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재벌기업 등의 불공정 행위에 매긴 과징금을 절반 넘게 깎아주고 조사방해 행위에 대해서는 한 건도 고발을 하지 않은 것으로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났다. ‘재벌공화국’으로 불릴 만큼 시장을 교란시키는 불공정 행위가 만연한 상황에서 공정위가 ‘경제 검찰’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
감사원이 9일 공개한 ‘공정거래업무 관리실태’ 감사 결과를 보면, 2012년 1월∼2015년 7월 공정위는 147개 사건(695개 사업자)에 대해 기본 과징금으로 5조2417억원을 물리고도 3차례 조정 과정을 거쳐 2조9195억원(55.7%)을 감면해주고 2조3222억원만 부과했다. 문제가 불거졌을 때 기본 과징금을 높이 책정한 뒤 이후 조정 과정에서 대폭 깎아주는 식이었다.
위반행위의 중대성에 따라 적용되는 기본 과징금은 부과기준율에 관련 매출액을 곱해 산정되는데, 공정위는 문제가 된 전체 사업장 가운데 70%에 가장 높은 수준인 ‘매우 중대한 위반행위’를 적용했다. 그러나 이후 3차례 조정 과정에서 과징금을 절반 이상 감면해줬다. 특히 과징금 확정 마지막 단계인 3차 조정에서 기본 과징금의 33%를 감경해줬다. 감사원은 무엇보다도 감액 기준이 법률에 근거하지 않아 재량권을 남용했다고 지적한다. 같은 상황에서 사업자마다 다른 감액 기준을 적용하거나 감경 사유를 중복 적용한 경우도 있었다. 자의적인 과징금 책정 탓에 공정위가 같은 기간 소송에서 져 기업에 돌려준 과징금 환급 총액이 7834억원이었다. 특히 최근 2년 동안 돌려준 과징금이 대폭 증가했다.
재벌기업이 ‘경제 검찰’의 공무집행에 정면 도전한 조사방해 사건에 대해서도 공정위는 미온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위는 2012~2015년 7월까지 공정위 조사를 방해한 7개 사업자(5개 사건)에 대해 한 건도 고발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휴대전화 유통 불공정행위 조사를 위해 수원사업장을 방문한 공정위 조사관들을 보안요원이 막은 사이에 컴퓨터 증거자료를 인멸했다. 에스케이씨앤씨(SK C&C) 임직원들은 공정위가 에스케이그룹의 부당지원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자료를 가로채 폐기했고, 엘지전자는 공정위 조사관들이 현장에 도착하기 전 외부 저장장치를 감추고 문서를 삭제했다. 공정위는 엄벌에 처하겠다고 공언하고도 정작 법률에 따른 고발 조처를 한 건도 하지 않았다.
감사원은 이번 감사 결과 16건의 문제점을 들춰내고 징계 2명, 주의 5명을 요구했다. 그러나 과징금 부과 절차에만 감사의 초점을 맞춰, 과징금 감액·면제와 조사방해 미고발 과정에 기업 로비가 작용했는지는 조사하지 않았다고 감사원 관계자는 설명했다.
김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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