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이인복)가 지난 4·13 총선 과정에서 밑바닥 여론과 표심을 크게 왜곡했다는 비판을 받은 여론조사 기준을 크게 높인 공직선거법 개정 의견을 23일 국회에 제출했다. 여야 정치권에 휘둘렸던 선거구획정위원회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방안도 담았다.
중앙선관위는 이날 국회에 “공표 목적의 여론조사를 할 때는 유선전화(집전화)를 아예 쓰지 못하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주로 낮시간대, 중·장년층이 받는 집전화 여론조사의 신뢰도가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대신 의무적으로 휴대전화 가상(안심)번호를 쓰는 방안을 제시했다.
선거철마다 우후죽순 생겨났다 사라지는 ‘떴다방 여론조사업체’를 규제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일정 기준 이상의 조사·분석 전문인력과 시설을 갖춰야 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에 등록할 수 있게 하고, 미등록 업체의 여론조사는 공표를 금지하자고 제안했다. 후보자가 편파적 문항으로 자신의 지지도를 높이는 것을 막기 위해 후보·정당이 자체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는 공표할 수 없도록 하자는 의견도 냈다.
특히 선거 일주일 전까지의 여론조사만 공표할 수 있게 돼 있어 ‘깜깜이 선거’라는 지적을 받아온 현행 규정을, ‘선거 이틀 전 조사’까지 허용하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여론조사 공표 금지기간도 사실상 폐지하자고 한 것이다. 예를 들어 4월13일이 선거일이면 4월11일까지의 여론 흐름을 유권자들이 알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여야는 물론, 같은 당 의원·후보끼리도 극심한 이해관계 충돌로 표류했던 선거구획정위원회의 독립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방안도 제시했다. 위헌 논란에도 불구하고 4·13총선을 불과 40여일 남겨두고 선거구 획정이 이뤄진 배경엔 여야가 각각 4명씩 동수로 추천한 획정위원들이 여야의 ‘대리전’을 벌였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중앙선관위는 정치권 추천 인사를 교섭단체별로 1명씩으로 줄이고, 나머지 6명은 학계·법조계·언론계·시민단체 등의 추천을 받아 중앙선관위원장이 임명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법정기한 내 선거구획정을 마치기 위해 의결 기준도 현행 재적위원 3분의2 이상 찬성에서 재적위원 과반 찬성으로 낮추자고 했다. 중앙선관위는 “총선이 임박하면 또 다시 정치권 내 선거구 이해관계가 충돌하며 개정 의견이 묵살될 수 있다. 20대 국회가 올해 안에 선거법 개정안을 처리해줘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중앙선관위는 2006년 제정된 주민소환법을 크게 손보는 개정 의견도 제시했다.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대상으로 한 주민소환투표 개표 요건을 현행 ‘유권자 3분의 1 이상’ 투표에서 ‘4분의 1 이상’으로 낮추도록 했다. 이제까지 도지사·시장·군수·시의원 8명을 상대로 주민소환투표가 실시됐는데, 개표 요건을 충족한 경우는 단 2명에 불과하다. 중앙선관위는 “소환투표 대상자가 투표 불참운동을 적극적으로 벌이기 때문에 개표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해 주민 의사를 확인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며 개정 필요성을 설명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