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대담서 18살 선거권·재벌개혁 등 모호한 답변 일관
“제가 언급할 성질 아니고…국민들 의견 듣고 동의 받아서…”
“제가 언급할 성질 아니고…국민들 의견 듣고 동의 받아서…”
“논란이 있는 것 같아서, 국민들 의견을 종합해서 그 바탕으로 결정돼야 한다.”
“구체적인 중임제는 제가 언급할 성질이 아니고…국민들 동의 받는 게 바람직하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기름장어’란 별명에 걸맞은 ‘두루뭉술’ 화법을 선보였다. 여론이 갈리는 사안에 대해선 국민들 의견을 종합하겠다거나 전문가·학자가 잘 해결할 거라고 피해나간 반면 기후변화협약 등 확실한 업적이나 명백한 실수에 대해서만 뚜렷한 견해를 밝혔다.
반 전 총장은 23일 <한국방송> 대담에서 ‘18살 선거권 부여’와 관련해 “참정권의 폭을 가급적 많은 국민에게 부여하는 대원칙에 찬성한다”면서도 “18세로 하향하는 경우 여러가지 생기는 문제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는 것 같다”고 유보적 태도를 보였다. 그러면서 “이 문제도 국민들의 의견을 종합해서 그 바탕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피해나갔다.
반 총장은 ‘대통령 중임제 개헌’과 관련해서도 “구체적 중임제는 제가 언급할 성질이 아니고 그건 역시 전문가가 초안 잡고 국회가 논의해 국민들 동의받는 게 바람직하다”며 두루뭉술하게 논란을 피해나갔다.
반 전 총장은 예민한 문제와 관련해선 대부분 국민과 전문가에게 떠넘기는 식으로 빠져나갔다. 그는 ‘국내 현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미국에 있으면서 한국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대개는 다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 다만 어떻게 해결해야 하느냐, 이건 제가 초보라고 생각한다”면서 “국민의 힘을 합치면 불가능한 게 없다”고 명확한 언급을 내놓지 않았다.
‘재벌개혁’ 방안과 관련해서도 “납품단가 후려치기나 일감 몰아주기라든지, 순환출자로 회사가 재벌의 연결고리를 계속 갖는 이런 것도 재검토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면서도 “제게 힘이 있으면 최고의 전문가, 학자, 실제 경영참여하는 사람들과 함께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과 관련해서도 “미국이 재협상 같은 거 없길 바라고, (재협상 요구가) 있다면 유능한 통상교섭 전문가가 있기 때문에 대응하면 된다”고 밝혔다.
반 총장은 자신의 전문분야라고 여기는 ‘외교’와 관련해선 자신감을 강력히 드러냈지만 역시 구체적인 언급은 내놓지 않았다. 그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의 한반도 배치와 이에 대한 중국의 반발과 관련해 “외교적으로 빨리 해결 가능하다”고 강력한 자신감을 드러내면서 “유엔 사무총장으로 근무하면서 후진타오, 시진핑, 리커창, 왕이 등 각계각층의 모든 사람과 긴밀하고 실효관계를 가졌다”며 인적 친분을 강조했다. 하지만 “한-중 관계는 한국뿐 아니라 중국에게도 중요하기 때문에 오래 끄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원칙적인 견해를 밝혔을 뿐, 구체적 해법에 대해선 입을 닫았다.
반 총장이 가장 명확한 입장을 밝힌 것은 자신의 유엔 사무총장 시절 업적으로 꼽는 기후변화협약에 대한 설명과 기자들을 “나쁜 놈들”이라고 지칭해 비난받은 데 대한 해명이었다. 대담 진행자가 유엔 사무총장 시절 업적과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묻자 그는 “2007년 1월 (유엔 사무총장에) 취임하면서부터 인류와 지구를 살리기 위해 최우선 순위를 뒀다. 전세계 방방곡곡 안 가본 데가 없다. 북극은 2번, 남극은 1번, 아마존강 유역도 갔다”고 강조하며 “역사적 합의를 극적으로 타결했다”고 자화자찬했다. 또 유엔 사무총장 재직 시절 “행복한 순간이 많지 않았다”면서도 “기후변화협약 협상이 타결됐을 때 환호하고 양손을 들고 세계지도자들과 환호했다”고 말했다.
그는 ‘나쁜 놈들’ 논란과 관련해선 “시차도 잘 적응 안되고 갑자기 지방 순시하는데 기자들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어찌 보면 감정적 표현을 한 점이 있다”며 “후회스럽게 생각하고 해당 언론인에게 사죄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언니가 보고 있다 49회_반기문 쫓아다닌 “나쁜놈들”의 풀스토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