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오른쪽 셋째)이 23일 오전 서울 마포구 도화동 가든호텔에서 새누리당 의원 9명과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박찬우·민경욱·이만희·박덕흠 의원, 반 전 총장, 이철규·권석창 의원.공동취재사진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특정 정당에 입당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른바 ‘제3지대’에서 ‘빅텐트’를 꾸릴 뜻을 명확히 내비쳤다.
반 전 총장은 23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제3지대론’과 관련해 “국가와 국민에 관심 없고 이념에 빠진 양극단 세력을 제외한 분들이 힘을 합치자는 주장”이라며 “여기에 동의하시는 모든 분을 열린 마음으로 만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은 ‘대통합’”이라며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가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른바 친박(근혜)·친문(재인)에 반대하는 세력들을 모두 규합하겠다는 뜻이다.
반 전 총장은 자신을 일컬어 “정치인이라면 신인 중에도 신인”, “공장에서 바로 나와 좋은 냄새가 나는 가구 같은 사람”이라고 표현하며, “이명박·박근혜 정권과 관련이 없는 사람이다. 내가 (대통령) 되는 게 정치교체이자 정권교체”라고 주장했다.
그는 제3지대를 하나로 엮어낼 고리로 헌법 개정을 거론했다. 반 전 총장은 개헌에 대해 “정치교체를 위해 꼭 필요하다. 새로운 시대에는 견제와 균형을 전제로 한 분권형 대통령제가 가장 바람직하다”며 “개헌 시기는 빠를수록 좋지만, 문재인 전 대표와 더불어민주당이 반대하고 있어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각을 세웠다. 또 “국가를 통합하고 화해를 도모하려면 (대선·총선·지방선거를) 하루에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임기 5년을 다 채우지 않고 21대 총선인 2020년 상반기까지 단축하는 방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반 전 총장은 이날도 새누리당 초·재선 의원 9명을 만나는 등 ‘빅텐트’ 구성을 위해 전방위적으로 움직였다. 반 전 총장은 이날 오전 서울 마포 사무실 건너편의 호텔에서 박덕흠·권석창·이만희·최교일·이양수·이철규·민경욱·박찬우·김성원 의원을 만났다. 그는 이 자리에서도 “(대선에서) 끝까지 간다”며 제3지대의 중심축이 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의원들이 ‘보수통합의 구심점이 되어달라’고 하자 반 전 총장이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앞서 반 전 총장은 지난 21일 김종인 전 민주당 비대위 대표와 회동했고, 바른정당 소속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만나 영입을 제안했다. 22일에는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의 ‘국민주권개혁회의’ 출범식에 이상일 전 새누리당 의원을 보내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하지만 반 전 총장이 연대 대상으로 꼽는 국민의당의 박지원 대표는 “우리는 셔터를 내렸다”고 잘라 말했다. 박 대표는 이날 <한국방송>에 출연해 “우리는 국민의당이 제3지대 빅텐트이고, 국민의당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들어오면 공정한 경선을 통해서 강한 후보가 대선에 나가는 것이 정권교체의 길이라고 했다”며 “하지만 그 분들(반 전 총장 쪽)은 누구나 여야 가릴 것 없이 빅텐트에 들어와서 경선하자는 건데 그건 실현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박 대표는 “반 전 총장이 결국 창당은 못 하고 제5의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든지, 박근혜 대통령의 뒤를 이어서 새누리당으로 가든지 할 걸로 본다”고 말했다.
한편, 반 전 총장은 이날 밤 <한국방송> 프로그램 ‘대선주자에게 듣는다’에 출연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에 대해 “정보·안보 기관에서 세세한 정보를 갖고 있겠지만,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본 여러가지 정세는 훨씬 더 예측이 어려운 사람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배치 논란에 대해서는 “사드는 공격용 무기가 아닌 방어용 무기로 국가 안보에는 타협이 있을 수 없다”며 “중국과의 갈등은 제가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전임 후진타오 주석과 현 시진핑 주석도 만난 적이 있어, 신뢰관계가 있으니, 제가 외교적으로 잘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보수와 진보 양쪽에 절반씩 발을 담그며 ‘반반’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반 전 총장은 “진보랑 보수를 확연하게 구분하는 것은 위험하고 의미없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가치 존중하고, 한반도 안보 튼튼히 하자는 면에서 철저한 보수주의자지만,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많은 약자들 대변하고, 이들을 도와주는 것은 보수주의자도 다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23만 달러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오늘 법률 대리인(박민식 전 의원)을 통해서 아주 명확하게 거짓이라고 상황을 (언론에) 설명했다. 이를 계기로 완벽하게 깨끗하게 정리됐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동생 반기상씨와 조카 주현씨의 비리 의혹에 대해서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제 부덕의 소치다.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중요한 건 모든 게 법적 절차에 따라 명명백백하게 밝혀지는 것”이라며 “동생에게도 법적 절차를 통해 이 문제를 잘 해명하라, 또 억울한 게 있으면 밝히라고 얘기할 생각”이라고 말했다.김진철 송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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