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네는 ‘로또’ 경쟁률…저 동네는 ‘노쇼’로구나

정치BAR_김남일의 시렁시렁
총선 예비후보 등록 한달

4·13 총선이 치러질 선거구의 경계선은 아직 미정이다. 국회 의석 하나라도 더 얻으려는 여야 지도부의 복잡한 셉범 탓에 언제쯤 선거구가 획정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후보등록이 시작된 지 한 달이된 15일 현재,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법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기존 246개 선거구에 969명(경쟁률 3.9 대 1)이 예비후보 등록을 마쳤다. 현역 의원을 포함해 3월23일까지 등록이 이어지면 평균 경쟁률은 4 대 1을 훌쩍 넘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어떤 지역구는 10 대 1이 넘는 ‘로또’ 경쟁률을 보이는 반면, 예비후보자가 한 명도 나타나지 않고 있는 ‘노쇼 지역구’도 있다. 텃밭 물갈이, 야권 분열, 선거구 미획정 등 이유도 가지가지다.

■ 대구는 물갈이 물통? “이곳에서는 표를 세지 않는다. 무게를 달지.”

영국 정치판을 그린 소설 <하우스 오브 카드>는 보수당에 몰표를 주는 지역의 표심을 이렇게 설명한다. 새누리당에는 대구가 이런 곳이다. “작대기를 꽂아도 국회의원으로 뽑아주는 곳”이 대구라는 것이다. 대구 의석 12석이 모두 새누리당이다. 그래서 ‘본선’보다 ‘예선’이 더 힘든 곳이다.

초선인 김희국 의원 지역구인 대구 중·남구는 특히 그러하다. 18대 총선에서 이 지역에 출마해 배지를 달았던 배영식 전 의원, 박창달 전 의원(17대 대구 동을), 이인선 전 경상북도 경제부지사, 곽상도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 무려 10명이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김희국 의원까지 합하면 11 대 1의 경쟁률이다. 대구 선거구 12곳에 44명이 등록했는데, 4분의 1이 중·남구에 몰렸다. 중구와 남구가 합쳐져 선거가 치러진 17대 총선(2004년) 이후로 중·남구는 곽성문→ 배영식→ 김희국으로 계속 초선들이 차지했다. 의원들 얼굴이 매번 바뀌는 탓에 특정인의 조직이 탄탄하게 뿌리내릴 틈도 없다. 경북 출신의 당 관계자는 “중·남구를 만만하게 보고 물갈이 물통으로 쓰는 거 같다”고 했다. 중앙당 입장에서는 총선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공천 과정에서 물갈이 폭을 넓혀야 하는데 현역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 사람을 바꿔 끼워도 의석 잃을 걱정이 없는 대구가 손쉬운 물갈이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19대 총선에서 대구 12석 가운데 7석이 초선인 이유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지역에서는 “당에서 보면 대구 국회의원은 임명직”이라는 자조도 나온다.

중앙당만 탓할 게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초선들이 지역구 관리에 소홀하다는 것이다. 당 관계자는 “잡아놓은 물고기한테 미끼 주는 것을 봤느냐. 재선하려면 중앙당 눈도장만 필요하고 지역민들의 사랑은 별로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작대기만 꽂으면 된다는 대구
중·남구는 무려 ‘11대1’ 경쟁률
‘분구’로 무주공산 된 곳도 우르르
눈치작전 심한 지역구엔 아직 0명

최근 청와대 참모와 장·차관들이 ‘진박 물갈이론’을 앞세워 대구로 몰려드는 것도 한 원인이다. 중앙당의 한 당직자는 “김희국 의원의 경우, 유승민 전 원내대표와 가깝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다. 약하다고 판단하니까 덤벼드는 것”이라고 했다. ‘특명 받았다’던 곽상도 전 민정수석이 ‘진실한 특명’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추경호 전 국무조정실장에 밀리자 달성을 버리고 중·남구로 옮긴 것이 단적인 예라는 것이다.

