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뉴스분석 왜?
유권자 권리 막는 선거법
유권자 권리 막는 선거법
▶ 4월17일 0시부터 19대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이 시작됐습니다. 선거는 주권자인 시민들이 스스로 대표자를 선택하는 축제의 장이지만, 현행 공직선거법 규제 틀 속에서 유권자들은 여전히 구경꾼에 머무는 것이 현실입니다. 최근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거나 선거관리위원회에 단속된 사례를 통해 유권자들의 정치적 의사 표현을 가로막아온 선거법 독소 조항을 짚어보았습니다.
지난해 10월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소속 단체 대표 등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2016 총선넷’ 활동가들을 규제 중심의 선거법으로 기소한 검찰을 규탄하며 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누구든지 선거일 전 180일부터 선거일까지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하여 1. 화환·풍선·간판·현수막·애드벌룬·선전탑, 그 밖의 광고물을 설치·진열·게시·배부하는 행위 2. 표찰이나 그 밖의 표시물을 착용·배부하는 행위 3. 후보자를 상징하는 인형·마스코트 등을 제작·판매하는 행위를 할 수 없다. 정당(창당준비위 포함) 명칭·후보자(후보자가 되려는 사람 포함) 이름과 사진 또는 그 명칭·이름을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을 명시하면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것으로 본다.”
지난해 20대 총선을 앞두고 낙선운동을 진행한 ‘2016 총선시민네트워크’는 지난해 공직선거법 규제를 피하기 위해 ‘나는 □ 안 찍어!’라고 쓰인 구멍 뚫린 피켓을 활용했다. 이 피켓에는 후보자 이름, 정당명이 들어가 있지 않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지난해 2월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이 서울 국회 앞에서 최경환 의원의 공천을 반대하는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검찰은 김 위원장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일반 유권자 정치 표현 막혀
선거에 영향 주는 현수막·문서
선거일 180일 전부터 게시 금지
선거기간 중 집회·모임도 안 돼
미국 등은 선거운동 포괄적 허용
적극적 권리행사 주문하면서도
법은 소극적 유권자 되길 강요 미국·영국·독일 등 대다수 선진국은 선거운동에 대한 개념을 따로 정의하지 않는다. 반면, 한국 선거법은 선거운동을 ‘당선되거나 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행위’로 정의한다. 그런데 여기서 단서 조항이 붙는다. 선거에 관한 단순한 의사 표시, 입후보와 선거운동을 위한 준비 행위, 정당의 후보자 추천에 관한 단순한 지지 및 반대의견 개진, 통상적 정당활동 등은 선거운동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기간을 따로 정해 이를 어길 경우 처벌한다. 대통령 선거는 22일간, 국회의원 선거 13일간만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선거운동을 포괄적으로 제한한 상태에서 허용 가능한 활동을 추가하고 있는 모양새다. 선거운동을 허용한 상태에서 일부 제한 행위를 두는 선진국과 접근 자체가 다르다. 유권자들로서는 선거법 조항이 복잡한데다 이해하기 어려운 문구가 많아, 어떤 활동이 합법인지 아닌지 구분하기조차 어렵다. 선거법 체계를 흔들어 금지 행위만 나열하고 그 외 활동은 모두 허용하는 방식으로 바꾸거나, 선거운동 정의에 대한 명확한 재정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거듭 나오는 배경이다. 검찰은 김민수 위원장의 1인시위를 선거운동으로 보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올해 1월 서울남부지법 형사11부(재판장 반정우)는 “최경환은 2016년 2월11일 새누리당에 경산시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자 신청을 했고 피고인이 1인시위를 한 시점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2월16일이었으며, 지역구와 상관없는 국회의사당 정문에서 유권자들이 지나다닐 가능성이 거의 없는 점심시간에 40여분 정도 1인시위를 한 상황 등을 종합해 피고인의 행위는 정당의 후보자 추천에 관한 단순 지지·반대 의견을 내놓은 것에 해당한다”고 했다. 선거운동에 포함되지 않으므로 정해진 선거운동 기간이 아닌 시기에 1인시위를 한 것은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또 재판부는 “원칙적으로 선거운동 자유를 보장하는 선거법 취지와 죄형법정주의 원칙을 고려해, 선거운동 등의 제한 규정은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 선거법 제90조에서 규정한 광고물 ‘게시’는 특정한 장소에 내붙이거나 내걸어 고정시키는 행위로 봐야 하며, 피고인이 피켓을 들고 있는 행위가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광고물 ‘게시’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선거법 제90조 제1항 위반 혐의에 대해서도 무죄를 선고했다. 이 재판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는데, 두가지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배심원 7명 가운데 4명은 무죄로 판단했다. 현재 이 사건은 검찰의 항소로 서울고등법원에서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정책평가 인쇄물도 못 돌린다고요? 청소년·학부모·인권단체들의 연대체인 ‘인권친화적 학교+너머 운동본부'(이하 너머본부)는 올해 3월 대선 후보 및 예비후보 10명에게 학습시간 축소, 청소년 참정권 확대 등 10가지 정책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지 물었다. 10명 가운데 7명이 답변을 보내왔고, 이 내용은 인터넷을 통해 공개돼 있다. 너머본부는 문재인·안철수·심상정·김선동 후보 4명이 보내온 답변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청소년인권시험 치른 대선 후보들’이란 제목의 4쪽짜리 인쇄물을 만들었다. 이 단체 활동가들은 지난 1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해당 인쇄물을 시민들에게 나눠 주다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의 제지를 받았다. 고유경 너머본부 활동가는 “선관위로부터 인쇄물 앞면에 대선 후보자들의 이름과 사진이 나와 있다는 이유로 시민들에게 나눠 줄 수 없다는 설명을 들었다. 애초 각 후보의 답변에 점수를 매겼는데 이런 활동도 선거법상 금지돼 있더라. 그래서 우리가 주장하는 정책에 대해 후보들이 찬성하는 정도를 ○나 △로 표시하는 등 불법을 피하려고 노력했는데 또다른 복병이 있었다”며 황당해했다. 서울시선관위 쪽은 선거법 제93조 제1항에 따라 이 단체의 인쇄물 배포를 단속했다는 입장이다. 선거법 제93조 제1항은 정당·후보자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문서 등을 게시하거나 나눠 주는 걸 금지하고 있다.
“누구든지 선거일 전 180일부터 선거일까지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하여 정당(창당준비위, 정당의 정강·정책 포함)과 후보자(후보가 되려는 자 포함)를 지지·추천·반대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거나, 정당 명칭 또는 후보자의 성명을 나타내는 광고·인사장·벽보·사진·문서 및 도화·인쇄물이나 녹음·녹화테이프,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것을 배부·첩부·살포·상영 또는 게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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