를 던지려고 했지만 당시 표결 시간 내에 투표를 하지 못해 자동으로 기권 처리가 된 것이다. 곧바로 전자투표 오작동 변경 신청서를 쓴 뒤 수정했다”고 설명했다. 찬성과 반대, 기권 명단이 실린 국회 회의록에도 ‘표결기 조작 지체’를 이유로 정정됐다는 설명이 붙었다.

국회법(제111조)은 ‘의원은 표결에 있어서 표시한 의사를 변경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수불퇴’ ‘낙장불입’이라는 얘기다. 투표용지를 통한 기명·무기명투표의 경우 일단 투표함에 들어간 찬반 의사 등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어떻게 변경이 가능한 것일까.

국회 의사과 관계자는 “국회의원이 한번 표결한 것은 수정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전자투표 시스템 결함이나 의원 착오로 인한 경우에는 현장에서 바로 확인하고 수정이 가능하다”고 했다.

전자투표의 경우 본회의장 내 의원별 좌석에 설치된 터치스크린 또는 기계식버튼을 통해 표결이 가능하다. 그런데 터치스크린의 경우 손가락이 아닌 다른 신체부위 또는 옷이 닿거나 땀이 났을 때 원하지 않는 다른 버튼이 잘못 눌러지는 경우가 가끔 있다고 한다. 이럴 경우 곧바로 본회의장 곳곳에 배치된 국회 사무처 직원에게 수정 의사를 밝히거나, 국회의장이 수정 의사를 인지할 수 있도록 하면 수정이 가능하다고 한다. 현장에서 바로 수정 신청을 해야하는 것이 포인트다. 국회법 등 규정에는 없는 관행적 절차인 셈이다.

실제 이런 일은 종종 있다. 지난해 4월 ‘세월호 침몰사고 신속구조·피해지원 및 진상규명을 위한 결의안’을 전자투표에 붙였는데 재석의원 253명 중에 찬성 250명, 기권 3명이 나왔다. 기권으로 처리된 새누리당 권성동·김진태 의원, 정의당 박원석 의원은 곧바로 “기기 오작동이 있었다”며 찬성 표결로 정정했다. 2011년 검·경수사권 조정과 관련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처리할 때도 기권을 하려던 여당 의원이 실수로 찬성 버튼을 눌렀다며 이를 나중에 바로잡았다. 2010년 11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법안에 반대표를 던진 5명과 기권 처리된 1명 역시 나중에 찬성표로 무더기 정정됐다.

문제는 여야가 치열하게 맞붙는 중요 사안의 표결에서 수정 신청이 받아들여져 표결 결과가 뒤바뀌는 경우다. 국회 의사과 다른 관계자는 “그런 경우가 없었기 때문에 가정해서 답할 수는 없다”면서도 “찬성과 반대표 차이가 크게 나서 일부 수정하더라도 결과가 바뀌지 않는 경우라면 모를까, 단 1표로 가부가 바뀌는 경우라면 국회의장의 표결 결과 선포 뒤 이를 수정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했다.

전자투표가 국회법에 처음 명문화된 것은 이미 38년 전이다. 1977년 12월31일 국회법이 개정되면서 ‘표결할 때는 의장이 의원으로 하여금 기립하게 하거나 전자투표기를 사용하게 하여 가부를 결정한다’고 했다. 그러나 1981년 1월 국회법 개정에서 전자투표는 삭제된다. 이후 1994년 6월 ‘중요한 안건의 경우 기명·전자·호명 또는 무기명투표로 표결한다’며 다시 전자투표가 명문화됐다. 이어 2000년 2월 ‘표결할 때에는 전자투표에 의한 기록표결로 가부를 결정한다. 투표기기 고장 등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에는 기립표결로 가부를 결정할 수 있다’며 전자투표를 표결의 일반원칙으로 정하게 된다. 의원 이름과 함께 투표 결과가 회의록에 남는 ‘책임정치’에 충실하자는 취지에서다.

정해진 날짜에서 단 1초만 넘어가도 법안이 폐기되는 곳이 국회다. 이 때문에 국회 본회의장 벽시계는 인공위성과 연동시켜 초침이 돌아간다. 전자투표 표결의 관행적 운영이 언젠가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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