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대담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신진욱 중앙대 교수(사회학)
12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박명림 연세대 교수(왼쪽)와 신진욱 중앙대 교수가 탄핵 이후 우리 사회의 과제에 대해 대담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박명림 연세대 교수.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한국사회 세력분포는 보수 우위
움츠러들었지만 단기적…
개혁 드라이브 정교한 설계 않으면
차기 정부 어려움 겪을 것
민주·국민·정의당 연정 필수고
바른정당과도 적극적 모색
자유한국당도 포기할 필요 없어” -‘탄핵 이후’를 우려하거나 목소리도 나온다. 박 보수세력은 1997년 외환위기를 초래하고 나서도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자 총리 인준을 안 해주며 정부 출범을 방해했다. 또 참여정부 때는 중대하지 않은 법률 위반을 꼬투리잡아 탄핵소추했다. 개혁 드라이브를 상당히 정교하게 설계하지 않으면, 인수위 기간조차 없는 차기 정부는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또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쌓인 절망적 유산이 너무나 넓고 깊다. 특히 외교·안보 분야가 그렇다. 사드, 위안부 합의, 개성공단 폐쇄 등 기존 정부가 맺은 합의를 준수하자니 국가가 치를 대가가 너무 크고 뒤집자니 또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딜레마에 놓여 있다. 구한말 식민지로 가기 직전, 해방 뒤 분단이 되기 직전 말곤 이런 외통수 상황이 없었다. 신 탄핵정국에서 시민들은 높은 정치의식, 정치적 효능감,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에 적폐를 청산하는 개혁에 대한 지속적인 여론의 지지가 있을 거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를 돌아보자. 초반엔 정치개혁을 열망하는 이들의 지지를 받았지만 나머지 다수는 피로감을 느꼈고 이후 지방선거·총선·대선에서 패배했다. 차기 정부 앞엔 ‘오래된 난제’가 놓여 있다. 국민들의 경제적 불안과 불평등 해소, 동북아 평화를 이룰 수 있는 외교와 재벌개혁.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도 이를 해결하지 못했고, 이후 보수정권 9년 동안 문제가 더욱 누적됐다. 차기 정부는 이런 문제들의 난해함을 정직하게 밝히고, 거대한 비전을 성급하게 내놓지 말아야 한다. 대선 국면에서 개혁 주체세력들은 정치개혁·적폐청산 같은 ‘합의 이슈’는 명확한 태도로 나아가야 하지만, 외교 분야와 재벌개혁 같은 ‘갈등 이슈’에선 신중한 태도를 취해야 하고 말 한마디 한마디 조심해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은 사드 배치에 합의함으로써 미국이냐 중국이냐를 던져놓고 사라졌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위험하고 대가를 치러야 한다. 재벌을 해체한다고 해서 당장 중소기업의 역량이 살아나지 않는다. 갈등 이슈를 선명성 차원으로만 접근하면 청산 대상이 살아나는 빌미를 준다. 민주당 등 개혁세력이 중대한 실수를 한다면 앞으로 2개월 내에 구체제 세력이 살아날 가능성이 있다. -김종인 전 민주당 의원이 탈당해 개헌을 고리로 비패권 세력을 규합한다는데 이것이 정계개편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나? 박 나는 지속적으로 ‘헌법개혁’을 주장해온 사람이지만, 촛불광장 초반부터 ‘탄핵→대선→개헌’의 순서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개헌을 말하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지난 10월 ‘개헌은 블랙홀’이라고 하던 박 전 대통령이 개헌을 본격 제기하면서, 개헌은 박근혜의 정치프레임이 됐다. 이는 박근혜 의제랑 결별하는 국민적 요구와 충돌하는 것이다. 또 지금 ‘대선 전 개헌’을 말하는 사람들은 정치적 생존·연장을 도모하려는 박근혜 세력이거나 그동안 세월호 의제 등으로 국민들이 고통받을 동안 박 전 대통령을 비판하지 않았던 이들이다. 정계에 복귀하거나 탈당할 때 자신의 정치적 실익을 챙기기 위해 너무나 엄중하고 역사적인 문제인 개헌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들이 개헌을 고리로 가설정당을 만든다고? 현재 거론되는 빅텐트는 정책도, 정치지향도, 이념도 없는 ‘가설텐트’에 불과하다. 이들은 국민의 지지를 받기 어려울 것이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차기 정부 앞엔 ’오래된 난제’
김대중·노무현도 해결 못했고
