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한국경제 등 청문회 비난
막말 강조…총수 부실한 답변 회피
‘송구재용’ 대신 ‘JY 스타일’ 평가도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 1차 청문회가 끝났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9명의 기업 총수들이 6일 한꺼번에 국회로 불려와 미르·케이(K)스포츠재단 기금 출연에 대해 하루종일 질문을 받았습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였습니다. 이들은 “청와대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웠다”면서도 “어떤 경우에도 대가를 바라고 하는 지원은 없다”(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대가성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출연한 바는 전혀 없다”(허창수 지에스(GS) 그룹 회장) 등 대가성을 부인했습니다. 다른 단골 멘트는 “사전에 보고 받지 못했다” “기억나지 않는다” 였습니다. 구체적인 정황을 묻는데 무조건 “송구하다”고 머리를 조아린 이재용 부회장은 ‘송구재용’이라는 별명을 얻기까지 했습니다.
7일치 <한겨레>와 <경향신문>을 비롯,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보수언론들까지 나서 총수들의 답변 태도를 지적한 이유입니다. <경향신문>은 사설을 통해 “알맹이 없는 답변으로 일관한 총수들은 동문서답·모르쇠·변명으로 핵심을 피해갔다”고 비판했습니다. 이미 알려진 내용을 묻는 위원들의 문제점도 지적했죠. <중앙일보>는 3면 ‘총수들 “대가 없었다” 3자 뇌물죄 의식?’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박영수 특별검사팀을 의식한 준비된 발언”이라는 해석을 내놨습니다. 총수들이 자신들을 뇌물 공여자가 아니라 국정 농단 사건의 피해자라고 주장한다는 겁니다. <조선일보>는 대기업 총수들의 ‘청문회 수난’을 비판적으로 소개하면서도 총수들의 ‘부실 답변’ ‘모르쇠 전략’을 지적했습니다.
경제지들은 달랐습니다. 7일치 <매일경제>는 아예 6일 청문회를 ‘저질 청문회’로 규정했습니다. 총수들을 “구박하고, 인격 모독하고, 핀잔 주며 비꼬았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반면 핵심 질문에 ‘선택적으로 바보’가 되는 총수들의 답변 태도를 지적하거나, 정경유착에서 기업의 책임 등은 언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정도를 넘어서서 기업과 총수들의 입장만 대변한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7일치 경제지 기사들을 갈무리해 소개합니다.
7일치 <한국경제> <매일경제> 신문 지면.
■ ‘막말’과 ‘고성’, 원인은 없고 결과만 있다
경제지들이 6일 청문회를 비판하는 가장 큰 근거는 국조특위 위원들의 ‘호통’과 ‘막말’입니다. <한국경제>는 1면 기사에서 “(위원들이) 본질에서 벗어난 호통과 막말을 쏟아냈다”며 총수들을 하루종일 ‘죄인 취급’한 청문회에 화살을 겨눕니다. <매일경제>도 1면과 2면 기사에서 “총수들이 (재단 기금 출연에) 대가를 바라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망신주기용 호통만 오갔고 질문의 수준이 인격모독 수준까지 치달았다”고 썼습니다.
7일치 <매일경제> 2면.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하지만 이들은 왜 호통과 막말이 나왔는지는 쓰지 않았습니다. “최순실을 언제 알았냐”는 간단한 질문에도 “모르겠다, 기억이 안 난다”는 답변으로 일관하고, “보고를 받지 못했다”고 책임을 떠넘기는 총수들의 행태는 구체적으로 쓰지 않았습니다. “머리 굴리지 마라”(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는 다소 과격한 언사는 바로 이런 답변 행태가 반복되면서 나왔습니다.
