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20일치 <한겨레>가 ‘K스포츠재단 이사장은 최순실씨 단골 마사지센터장’이라는 기사로 그의 이름을 불러내기 전까지, 아무도 몰랐다. 박근혜 대통령의 언행 곳곳에 이리도 ‘최순실 게이트’의 정황들이 숨겨져 있을 줄은.
미르·케이(K)스포츠재단 설립을 앞두고 재벌 총수들과 독대, 추가자금 요청 전에도 또 독대, 이란 순방 일정에 끼어든 신생 케이재단 기획의 태권도단 시범, 중남미 순방에서도 챙긴 미르재단 인사, 정유라씨 관련 공무원 인사보복, 최씨에게 건너간 대통령 연설문 및 정부 부처 자료 등등 최순실 게이트에서 제기된 의혹들을 복기하다 보면, 결국 우리는 도처에서 대통령과 마주치게 된다. 그뿐인가. 당 대표 시절부터 최씨 자매 단골인 차움의원에서 ‘길라임’이라는 차명과 때로는 최순득 이름으로 처방을 받은 사실까지 드러났다.
오는 20일 검찰은 결국 대통령에 대한 대면조사를 하지 못한 채 최씨 등을 기소할 가능성이 커졌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가 안다. 이 ‘최순실 게이트’의 몸통이 누구인지를.
① 미르·K 직접 개입 / 설립부터 지원까지 주도
2014년 11월26일 박근혜 대통령이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문화가 있는 날’ 행사에서 늘품건강체조를 익히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은 미르·케이(K)스포츠재단의 설립부터 운영, 지원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주도했다. 박 대통령은 귀국이 ‘한국 방문’이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잦았던 해외순방 때 두 재단에 적극적으로 특혜를 제공했다.
지난 5월1~3일 박 대통령은 이란을 방문하며 미르재단을 동행시켰다. 정부는 설립 6개월도 안 된 미르재단을 ‘케이타워 프로젝트’ 사업 주체로 선정했다. 이란에 한류를 심는다는 명분이었다. 이 사업 주체로 선정되는 과정에 공모 절차는 없었다. 게다가 이 프로젝트가 논의된 청와대 회의에 미르재단 관계자까지 참여시켰다. 청와대 비서실과 정부 유관부처는 미르재단이 이 사업을 수주하는 데 들러리로 구실했다.
이때 케이스포츠재단도 함께 이란에 갔다. 박 대통령은 해외순방 때 케이스포츠의 태권도 시범단(케이스피릿)을 주로 데리고 다녔다. 한국-이란 문화공감 공연 중 태권도 시범을 케이스피릿이 맡았다. 케이스피릿은 지난 5월25일부터 6월4일까지 박 대통령이 아프리카 3개국과 프랑스를 방문할 때도 함께했다.
아프리카 3개국 순방 때 박 대통령이 발표한 식품 개발 원조 사업 ‘케이밀 사업’도 미르재단에 주어졌다. 이 사업 용역입찰 과정에 미르재단 관계자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기이한 일마저 벌어졌다. 미르재단은 입찰 공고 전부터, 이화여대 산학협력단과 케이밀 사업 핵심 제품 중 하나인 쌀과자 등을 개발하기도 했다.
또 박 대통령은 지난 3월 프랑스 미식주간 행사에서 프랑스 국립요리학교 ‘에콜 페랑디’를 거론했는데, 6월 프랑스 순방 때 미르재단이 에콜 페랑디와 함께 한국-프랑스 융합요리 시식회를 열었다. 미르재단은 지난해 10월 설립 직후부터 에콜 페랑디와 합작 사업을 추진해왔다.
