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퇴출시키기 위해 광범위한 공작을 벌이고, 이런 내용을 ‘브이아이피(VIP) 일일보고’ 등의 형태로 청와대에 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 수사가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향할지 주목된다.
국가정보원 개혁발전위원회(위원장 정해구)는 11일 산하 조직인 ‘적폐청산 티에프(TF)’로부터 이런 내용이 담긴 ‘엠비(MB) 정부 시기의 문화·연예계 정부 비판 세력 퇴출건’ 조사결과를 보고받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주성 전 국정원 기조실장 등에 대해 국가정보원법상 직권남용 금지 위반 등으로 검찰 수사의뢰를 권고했다고 밝혔다.
국정원 개혁발전위 자료를 보면, 원세훈 전 원장은 2009년 2월 취임 이후 수시로 여론을 주도하는 문화·예술계 특정 인사와 단체에 대해 ‘대통령에 대한 언어테러로 명예를 실추’, ‘좌성향 영상물 제작으로 불신감 주입’ 등의 이유를 들어 반대 및 퇴출 등 압박 활동에 나서라고 국정원에 지시했다. 이에 따라 당시 국정원은 문화계 이외수·조정래·진중권, 배우 문성근·명계남·김민선, 영화감독 이창동·박찬욱·봉준호, 방송인 김미화·김제동·김구라, 가수 윤도현·신해철·김장훈 등 5개 분야 82명을 퇴출 대상으로 적시해 전방위적으로 압박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정원은 퇴출 대상으로 선정한 연예인의 소속사에 대해 세무조사를 유도하는 것은 물론 이들이 출연한 프로그램 편성 관계자를 인사조치하도록 유도하고, 국제영화제 위원장 후보에서 배제하거나 심지어 방송대상 수상작 선정에 관여해 탈락을 요청한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 방송인 김미화씨는 김재철 당시 <문화방송>(MBC) 사장의 지시에 따라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에서 하차했다.
당시 청와대도 민정수석, 홍보수석, 기획관리비서관을 통해 ‘좌편향 연예인들의 활동 실태 및 고려사항 파악’(2010년 8월) 등을 지시했고, 이에 따라 국정원은 ‘브이아이피(VIP) 일일보고’, ‘비에이치(BH) 요청자료’ 등의 형태로 보고했다고 국정원 개혁발전위는 밝혔다. 브이아이피는 대통령을, 비에이치는 청와대를 가리킨다.
국정원은 2010년 3월 당시 원세훈 원장의 지시에 따라, 김재철 문화방송 사장 취임을 계기로 인적 쇄신과 ‘편파 프로그램’ 퇴출 등을 담은 ‘엠비시(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도 작성한 것으로 조사됐다.
국정원 개혁발전위는 또 2013년 언론에 보도된 바 있는 이른바 ‘박원순 서울시장 제압 문건’을 원세훈 국정원에서 작성해 심리전 활동에 활용한 점을 확인하고, 원 전 원장 등에 대해 국정원법상 정치 관여 금지 위반으로 검찰 수사의뢰를 권고했다.
김보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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