<한국경제>는 ‘경제인들이 본 청문회’라는 기사에서 한 기업인의 입을 빌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들이 한꺼번에 국회에 불려 나와 죄인 취급 받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일방적으로 매도되고 있다”고 썼습니다. 이는 정유라씨 부당지원 등과 관련해 “특검에서 조사가 있으리라 예상하고 있다”는 이재용 부회장의 말과도 배치됩니다. 특검은 이미 박근혜 대통령과 기업들의 ‘뇌물공여’ 혐의까지 조사하겠다고 밝힌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경제지들은 “대가성이 없었다”는 기업 총수들의 주장을 문자 그대로 소개하는 데 그쳤습니다.
■ ‘모르쇠’ 전략 아니고 ‘JY 스타일’?
“비교적 당당하게 의원들의 질문에 답했다.(…) 즉답을 피하고 원론적 입장을 밝히면서도 필요한 대목에서는 힘을 줘 말했다.(…) 호통을 치며 한 질문에도 담담하게 대응했다.”
<한국경제>는 3면 ‘대중에 처음 공개된 JY 스타일, 몸 낮추고 차분…평정심 안 잃어’ 기사에 이렇게 썼습니다. 이번 청문회를 계기로 대중 앞에 사실상 ‘첫 데뷔무대’를 가진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분석 기사입니다. 차분하게 ‘할 말은 다했다’는 겁니다. 계속된 위원들의 추궁에 “미래전략실 해체” “전경련 탈퇴”라는 전향적인 결정을 내린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합니다. 하지만 최순실씨와의 연관성, 정유라씨를 위해 독일에 수십억원을 송금한 일 등은 철저히 모르쇠 전략으로 방어하기에 급급했던 이 부회장이 과연 ‘할 말은 다했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7일치 <한국경제> 3면.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송동현 밍글스툰 대표는 <한겨레>와 전화통화에서 “이 부회장은 감정적인 표현으로 ‘송구’와 ‘불찰’을 붙이지만 팩트에 대해서는 확인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나쁜 악당이 되는 모양새보다 ‘몰랐다’고 하는 게 상대적으로 더 나았을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관련기사: 호된 신고식 된 이재용의 데뷔 무대)
■ ‘정경유착’ 기업들은 피해자일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한국사회에서는 재벌이 정권에 돈을 갖다주고 특혜를 받는 정경유착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이번 기회에 그 끈을 끊고 보다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에 모두가 공감하고 있습니다.
경제지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매일경제>는 7일치 사설에서 “2016년 12월6일 청문회를 끝으로 한국사회에서 정경유착이 종언을 고할 수 있도록 모두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썼습니다. “(그동안) 기업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정부 요청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고도 했습니다. <서울경제>도 7일치 사설에서 “야당 의원들은 어떻게든 사업 특혜 여부와 연결해 정경유착의 고리를 찾아내려 했지만 총수들은 일관되게 청와대의 강요로 거부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고 썼습니다. <매일경제>는 정경유착을 없애기 위해 기업들에게 기부를 강요하는 관행을 없애고, 기업들의 기부와 출연금 용처를 투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제시한 해법의 방점은 기업 내부보다는 외부에 찍혀있습니다. 공직자 윤리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기업돈을 ‘삥’ 뜯을 수 있는 사회시스템을 개혁한다고 주장합니다. 외신 반응을 전하는 기사에는 “정치스캔들에 한국 기업 희생양”이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정작 기사를 들여다보면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은 정부 정책을 후원하는 대신 특혜를 받아 온 관행을 꼬집고 있는 데 말입니다. “정경유착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대규모 촛불시위를 이끌어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완벽한 청문회는 아니었습니다. 1988년 ‘일해재단 청문회’와 비교해서도 ‘청문회 스타’를 기대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하지만 최순실 국정농단에 기업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는지를 묻는 자리에서 제대로 답변조차 하지 않는 총수들의 태도와 비교할 때 무엇이 더 큰 문제일까요? 다시 한 번 총수들에게 질문을 던져보고 싶습니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관련 영상] 한겨레TV | 더 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