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원영섭 관악갑 후보가 지난 18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 관악구청에서 열린 벼룩시장에서 한 시민과 인사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여기 사장님은 가죽을 만지시니까 손이 거칠어요. 악수 잘 안 하시려 하는데 깜빡하고 또 청했네.”
18일 오후 서울 관악구 보라매동의 상가 거리. ‘2번 유기홍’이 적힌 파란색 야구점퍼에 파란 운동화를 신은 더불어민주당 유기홍 의원(58)이 가게마다 분주히 인사를 다녔다. 신발가게, 국수면 뽑는 집 등 10평 남짓한 상가들이 오밀조밀 밀집한 곳이다. 그의 인사는 “또 왔습니다”였다. 2004년 17대 총선에 처음 도전장을 낸 이후 계속 찾았던 곳, 최근에는 더 빈번하게 다녔던 거리다. 지난 17대, 19대 의원을 지낸 유 의원은 이곳에서 3선에 도전한다. 3선 도전은 한광옥 전 의원 이후 두번째다.
더민주 유기홍 “또 왔습니다”
3선꿈 내세우며 익숙한 악수
국민의당 김성식 4번째 대결
바닥 훑으며 젊은층 끌어안기
새누리 원영섭 “38살” 강조
1여다야 ‘어부지리’ 가능성
정의당 이동영 ‘40대 깃발’
“구의원 생활정치 경험으로” 호소
더불어민주당 유기홍 관악갑 후보가 지난 18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당곡사거리에서 한 노점 상인한테 물건을 사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관악갑은 호남 출신 유권자가 많고 유권자 평균 연령이 서울 평균보다 낮아 야권 강세 지역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번에는 ‘1여다야’구도라 승부를 쉽게 예측할 수 없다. 지역구에 있는 서울대 출신 동갑내기로 지난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나서 유 의원을 꺾었던 김성식 전 의원이 이번엔 국민의당 후보로 출마한다. 두 사람이 4번째 ‘리턴 매치’를 펼치는 가운데, 새누리당에선 30대의 정치신인 원영섭(38) 후보가 도전장을 냈다. 원 후보는 청년 우선추천 몫으로 전략공천됐다.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의장 출신으로 김대중 정부 때 청와대 정책기획실 국장을 지낸 유기홍 의원은 46살이던 2004년 이곳에서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처음 당선됐다. 18대 총선에선 한나라당 김성식 후보에게 패한 뒤에도 줄곧 이 곳에서 기반을 다졌다. 유권자들도 익숙했다. 이날 민물매운탕 가게에 들어가자 사장은 “걱정 마세요”라며 유 의원의 손을 잡았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한 주민은 그에게 “유 의원한테 성식이가 붙어봤자 틀렸어”라며 응원했다. 야채가게 주인은 그를 10여분간 붙잡고 “전월세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하소연을 했다. 유 의원은 “18대 때 낙선한 다음날부터 낙선 인사를 다녔다. 조금만 안 돌아다녀도 ‘요샌 왜 안 보이냐’는 소리를 듣는다”며 “여기에 계량할 수 없는 힘이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김성식 관악갑 후보가 지난 18일 서울 관악구 인헌시장에서 붕어빵을 먹으며 한 상인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간사를 지내기도 한 유 의원은 서울혁신교육지구 지정, 관악에듀밸리 협력사업 확대 등 교육, 복지 분야에서 특히 성과를 인정받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보라매동에 사는 이아무개(65)씨는 “유기홍이가 교육을 잘 했고 이번에 민주당에서 공약으로 노인연금도 올린다고 하더라”면서 “유기홍을 이번에도 또 뽑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유 의원의 이번 선거 구호는 ‘유기홍을 크게 쓰면 관악이 커진다’다. 그는 “관악갑에서도 3선 중진의원이 나와야 한다는 기대감이 크다. 어떤 유권자는 ‘짬뽕을 먹어도 삼선짬뽕만 먹는다’며 응원해주신다”며 웃었다.
3선 도전에는 양면이 있다. 김대중 대통령 선거때 이후 민주당만 찍어왔다는 70대 구아무개(인헌동)씨는 “나는 뽑던 대로 뽑자 하는데 30~40대 아들들이 ‘이번에는 좀 바꿔보자’고 해서 고민”이라고 말했다. 구씨는 “자식들 말을 들어야지 않겠느냐”고 했다. 보라매동에서 공인중개업을 하고 있는 석민호(62)씨는 “관악구가 주변 구로구나 동작구에 비해 부동산 등 경제 발전에서 낙후된 측면이 있다”면서 “유 의원이 교육 쪽으로 많이 했는데, 이번에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최우선으로 두고 뽑을 후보를 정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유 후보의 빈틈을 파고든 후보는 국민의당 김성식 최고위원이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한 이후 다섯번째 도전이다. 전적은 1승3패. 1번은 이훈평 전 의원, 2번은 유기홍 의원에게 졌다. 18대 때 2.7%포인트 차이로 유 의원을 눌러 한나라당 초선 의원이 됐다. 19대 때는 당의 쇄신을 요구하며 탈당한 뒤 무소속으로 출마해 41.6%의 득표율을 얻었지만 유 의원(50.1%)에 패했다. 이번에는 국민의당 후보로 나왔다. 그에게 관악갑은 “기득권 양당 구조의 틀을 깨고 새정치를 이루려는 국민의당이 수도권에서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는 전초기지”다.