박 대통령이 미르재단 운영에 직접 관여했음은, 지난 4월 멕시코 순방 때 안종범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 이성한 미르재단 사무총장에게 국제전화를 걸어, 대통령의 뜻임을 들어 사퇴를 종용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
이밖에도 박 대통령은 2014년 11월26일 차은택씨가 주도해 만든 ‘늘품체조’를 시연하고, 앞서 같은 해 8월27일 차씨가 정부 지원금을 받아 제작·연출한 1시간짜리 단회 상연 뮤지컬 <원데이> 관람에 나선 바 있다. 미르·케이스포츠재단이 설립되기 전부터 박 대통령은 차씨에게 온갖 특혜를 제공해온 것이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② 기업 상대 강탈 의혹 / 총수들과 릴레이 독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7월24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창조경제혁신센터장 및 지원기업 대표 간담회에 관련 동영상을 본 후 환하게 웃고 있다. 박 대통령이 이날 대기업 총수 7명을 독대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7월24일 대기업 총수 17명과 창조경제혁신센터장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간담회를 연 뒤 별도로 대기업 총수 7명을 이틀에 걸쳐 만났다. 검찰에 따르면 면담한 총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김창근 에스케이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구본무 엘지그룹 회장 등이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한류 확산을 위해 기업들이 나서 도와줘야 한다. 재단 형태를 만들어 민관 합동으로 지원을 했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미르와 케이(K)스포츠 재단에 출연금 납부를 요구했다는 의혹이 나오는 대목이다. 두 재단은 각각 지난해 10월과 올해 1월 설립됐다. 돈을 출연한 기업은 53곳, 총 770여억원인데, 박 대통령과 독대한 대기업들의 출연 금액은 특히 많았다.
일부 대기업은 별도로 최순실 쪽 회사에 송금을 하거나, 최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으로부터 검찰 수사와 세무조사 무마 빌미로 추가 납부를 요구받기도 했다. 삼성은 지난해 8∼9월 사이에 최씨의 독일 회사인 비덱스포츠에 280만유로를 별도로 송금했다. 이 돈은 최씨의 딸 정유라씨의 승마훈련을 지원하는 데 쓰였다. 삼성은 지난해 7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 청와대 또는 정부의 지원이 절실했다.
박 대통령은 올해 초 다시 일부 대기업 총수들을 만난다. 검찰은 지난 14일 “최태원 에스케이 회장이 2월18일 박 대통령을 독대했다”고 밝혔다. 독대 뒤 최순실씨가 케이스포츠재단 사무총장에게 에스케이를 찾아가 80억원 투자 유치를 부탁하라고 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그러나 케이스포츠재단과 에스케이 간의 투자액에 대한 이견으로 실제 투자는 이뤄지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지난 2월말∼3월초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만났다. 신 회장은 비자금 조성 혐의 등으로 검찰의 내사 대상에 올라 있던 때다. 롯데 쪽은 5월 케이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출연했다. 그러나 재단 쪽은 검찰의 롯데 압수수색 실시 바로 전날인 6월9일 뒤탈을 염려해서인지 이를 되돌려줬다. 박 대통령은 신 회장을 만난 뒤 안종범 청와대 전 정책수석에게 롯데에 대한 추가모금이 잘 돼가고 있는지 확인까지 한 것으로, 검찰은 관련 진술을 확보한 상태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③ 곳곳 인사 파행 / “나쁜 사람”들 찍어내기
최순실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 검찰 특별수사본부에 16일 출석해 최씨의 이권 챙기기 행보를 지원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조사를 받은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17일 새벽 밤샘조사를 마치고 귀가하고 있다.연합뉴스
최순실씨의 이권 사업들이 가장 집중된 영역이 문화·체육 분야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분야를 관장하는 문화체육관광부 관료들에 대한 ‘찍어내기’ 파행 인사로 최씨 전횡의 텃밭을 만들어줬다.
