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국무회의 뒤 대국민담화 발표 “국민 목소리 최대한 국정에 반영”
학계 “국정마비 막는 수준 그쳐야” 2004년 고건 총리도 ‘관리자 구실’
공안검사 출신 ‘통진당 해산' 이끌어, 야권 ‘황교안 폭탄’ 제거 못해 착잡
학계 “국정마비 막는 수준 그쳐야” 2004년 고건 총리도 ‘관리자 구실’
공안검사 출신 ‘통진당 해산' 이끌어, 야권 ‘황교안 폭탄’ 제거 못해 착잡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9일 오후 가결됨에 따라 다른 사정 변경이 없는 한 황교안(59) 국무총리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정이 나올 때까지 국정을 이끌게 됐다. 그는 이날 저녁 7시3분 청와대가 탄핵의결서를 전달받은 시점부터 군 통수권을 비롯한 대통령의 모든 권한을 넘겨받았다.
이에 앞서 황 대통령 권한대행은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직후 한민구 국방부 장관한테 전화를 걸어 “북한이 다양한 형태의 도발을 통해 우리 사회의 혼란을 가중시키려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며 “전군의 경계태세를 강화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윤병세 외교부 장관에게 “정부의 대외정책 기조에 변함이 없다”는 메시지를 모든 재외공관을 통해 주재국에 전하라고 한 뒤, 홍윤식 행정자치부 장관한테는 경찰 경계 태세를 강화하도록 했다. 이에 한 국방장관은 전군 주요지휘관 화상회의를 열었고, 외교부는 미국·중국·일본·러시아·유럽연합(EU)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관련 상황을 설명했다.
황 권한대행은 이날 오후 5시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위원 간담회에 참석한 뒤, 이날 저녁 대통령 권한대행 자격으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시국무회의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잇따라 열고 외교·안보·국방 태세를 점검했다. 황 권한대행은 이날 저녁 8시 정부서울청사에서 발표한 대국민담화를 통해 “정부는 국민 여러분의 목소리를 경청하여 최대한 국정에 반영하도록 하겠다. 이젠 거리의 목소리가 현재의 국가 위기를 극복하는 동력으로 승화되도록 국민 여러분도 뜻을 모아주시기를 머리 숙여 간곡히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법적으로 대통령 권한대행은 장관이나 청와대 비서진 등에 대한 인사권, 외교조약 체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현직 대통령의 사망이나 사퇴 등 신상에 유고가 발생한 것이 아닌 상태에서 권한을 대행하는 상황이라, 황 권한대행이 앞으로 맡을 역할엔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헌법학계에서는 권한대행의 권한은 ‘국정 마비를 막는 수준’, 이른바 ‘선량한 현상 유지’ 수준에 머물러야 한다는 해석이 다수설로 통한다. 실제 2004년 고건 당시 총리는 권한대행을 맡은 63일간 장관 인사권 등을 행사하지 않는 등 ‘관리자’의 구실을 벗어나지 않았다. 따라서 황 권한대행은 헌재 결정이 나오기 전까지 기존 정책의 기본틀을 유지하며, 국무회의 주재 등 일상적인 국정관리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본격화한 10월 말 이후 사실상 이런 구실을 해 온 터라, 권한대행 체제 이행 이후에도 큰 변화는 없으리라는 전망이 많다.
직무정지된 박 대통령이 청와대에 계속 머무는 상황을 고려할 때, 황 권한대행은 지금까지처럼 정부서울청사 총리 집무실을 사용할 전망이다. 수석비서관 등 청와대 참모 기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북한의 군사 행동 등 중대 외교안보 현안 발생 땐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와 국가안보실 등 청와대 조직 활용이 불가피하다. 국무총리와 달리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해선 청와대 경호요원이 총리실로 파견되는 등 경호가 대폭 강화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황 권한대행을 바라보는 야권의 심정은 착잡하다. 대표적 공안검사 출신인 황 권한대행은 박근혜 정부 초대 법무장관으로서 ‘국가정보원 댓글사건’ 수사를 지휘하고 통합진보당 정당 해산 결정을 이끌어내며 박 대통령의 신임을 얻었고, 이후 총리에 올라 승승장구해왔다. 광화문 광장에서 ‘대통령 탄핵 촛불민심’이 폭발할 때부터 대통령 권한대행으론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워낙 강해 야권과 시민사회에선 ‘황교안 폭탄’을 어떻게 제거할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오가기도 했다.
정인환 김지은 기자 inhwa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