이날 인헌동을 찾은 김 후보는 초록색 점퍼를 입고 시장을 누볐다. 붕어빵 노점 상인은 “한동안 보고 싶었다”며 그를 불러 붕어빵을 건넸다. 김 후보는 현역 유 의원 못지않게 관악갑 지역을 오랫동안 ‘닦았다’고 자부하고 있다. 한나라당·새누리당 시절 그를 지지했던 유권자 가운데 어느 정도가 당을 옮긴 그를 찍을지가 관건 중 하나다. 인헌시장에서 일하는 김아무개(57)씨는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편이고 무소속으로 나왔을 때도 김성식을 뽑았다”면서 “당을 떠나 사람을 보면 인물은 김성식인 것 같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타이틀은 그에게 강점이자 약점이다. 김씨는 “김성식은 좋지만, 안철수가 정치에 나와서 말을 바꿨다 뒤집었다 하는 게 싫어 국민의당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 홍아무개(45)씨는 “안철수는 기존 정치인들과 차이가 난다고 생각한다”며 김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낮은 당의 인지도는 약점이다. 유권자 중에는 ‘국민의당’은 모르고, ‘안철수 당이다’고 해야 아는 사람이 적잖았다. 김 후보는 “선거가 본격화하면 지금보다 나을 것이라 생각한다. 1표 부족하단 생각으로 뛰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는 싫지만 김성식은 믿습니다’. 그가 내세운 구호다..인물론으로 승부를 걸겠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같은 지역을 다져온터라 두 사람의 공약이 대체로 겹친다. 경전철 신림선 완공, 서부선 연장, 서울대 제2사대부고 유치는 양 쪽 다 내세운 공약이다. 청년을 타깃으로 하는 선거 전략도 비슷하다. 유 의원은 젊은 유권자를 많이 만날 수 있는 출근길 인사때 ‘칼퇴근법 도입’, ‘1인세대에 필요한 법’ 등의 피켓을 든다. 관악구에 원룸 거주 주민이 몰려있는 만큼, 원룸·오피스텔 임대료 공정 산정 제도 등을 도입할 계획이다. 김 후보도 원룸 거주자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한 지원센터 마련을 공약으로 준비했다. “테러방지법과 필리버스터를 보면서 새누리당의 독주를 이번 선거에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번 선거때 야당 후보 중에 뽑겠다”는 지역 주민 박아무개(24)씨처럼 20·30대에는 야당 후보를 뽑겠다는 이들이 많았다.
‘청년이 많은 지역구’ 특성에 가장 적합해 보이는 후보는 의외로 새누리당에 있다. 청년 우선추천 몫으로 경선 없이 새누리당 공천장을 받은 원영섭 후보는 ‘저는 38살입니다’, ‘우리 관악갑에 이대로 만족하십니까?’라고 쓰인 명함을 돌리며 ‘젊음’과 ‘변화’를 앞세웠다. 야권에 대한 피로감과 실망은 원 후보에겐 강력한 무기다. 권아무개(48)씨는 “유기홍이는 열심히는 다니는데 운동권 느낌이 싫고, 김성식이는 예전에는 좋았는데 요새 너무 뜸했다”면서 “아직 새누리당 후보는 잘 모르지만 썩 나쁘지만 않으면 1번을 찍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랜 기간 골목을 누벼온 ‘야당 양강 후보’의 인지도를 한번에 따라가는 게 쉽지는 않은 일이다.
인헌시장에서 명함을 주고가는 원 후보의 뒷모습을 보면서 새누리당 지지자 김용자(57)씨는 아쉬움에 말 끝을 흐렸다. “개인적으로 청렴하고 성실한 김성식 후보를 존경하지만 당을 바꿔서 손이 안 가네요. 그렇다고 새누리당을 찍으려니 후보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어서 원….” 하지만 ‘1여다야’ 구도에 따른 어부지리, 젊음을 앞세운 원 후보의 활약으로 그가 승리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긴 어렵다.
정의당에선 40대 이동영(45) 후보가 나왔다. 2006년과 2010년 민주노동당으로 관악구 구의원에 당선된 이력이 있다. 이 후보는 “구의원으로 생활 정치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관악과 전체 국민의 민생 정치를 발전시키겠다”고 말했다.
송경화 서보미 기자
freehwa@hani.co.kr
20·30대가 46%…젊은표가 승부처
평균연령 서울시 전체보다 2살 젊어
호남출신 많아…대선서 문재인에 60%
보라매·청림·행운·낙성대·은천·인헌·남현·신림동 등 11개 동으로 구성된 관악갑에는 지난해 10월 기준 23만4000여명의 유권자가 거주하고 있다. 유권자 평균 연령 44.1살로, 서울시 평균(46.1살)보다 젊은 게 특징이다. 신림동, 청룡동 등에 지방과 서울 각지에서 모인 1인가구가 밀집해 있으며, 20·30대 유권자가 45.9%를 차지할 정도로 젊은층이 두텁다. 이들의 투표율과 표심이 전체 당락을 좌우하는 이유다.
신림동 유권자 평균 나이가 38.7살로 가장 적고, 성현동은 47.2살로 11개 동 가운데 가장 많다. 또 호남 출신 유권자들이 많아 전통적으로 야권 강세 지역으로 꼽힌다. 2012년 대선에서 관악갑 유권자들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에게 60.3%의 표를 몰아줬다.
송경화 서보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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