보수정권 9년간 더욱 누적
선명성 차원으로만 접근하면
청산대상이 살아나는 빌미
개혁세력 중대한 실수 하면
2개월내 구체제 세력 살아날 수도” 신 아직 촛불의 열기는 고양기이다. 야합정치가 다수의 지지를 받는 개혁 정당 후보를 위협할 지경에까지 이른다면 촛불이 다시 커질 것이다. 2004년 노 전 대통령 탄핵으로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이 어떤 신세가 됐는지 진지하게 돌아봐야 할 것이다. 진정성을 갖는 개혁이란 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등 탄핵을 추진했던 정당이 연대해 국회에서 개헌을 주도하는 것이다. 박근혜 같은 대통령이 다시 탄생할 수 없도록 개헌을 하는 것은 ‘영구한 개혁’ ‘영구한 적폐청산’을 하는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의회의 논의와 전문가들의 숙의, 국민들의 여론과 헌법 개정 이슈에 대한 충분한 이해 세가지가 뒷받침되는 것이다. 그러려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만약 졸속 개헌이 이뤄진다면, 이는 가장 수준 높은 헌법주의를 실현한 뒤에 가장 저속한 헌법 개정을 한 세계사적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 -정권교체가 되더라도, 여소야대이기 때문에 연정과 협치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박 야권이 집권하면 연립·연합을 넘어 통합정부가 구성돼야 한다. 소속 정당·진영과 상관없이 정부의 노동·외교안보·경제·아이티(IT)·교육·남북관계 등 그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로 드림팀을 구성해서 통합역량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 의제나 열망으로 보면 개혁파가 다수이지만, 의회뿐 아니라 한국사회 세력 분포는 보수 우위다. 이번에 보수 언론·재벌·검찰·학계·종교계는 박근혜의 실정 때문에 움츠러들었지만 이는 단기적, 현상적 위축일 뿐이다. 집권세력의 범위나 역량, 능력이 작으면 작을수록 실패 가능성이 높고 되치기 당하기 쉽다. 이번 촛불은 정치적 효능감이 큰 만큼 기대와 낙담의 주기가 빠르고 낙폭이 클 수 있다. 개혁 의제가 워낙 망라돼있고 근본적이기 때문에 보수의 저항도 강력할 것이다. 한 세력이 집권하면 개혁을 잘할 것 같지만 오래 못 간다. 단기간에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서 어떻게든 기득권층과 타협해야 한다. 이때문에 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의 연정은 필수이고, 탄핵연대를 지속하는 차원에선 바른정당과도 좀더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궁극적으론 자유한국당도 완전히 포기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개헌 정국을 열어서 보수세력을 개혁정권의 일부로 포함시킴으로써, 앞으로 보수가 단독 집권하더라도 모든 개혁을 무력화시키는 그런 것은 없도록 해야 한다. 신 촛불의 ‘반박근혜 여론동맹’은 보수 우위의 우리나라 유권자 지형을 볼 때 ‘비일상적인’ 현상이다. 대선 이후 차기 정권이 시작되면 촛불시민들은 일상으로 돌아가 노동·복지·재벌·외교·군사·남북관계 등 각종 의제에서 분열할 것이고, 우리에게 익숙한 보수 우위의 지형으로 돌아갈 것이다. 보수 우위의 지형을 바꾸지 못한 채로 개혁정부가 여야 협력을 하게 된다면, 노무현 정권의 딜레마, 즉 보수의 지지도 얻지 못하고 핵심 지지층도 이탈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그렇다고 보수와 협력을 안 하면 정국이 교착상태에 빠지거나 보수층으로부터 점점 더 강한 반발을 불러올 수도 있다. 이 딜레마를 넘어설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차기 정권이 촛불의 흐름을 끌고 가면서, 개헌과 여러 가지 개혁 작업을 점진적으로 추진함으로써 보수 우위 지형을 이동시키는 것이다. 박 장기적으론 탄핵·대선·개혁은 촛불의 자장 안에서 움직일 것이다. 탄핵 열기가 정치연합 또는 헌법개혁을 포함한 국가개혁으로 연결되지 않고선 딜레마와 위기 상황이 계속될 것이다. 그 변화의 주기가 짧고 크기 때문에 두려운 거다. ‘정치예술’을 통해서 촛불열차, 대선열차, 개혁열차 이 3단계를 넘는 게 대한민국 100년을 결정한다. 신 막스 베버가 말한 것처럼, 역사에선 ‘전철수’(switchmen)라는 개념이 있다. 제도·사회구조는 좀처럼 바꾸기 힘든 지속성이 있지만, 안팎의 혁명적 변화에 의해서 그 역사적 경로가 근본적이고 선명하게 바뀌는 국면이 결정적으로 온다. 지금, 이걸 놓치면 되돌리기 쉽지 않다. 이유주현 오승훈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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