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 광화문광장에 세월호 희생자 304명을 의미하는 304개의 구명조끼가 놓여 있고 그 아래 희생자의 이름이 쓰여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촛불민심’이 요구하는 우리 사회의 시급한 개혁과제는 무엇일까. 또, 이를 위해 정치권은 당장 무엇을 해야할까.
11일 <한겨레>가 던진 이 질문에 응한 전문가 32명의 대답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자의 전문 영역 차이를 뛰어넘어 하나의 커다란 교집합을 이뤘다. 재벌·검찰·언론·교육·노동 개혁이 필요하며, 야권은 이를 해결해낼 대안과 수권능력을 갖춘 세력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최순실 국정농단에 모든 국민들이 분노한 것은 시대착오적 정경유착의 불법행위가 21세기에 재연됐기 때문“이라며 “재벌개혁을 통해 경제민주화를 실현하는 게 다음 대통령의 핵심과제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촛불 광장에 수많은 청년과 비정규직 시민 등이 쏟아져 나온 점 등을 언급하며 “임금 격차 축소와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혁백 고려대 교수는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의 입학 및 학사 특혜를 언급하면서 “교육개혁이 필요하다”고 했다. 임 교수는 또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시민의 함성이 공영방송에 보도가 제대로 되지 않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며 ‘언론개혁’을 개혁과제로 함께 꼽았다.
김한규 서울변호사회 회장은 “언론에서 이슈를 만들기 전에 검찰은 미르·케이스포츠재단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 등에 대해 지리멸렬하게 수사를 해왔다. 검찰이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법대로 수사했다면 이런 국정 혼란을 좀더 일찍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검찰 개혁을 강조했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는 “시민들은 청와대 앞 1㎞가 아니라 100m 앞까지 가서 집회할 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 또 광장에서 자유롭게 정치적 의사를 표현했다. 이제 공권력이 명예훼손이니 사전선거운동이니 하면서 과거처럼 제한하려 하면 시민들이 못 받아들일 것”이라며 “광장에서 시민들이 확인한 권리에 맞게 언론·표현·집회·결사의 자유와 관련한 법률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민의 목소리를 정치권이 직접 수용하지 못하는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종철 연세대 교수는 “승자독식의 현행 선거법 때문에 국민의 절반 이상은 자신의 대표를 내지 못하는 구조”라며 선거법과 정당법 개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독일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해 ‘사표’를 방지하고 다양성을 강화하는 방안 등이다. 좀더 나아가, ‘직접 민주주의’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임지봉 서강대 교수는 “국회가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는 대의제의 위기가 촛불을 통해 국민들의 ‘직접 참여’ 욕구로 분출됐다”며 “대통령을 국민들이 직접 탄핵할 수 있는 국민소환제나, 헌법·법률 개정안을 국민들이 낼 수 있는 국민발안제 도입 요구가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야권에 대해서는 “시민단체를 따라가고 있을 뿐, 대안제시가 전혀 안 보인다”(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는 지적이 쏟아졌다. 강병구 인하대 교수는 “야당은 촛불 시민혁명을 대선에만 이용하면 안 된다. 우리 사회가 제대로 변해나갈 수 있도록 다양한 분야에서 개혁을 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미 연세대 교수는 “더불어민주당은 마치 표를 모으고 표를 빼앗길까봐 전전긍긍하면서 정치 자체를 지루하게 만드는 행태가 실망을 주고 있다”며 “정치를 역동적이고 참여적으로 만들 아젠다를 개발하고, 대선 주자들간 자유로운 토론과 경쟁을 벌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여당인 새누리당에는 하나같이 ‘당 해체’를 주문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강성 친박 일부는 정계은퇴해야 하고, 당은 간판을 내려여 한다”고 말했고,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해체·분당을 피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 당이 없어진 뒤에 양심적이고 상식적인 건전한 보수 정당으로 탄생해야 한다”고 했다.
윤형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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