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 강한유감…한나라 도청 자체 비난
민주 여권 비난…민노 “도청대상자 명단 공개”
임동원·신건 전 국가정보원장의 구속에 대한 정치권 대응이 ‘4당4색’으로 복잡미묘하게 엇갈리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강한 반발과 호남 민심의 추이, 검찰 수사의 방향 등에 따른 정치적 파장과 손익을 의식한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은 김 전 대통령의 현 정부 성토에 곤혹스러워하며 ‘노기’ 달래기에 부심했다. 전병헌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우리도 믿기지 않는데 불법도청의 최대 피해자였던 김 전 대통령님의 심정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다”며 “국정원의 잘못된 도청 관행이 일부 남아 있었을지는 모르나, 국정원을 개혁하고 도청을 근절시켰던 분들이 불법도청을 지휘했다고는 우리도 믿기 어렵다”고 밝혔다.
정세균 의장은 이날 아침 회의에서 “역사적, 사법적 차원에서 정의가 실현됐다고 국민이 납득할지 강한 의구심이 든다”고 검찰에 유감을 나타냈다.
열린우리당은 김대중 정부 이전에 발생한 도청 의혹에 대한 진실규명 쪽으로 방향전환도 시도했다. 민병두 기획위원장은 “박정희 및 김영삼 정부 시절에 자행된 광범위하고 대대적인 도청이 ‘원조 범죄’이고, 김대중 정부 시절의 불법도청은 ‘관습 범죄’여서 둘 사이엔 엄청난 차이가 난다”며 “원조 범죄가 공소시효 뒤에 숨어서 웃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며, 검찰은 원조 범죄를 철저히 파헤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은 김 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며, 도청 자체를 강도높게 비난했다. 전여옥 대변인은 “도청은 거대 국가권력의 조직적이고 치밀한 범죄”라며 “도청 결과가 어떻게 쓰였는지 국민들의 의혹이 없도록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나라당은 김대중 정부에 대한 공격은 자제하는 분위기다. ‘엑스파일’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어디로 번질지 모르는데다, 김영삼 정부 시절의 ‘미림팀’ 도청 사건에 무관하다고 할 수 없는 처지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이날 긴급 대표단회의를 열어, “현 정권이 정치적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임 대통령을 흠집내려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여권에 대한 공세 수위를 높였다. 민주당은 특히 “법무부가 사전에 영장청구 방침을 보고했을텐데도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은 마치 아무것도 몰랐던 것처럼 ‘이중 플레이’를 했다”고 비난했다. 민주당의 이런 태도는 다분히 김 전 대통령과 호남 민심을 의식한 것이다.
도청 사건과 특별한 이해관계가 없는 민주노동당은 도청 대상자들의 명단 발표를 촉구했다. 심상정 의원단 수석부대표는 “누가 어디서 어떻게 도청당했는지 국민은 알 권리가 있다”며 “도청 대상자 1800여명의 명단을 발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석규 성연철 기자 sky@hani.co.kr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