권은희 의원(대구 북갑)의 사정도 비슷하다. 북갑에는 이명규 전 의원을 비롯해 6명이 도전장을 냈다. 친박계의 지원을 업은 하춘수 전 대구은행장도 등록할 예정이다. 권 의원이 현역의원의 ‘자존심’을 접고 예비후보로 등록한 것도 이런 가혹한 분위기 탓이다. 이종진 의원(달성)도 예비후보 등록을 하고는 ‘진박 대비 태세’에 들어갔다.

대구에서는 “(친박계가) 지나치게 꽂아넣기를 시도하면 (1996년 15대 총선처럼) ‘자민련식 역풍’이 불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도 나온다. 당시 자유민주연합은 대구 13석 가운데 8석을 챙겼다.

■ 무주공산 지역구에도 우르르 선거구 획정 과정에서 분구 등으로 ‘무주공산’이 예상되는 지역에도 예비후보들이 몰렸다. 기존 2곳에서 3곳으로 분구가 예상되는 부산 해운대·기장 갑, 을에는 각각 8명이 등록했다.

황우여 전 교육부 장관의 지역구인 인천 연수구도 분구가 예상된다. 민현주 비례대표 의원, 민경욱 전 청와대 대변인 등 새누리당 예비후보 7명, 더불어민주당 2명, 정의당 1명, 무소속 1명 등 11명이 등록했다. 경남 양산(윤영석 새누리당 의원)도 분구 가능성 때문에 새누리당 8명, 더민주 1명, 무소속 1명 등 10명이 달려들었다.

불출마를 선언한 최재성 더민주 의원의 경기 남양주갑에는 7명,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돼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된 박기춘 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현 무소속)의 지역구인 남양주을에도 11명이 출마 선언을 했다. 뇌물수수로 의원직을 잃은 송광호·조현룡 전 새누리당 의원의 지역구인 충북 제천·단양과 경남 의령·함안·합천에는 각각 11명과 7명이 몰렸다.

호남지역 유일한 여당 의원인 이정현 의원의 지역구인 전남 순천·곡성은 야당 의원들의 탈환 공세가 치열한데다, 선거구 획정 과정에서 광양·구례 지역구로 곡성이 합쳐질 수도 있어 사람이 몰린다. 순천·곡성에는 더민주 4명, 무소속 3명이, 광양·구례에는 더민주 1명, 무소속 6명이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 너무 많거나 아예 없거나 이목희 더민주 의원의 서울 금천에는 이 의원을 포함해 13명이 예비후보 등록을 했다. 경쟁률로는 전국 최대 격전지다. 정당별로는 새누리당 10명, 더민주 2명, 민주당 1명이다. 이 지역에서는 18대 총선에서 안형환 전 한나라당 의원이 342표차로 이목희 의원을 누르고 당선됐지만, 19대 총선에서는 이 의원이 탈환했다. ‘해볼 만한 곳’으로 보이기 때문에 새누리당 예비후보들이 모여든 것으로 보인다.

지역구가 3개인 제주도의 경우 제주갑에 8명, 제주을 6명, 서귀포 7명 등 무려 21명이 예비후보등록을 했다. 반면 광주에는 선거구 8곳에 걸쳐 12명만 등록했다. 이 중 광주 동구와 서구갑은 아직 0명이다. 야권 대격변을 눈앞에 둔 호남의 출마 희망자들이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반면, 새누리당 서울시당위원장인 김용태 의원의 서울 양천을과, 당 전략기획본부장인 권성동 의원의 강원도 강릉에는 아직 경쟁자가 나서지 않고 있다. 강원도에서는 홍천·횡성과 태백·영월·평창·정선도 예비후보자 등록이 ‘제로’인데, 선거구 획정이 어지럽게 얽힌 탓으로 보인다.

김남일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