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사이버외곽팀’이란 이름의 대규모 민간인 여론조작팀을 운영한 사실이 확인돼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뒤늦게 서초동으로 출근하며 세상 물정을 새로 배우고 있는 법조팀 홍석재입니다. 4년 만에 ‘친기자’ 복귀전입니다. 살짝 떨리네요.
지난 3일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의 발표를 보면, 국정원은 2009년 이후 4년간 민간인 여론조작 조직을 최대 30개 팀까지 운영했습니다. 사이버외곽팀의 하나로 이미 정체가 드러난 ‘알파팀’의 규모가 10명 정도였던 점을 고려하면, 30개 팀에 최소 수백명의 민간인이 여론조작 작업에 투입됐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수천명이 동원됐을 것이란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댓글’에 대한 대가로 2012년에만 국정원 특수활동비 30억원이 ‘고료’(활동비)로 지급된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국정원 내부 조직인 심리전단이 사이버외곽팀과 함께 ‘여론조작’ 활동을 벌인 사실도 확인됐고요.
국정원 사이버외곽팀에 대한 검찰 수사가 기정사실화되면서 덩달아 주목받는 게 있죠. 바로 공소시효입니다. 이번 사건에 적용할 국정원법상 ‘정치관여죄’의 공소시효가 5년이냐, 7년이냐를 두고 혼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정해구 국정원 개혁위원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공소시효가 5년이라 남은 시간이 5개월뿐”이라고 한 반면,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일부 율사 출신들은 “2014년 이전 벌어진 정치관여죄의 공소시효는 7년이 맞다”고 해서, 서로 말이 엇갈렸습니다. 공소시효는 범죄가 일어난 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죄를 물을 수 없도록 한 제도입니다. 이번 경우 공소시효가 특히 중요한 까닭은 국정원 개혁위가 지금까지 확인한 사이버외곽팀의 최종 활동시점이 2012년 12월인데, 만일 공소시효가 5년이라면 검찰이 올해 말까지 수사를 마무리하지 못한 경우 관련자 처벌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사무실로 들어가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국가정보원이 대규모 댓글 부대를 운영했다는 의혹을 계기로 이명박 정권에 대한 검찰의 수사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다면 이번 사건의 공소시효는 5년일까요, 7년일까요? 뜬금없지만, 먼저 초등학교 4학년 수학 ‘어림하기’ 과정의 문제 하나를 풀어보겠습니다. 놀이공원에 ‘키 100㎝ 미만 어린이는 보호자와 함께 회전목마를 타야 합니다’라는 규정이 있습니다. 이 경우 ‘미만’은 100㎝를 포함하지 않기 때문에, 99.9㎝ 어린이부터 이 규정이 적용됩니다. ‘100㎝ 이하’라고 적었다면, 100㎝ 어린이도 보호자 없이는 회전목마를 탈 수 없습니다.
다시 국정원법을 볼까요. 국정원법은 사이버외곽팀 사건처럼 2014년 이전에 벌어진 정치관여죄의 최대 형량을 ‘징역 5년 이하’로 정했습니다. 당시 국정원법은 정치관여죄의 공소시효를 형사소송법의 기준에 따르도록 했습니다. 형소법은 죄의 형량에 따라 ‘5년 미만 징역’(5년 미포함)은 공소시효를 5년, ‘5년 이상 10년 미만 징역’(5년 포함)은 7년으로 정했습니다.(2014년 개정된 현행 국정원법은 형소법과 상관없이 공소시효를 무조건 10년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정치관여죄의 형량은 ‘징역 5년 이하’로 최대 5년을 포함합니다. 따라서 공소시효는 7년을 적용해야 하는 것이죠. 국정원법상 정치관여죄가 흔치 않은 범죄인데다, 공소시효까지 고려해야 하는 경우는 더 드물기 때문에 법원과 검찰 공안 관계자가 법전을 거듭 살펴보며 이 대목을 확인해주었습니다. 국정원 개혁위가 2012년 12월 이후 사이버외곽팀 운영 현황도 파악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추가로 여론조작팀의 흔적이 드러날 경우 공소시효는 그만큼 더 늘어날 수 있습니다.
사이버외곽팀의 활동 개시 시점도 더 꼼꼼하게 밝혀져야 합니다. 국정원 개혁위는 사이버외곽팀 첫 활동 시점을 2009년 5월로 못박은 바 있는데,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알파팀’이 2008년부터 조직을 꾸리고 활동했던 사실이 드러난 바 있습니다. 최근 ‘알파팀’의 전직 팀원은 <한겨레>에 보낸 메일에서 “2013년 2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에도 관변 우익 단체에 대한 지원 연장선상에서 사이버상의 여론 조작이 벌어졌을 거라는 강한 의심이 있다”며 “현재 국정원 개혁위 조사는 2009년 취임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 시절의 사이버외곽팀 활동에만 초점을 맞춘 것 같은데 그 이전 국정원의 여론조작팀 실체도 상세히 확인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해왔습니다.
홍석재 사회에디터석 법조팀 기자 forchi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