대표적 사례가 노태강 전 문체부 체육국장과 진재수 전 체육정책과장을 공직에서 강제로 물러나게 한 일이다. 이들은 2013년 5월 청와대 지시로 최씨 딸 정유라씨의 승마대회 성적을 둘러싼 시비를 조사했다. 그 뒤 이들은 최씨와 승마협회 쪽 모두 문제가 있다는 보고서를 올렸다가 좌천당했다. 박 대통령은 그해 8월 유진룡 장관을 청와대로 부른 뒤 수첩을 꺼내 두 사람 이름을 거명하면서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며 좌천 인사를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노 전 국장은 국립중앙박물관 교육문화교류단장으로 밀려났으나, 박 대통령은 끝내 그를 그냥 놔두지 않았다. 올해 초 김영나 박물관장이 청와대가 지시한 프랑스 장식미술전에 반대했다가 전격 경질됐다. 박 대통령은 이 과정에서 노씨가 단장 자리에 있다는 보고를 받은 뒤 “이 사람이 아직도 있어요?”라고 말해 사실상 강제퇴직을 종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 뒤 문체부 쪽의 집요한 퇴직 압박 끝에 노 전 국장은 진 전 과장과 함께 지난 7월 원치 않는 명예퇴직을 해야 했다.
박 대통령은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과 김종 전 차관,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등 주요 공직자 기용 때도 최순실-차은택 라인의 추천을 따른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차씨는 검찰에서 “최씨의 요구를 받고 김 전 장관을 추천했다. 실제 장관이 돼서 놀랐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의 보복성 인사 개입은 민간기업에까지 미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을 다룬 영화 <그때 그사람들> 등을 배급·투자한 씨제이그룹 이미경 부회장의 퇴진을 압박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조 전 수석은 “박 대통령의 지시”라고 말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전대주 전 베트남대사 임명에도 최씨 일가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등 최씨와의 특수관계에 기반한 박 대통령의 인사개입 파문은 점점 확산되고 있다.
노형석 손원제 기자 nuge@hani.co.kr
④ 문서 유출 / 연설문·국무회의 자료 반출
10월25일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최순실 청와대 문건 유출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하는 것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최 선생님에게 확인한 건가요?’
박근혜 대통령의 ‘문고리 3인방’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이 갖고 있던 ‘대포폰’(차명 휴대전화)에서 최근 검찰은 이런 내용이 담긴 녹음 파일을 발견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이 대포폰 안엔 “국무회의를 하고 순방 가는 게 낫겠다”는 또다른 여성의 음성도 담겨 있었다. 최순실씨다. 최씨는 박 대통령의 해외 순방을 앞두고 정 전 비서관과 일정을 조율하기 위해 통화를 하던 중이었다. 녹음 파일 속 정 전 비서관은 최씨에게 박 대통령에 쓰는 것과 다름 없는 수준의 경어체를 사용했다는 게 검찰 쪽 얘기다. ‘최씨를 잘 모른다’고 버티던 정 전 비서관은 검찰이 녹음 파일을 들이밀자 “대통령의 지시로 최씨에게 문건을 전달한 게 맞다”고 인정했다. “회장(최순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대통령의) 연설문을 고치는 일”이라는 고영태 케이(K)스포츠재단 이사의 증언은 ‘믿기지 않는 말 한마디’에 불과했지만, 매일매일 터져나오는 각종 ‘증거’들은 박 대통령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결코 무관치 않다고 가리키고 있다.
