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31일 오후 서울 마포 트라팰리스에서 개헌 관련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31일 “촛불 민심이 변질됐다”고 말했다. 귀국길에 ‘촛불’을 상찬하던 태도를 바꿔, 19일 만에 평가절하한 것이다. 반 전 총장은 또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향한 공격 수위를 높이며 정치권에 ‘개헌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귀국 이후 지지율 정체가 이어지자 보수 색깔을 강화하는 등 전략 수정에 들어간 것으로 풀이된다.
반 전 총장은 이날 오후 서울 마포 사무실 부근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반문재인 개헌연대가 촛불 민심이 요구하는 적폐 청산의 해법이냐’는 질문에 “광장의 민심이 초기의 순수한 뜻보다는 약간 변질된 면도 없지 않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촛불집회 초기와) 다른 요구들이 많이 나오고, 그런 면은 좀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플래카드나 구호 이런 게 제 생각엔 좀 다르다”며 “제가 가보진 않았지만 티브이 화면에서 볼 때 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설명했다.
반 전 총장의 이런 발언은 기자의 질문에 답하면서 나왔지만, 계획된 것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반 전 총장 쪽 관계자는 “여러 민심 탐방을 했지만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상황에서, 보수 색깔을 명확히 하라는 요구가 많았다”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은 지난 12일 귀국 직후 촛불 민심을 두고 “자랑스러웠다”, “역사는 2016년을 기억할 것”, “광장의 민심이 만들어낸 기적”,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하나가 됐던 좋은 국민”이라고 높이 평가했었다. 당시는 박근혜 대통령과 선 긋기를 통해 중도층을 끌어내려는 의도였으나, 이후 지지율 정체가 계속되자 보수층 다잡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반 전 총장은 ‘대선 전 분권형 개헌’을 고리로 한 ‘반문재인 연대’를 제안했다. 그는 “모든 정당과 정파 대표들로 개헌협의체를 구성할 것과, 이 협의체를 중심으로 대선 전 개헌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을 제안하면서 “대선 전에 꼭 개헌해야 한다는 정당과 정파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대선 전 개헌을 실현하는 방안을 적극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권교체’ 뒤에 숨은 패권추구 열망을 더 이상 감추려 해선 안 된다”며 문재인 전 대표를 집중 비난했다.
하지만 정치권은 반 전 총장의 제안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김종인 전 민주당 비대위 대표는 “연대가 잘 안 되니까 제시한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인명진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은 <엠비엔>에 출연해 “사전에 만나서 얘기한 후에 해야지 불쑥 ‘내가 할 테니까 와라’, 무슨 힘을 믿고 저러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국민의당 김경진 수석대변인은 “개헌 논의는 국회 개헌특위에서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논평했다. 바른정당 장제원 대변인은 “자칫하면 정치공학적 연대로 비칠 수 있다”고 말했다. 손학규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도 “권력구조만 바꾸자는 좁은 개헌은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김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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