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독일 국빈방문 중이던 2014년 3월28일 드레스덴 공대에서 한반도 통일 프로세스를 밝히는 모습. <제이티비시>는 24일 최순실씨의 컴퓨터에 보관된 파일 가운데 ‘드레스덴 연설문’이 있었으며, 대통령이 연설하기 전에 전달받아 수정한 정황을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드레스덴/연합뉴스
청와대 공보수석 시절 김영삼 대통령의 연설문을 작성했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의 주요 연설문이 최순실씨에게 사전 유출돼 수정됐다’는 의혹과 관련해 “국가의 기본적인 틀을 흔든 것”이라고 비판했다.
윤 전 장관은 25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김영삼 대통령은 ‘국정이라는 건 대통령의 말로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만큼 대통령의 연설, 회의 때 지시사항은 중요한 것”이라며 “이러한 연설문이 사적 신분의 민간인에게 사전에 유출됐다면 국가기강을 파괴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연설문 초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전문가나 학자로부터 의견을 들을 수는 있겠지만, 완성 단계의 연설문이 이런 식으로 유출된다는 건 상상조차 못할 일이라는 것이다. 윤 전 장관은 “연설문 유출 경위가 어떻든 대통령이 책임을 져야 할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김영삼 정부 시절엔 공보수석실이 연설문을 작성했으나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공보수석 밑에 연설문 작성을 담당하는 연설비서관이 새로 생겼다. 노무현 정부 시절 연설비서관실은 대통령 비서실장 직속으로 독립했으며, 이명박 정부 때부터 연설비서관실은 연설기록비서관실로 바뀌었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연설문을 작성한 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은 “연설문은 대통령의 말이므로, 대통령이 아닌 다른 사람이 감히 연설문을 밖으로 내돌릴 수 없다. 대통령이 ‘누구에게 주라’고 하기 전까진 줄 수 없는 문건”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대통령은 말로 통치를 하므로 연설문에는 국정 운영의 핵심적인 비밀이 담겨있다”라며 “대통령 입으로 나가기 전에 (잘못) 유출이 되면 국가 보안에 문제가 될 수도 있고, 누군가는 먼저 얻은 정보로 사사로운 이익을 얻을 수도 있다. 대통령 말을 고친다는 건 선출되지 않은 누군가가 대통령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 전 비서관은 재직 당시 청와대 안팎으로부터 연설비서관이 휘둘리지 않도록 제도적 보호 장치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각계 의견 수렴 등을 거쳐 연설비서관이 초안을 만들어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했다. 어느 정도 초안이 다듬어지면 대통령 주재로 내용을 점검하는 절차(독회)를 거쳐 대통령의 최종 판단으로 연설문 작성을 마무리했다. 청와대 비서관이나 수석들도 대통령이 연설을 하기 전에 함부로 연설문 내용을 보자고 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이었던 김영수 영남대 교수(정치외교학)도 이날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연설문 작성 과정에서 외부 자문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일단 연설문이 완성된 뒤부터 연설을 하기 전 사이에 국정을 담당하지 않는 사람이 연설문을 점검하는 일은 상식과 다르다”고 말했다. 박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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