박 대통령은 미르·케이스포츠재단 강제 모금 등 각종 특혜·비리 의혹이 불거진 이후, “어느 누구라도 재단과 관련해서 자금 유용 등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면 엄정히 처벌받을 것”이라며 줄곧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선을 그어왔다. ‘통일은 대박’이란 표현으로 화제가 됐던 독일 드레스덴 연설문을 비롯해 북한과의 비밀 접촉 내용이 담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자료, 국무회의와 수석비서관회의 자료 등 기밀이 담긴 50여개 문건이 최씨의 태블릿 피시에서 발견되자, 박 대통령은 “더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문건 유출을 일부 시인했지만 그조차도 “청와대 보좌체제가 완비된 이후 그만뒀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비서관의 휴대전화 안에서 최씨의 국정농단을 증명하는 박 대통령과 최씨의 생생한 육성이 드러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박 대통령의 지시로 지난달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언론 대응 방안까지 마련했음을 보여주는 문건 사진도 정 전 비서관 휴대전화에서 발견됐다. ‘전면 부인하는 취지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대응해야 한다’는 내용 등이었다. 이 대응 방안을 따른 것일까. 지난 4일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며 “검찰 조사 등에 협조하겠다”던 박 대통령은 검찰의 참고인 출석 요구에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⑤ 병원 게이트 / 2급 비밀 대통령 의료 ‘비선 진료’
‘의료민영화저지와무상의료실현을위한운동본부’회원들이 18일 오전 서울강남구차움병원앞에서 박근혜·최순실·차움병원의의료민영화 추진행태를 규탄하고있다. 신소영기자viator@hani.co.kr
대통령의 건강상태나 질병은 2급 국가기밀에 준할 정도로 중요하게 취급된다. 또 대통령의 건강은 ‘대통령 주치의-청와대 의무실-자문의사단’이라는 공식 의료진을 통해 관리된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이런 공식 의료체계가 아닌 최순실씨를 매개로 ‘비선’ 의사인 김상만씨에게 주치의나 의무실장도 모르게 각종 영양주사, 태반주사 등을 맞은 사실이 보건 당국의 조사 결과 드러났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 전인 2012년 3월부터 2013년 2월 대통령 취임 전까지는 차움의원을 직접 방문해 김씨에게 진료를 받은 뒤 각종 주사를 맞아왔다. 박 대통령에게 처방된 내역은 최순실·최순득씨 자매의 진료기록에 기록돼 박 대통령은 공식적으로는 주사를 맞은 사실이 남지 않았다. 대통령 취임 뒤에는 청와대로 김씨를 불러 2013년 3월부터 2014년 3월까지 한달에 한번꼴로 각종 주사를 맞았다. 이때는 최순득씨 진료기록에 박 대통령의 주사 정보가 기록됐다. 또 수많은 건강 및 질병 정보를 알 수 있는 혈액검사까지 김씨를 통해 차움의원에서 받은 뒤 검사 기록을 최순실씨 진료기록에 남겼다.
박 대통령이 2011년 1월부터 일곱달 동안 차움의원에서 고급 운동시설 등을 이용하면서 인기 드라마의 여주인공 이름인 ‘길라임’을 가명으로 쓴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차움의원에서 각종 주사제를 맞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세월호 사건 당시 7시간에도 주사나 피부 시술을 받았다는 의혹이 청와대의 공식적인 부정에도 끊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가 애용한 병원들에 대한 특혜 의혹도 계속 제기되고 있다. 차움의원과 모 병원인 차병원에 대해서는 난자를 이용한 줄기세포 연구 승인, 정부 예산을 받는 연구중심병원 선정, 차병원 계열사에서 대통령 업무보고 진행 등의 특혜를 받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순실씨가 1주일에 한번꼴로 보톡스, 필러 등 각종 피부미용시술을 받은 것으로 확인된 의사 김영재씨에 대해서는 서울대병원 외래진료의사로 위촉되거나 그가 만든 수술재료(실)가 서울대병원에 납품되는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또 김씨의 부인 회사가 만든 화장품이 청와대의 올해 설 선물 목록에 들어가는 특혜를 입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동네의원을 열고 있는 한 의사는 “일반 개인 환자의 의료정보도 절대 밖으로 새어 나가서는 안 되는데, 한 나라 대통령의 주사 기록을 온 국민뿐만 아니라 외신을 통해 전세계가 알아버렸다. 국격이 땅에 떨어졌다. 앞으로 박 대통령이 맞은 주사 놔달라고 환자들이 찾아올까봐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언니가보고있다 #41_박근혜가 간절히 바라는 탄핵, 온 우주가 도와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