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크 부처. 사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제공
중앙선관위 유일 외국인 루크 부처…영문에디터 겸 홍보모델 활약
“정말로 그런 이름의 후보가 있나요? 성북구 안암동에 출마하면 인기가 많겠네요. 하하.”
‘영국 남자’ 루크 부처(28)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직원 2800여명 가운데 유일한 외국인이다. 지난해 2월부터 국제협력과에서 영문에디터로 일한다.
영국 애스턴대학에서 정치학과 국제관계학을 전공한 그는, 2009년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처음 왔다. 고려대에서 공부하다 내친김에 대학원까지 다녔다. ‘피시앤칩스’보다 ‘막걸리에 파전’을 좋아하게 된 이유다. ‘막걸리’라는 이름으로 등록한 총선 예비후보가 있다는 말에 고려대가 있는 서울 안암동의 ‘전략공천’을 떠올릴 정도다.
그를 지난 22일 국회에서 만났다. 국회의사당은 처음 와봤다고 한다. “여당과 야당의 의석 배치가 어떻게 되나요?” 부채꼴 모양으로 나눠 앉는다고 했더니 “보수당과 노동당이 서로 마주 보고 앉는 영국과는 다르다”고 했다.
그는 한국의 선진 선거관리 시스템을 배우기 위해 찾아오는 세계 각국의 선거 전문가들에게 한국의 선거제도와 투·개표 시스템 등을 소개하는 일을 한다. 외국의 선거제도 정보도 수집한다. 인천 송도에 있는 국제기구인 세계선거기관협의회(A-WEB) 업무도 그의 몫이다.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입니다’. 중앙선관위 표어다. “외국 사람들한테 이걸 그대로 통역해주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말이 됩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플라워’를 ‘하트’로 바꿨죠. 선거는 민주주의의 심장…. 그제야 다들 고개를 끄덕였어요.”
4·13 총선 즈음에는 그도 금배지 후보들만큼이나 정신없이 바빠진다. “동유럽, 아프리카, 남미 등 20여개 나라 전문가 100여명이 한국 총선을 참관하기 위해 찾아옵니다. 사전투표부터 개표까지 지켜봅니다. 연수 진행을 하면서 한국의 선거제도를 소개하는 거죠.” 4월12일에는 그가 사회를 맡은 서울국제선거포럼도 열린다.
그는 민주주의 전통이 오래된 영국에서는 “이제까지 지켜온 영국식 방식이 제일 좋다는 ‘아일랜드 싱킹, 섬 생각(사고)’을 한다”고 했다. “영국에는 한국 같은 사전투표제도가 없어요. 비례대표도 없고요. 개표를 할 때도 투표함을 들어 용지를 그대로 테이블에 쏟아내요. 옛날 스타일이죠. 두 나라의 정치문화와 선거전통이 달라서 직접 비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한국 선거 시스템이 신속성, 정확성, 투명성에서 더 나아요.” 두 나라의 공통적 문제점도 있다고 했다. “젊은 사람들이 투표를 잘 안 하는 것은 똑같아요.”
그는 최근 중앙선관위 홍보모델로 나서기도 했다. 키 190㎝인 그의 곁에 놓인 투표함이 작아 보였다. “한국의 선관위 직원이라고 소개하면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똑같이 놀랍니다.”
야구 불모지 영국에 있을 때는 축구에 미쳤다. 지금은 한국인 여자친구를 따라 프로야구팀 두산 베어스의 팬이 됐다. “지난해 두산이 우승해서 너무 좋았어요. 그런데 올해는 우승 못 할 거 같아요. 김현수가 외국으로 나갔잖아요. 니퍼트는 너무 아저씨가 됐고요.”
스포츠 도박이 흔한 영국이다. 프리미어리그 우승팀에 따라 보수당이나 노동당의 총선 승리를 예측하는지도 궁금했다.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우승한다는 게 기적인데, 우승만 한다면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지 않겠어요?” 그가 응원하는 팀은 현재 프리미어리그 17위 노리치 시티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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