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부·의회 2중 통제 장치 마련해야-국정원 감시 시스템 어떻게 만들까 ‘국정원 제대로 고치자’
국정원 제대로 고치자 <하> 행정부·의회 2중 통제 장치 마련해야
완벽하게 차단된 조직은 반드시 타락한다. 국정원 개혁 방안에 외부기관의 적절한 감시와 통제가 포함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01년 9월 신건 당시 국가정보원장은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도·감청은 하고 있지 않다. 도청은 사회적 불신을 조장해 엄청난 비용을 발생시킨다”고 말했다. 2000년 10월 김은성 당시 2차장도 정보위 국감에서 “시디엠에이 전화는 (도·감청) 기술개발이 되지 않아 감청 장비를 구입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게 “도청은 없다”고 강조하던 국정원 수뇌부는 지금 철창 신세를 지고 있다.
국회 정보위원회는 국정원을 통제하는 유일한 외부 기관이다. 그러나 국정원의 거짓말 앞에 무기력하다. 국정원의 예·결산을 심사하고 국정원이 하는 일에 대한 보고를 들을 수 있지만, 과도한 비공개 원칙, 비밀준수 원칙 등 정보위의 활동을 제약하는 요인이 하나 둘이 아니다.
정보위 회의에는 정보위원만 참여할 수 있다. 기밀자료는 정보위원들도 대면보고를 받거나 기밀실에 가야 볼 수 있다. 열람만 될 뿐 복사나 기록은 안 된다. 보좌진의 도움은 꿈도 꿀 수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의원들이 자료를 정밀 분석하고 허점을 파헤치는 것은 엄두를 내기 어렵다.
정보위를 독립 상임위로 만들어 예·결산 심의 강화
정부, 민간인도 참여하는 위원회 신설해 직무 감찰
대통령직속 국가정보위·감사원 감사 허용 등도 논의 국정원이 정보위에 내놓는 자료도 제한적이다. 국회 정보위 국정원개혁소위원장인 임종인 열린우리당 의원은 22일 “정보위에서도 1급 비밀은 통제가 심해,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2급 비밀로 분류되는 예산안은 법적으로 ‘부실’이 허용되어 있다. 세목이 아니라 총액으로 보고하면 되고, 예산안 관련 첨부서류도 면제된다. 덕분에 국정원은 뒤로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어 감청장비를 개발하고서도 “도청은 없다”고 태연히 거짓말을 할 수 있었다. 불법도청 사건이 터진 뒤인 지난 8월, 국회 정보위에는 처음으로 예결산심사소위원회가 구성됐다. 김남수 정보위 입법조사관은 “전체회의와 달리 소위에서는 사업단위별로 세목보고도 이뤄지고 관련 내역자료도 제출되는 등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상세내역 보고는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장유식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예산회계에 관한 특례법과 국정원의 자료제출 거부권 등이 폐지되고, 의원들이 전문 보좌기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정보기관의 특수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북한학)는 “미국 중앙정보부도 예·결산 관련 중요예산의 분산은닉, 총액개념 보고 등 정보기관의 특수성을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정보위를 겸임상임위가 아니라 독립된 별도의 상임위로 만들어 위원들의 전문성을 크게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달 10일 정보위의 국정감사는 다른 상임위와 일정이 겹치는 바람에 위원 12명 가운데 3명만 출석했다. 이래서는 정보위가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 행정부 자체의 감시·감독 시스템으로는 미국처럼 정보감독위원회를 신설하는 방안이 주로 논의되고 있다. 민간인도 참여하는 정보감독위원회가 정보기관의 불법 행위 등을 대통령에 직접 보고해 조처를 취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정보기관들을 통제하는 국가정보위원회 설립도 거론되고 있다. 대통령 직속의 국가정보위원회에 정보기관 예산조정권과 정보기관장의 인사 추천권을 부여하고 모든 정보기관을 통합·조정하도록 해, 특정 정보기관의 독주를 제어한다는 것이다. 장유식 처장은 “행정부와 의회의 2중 통제 장치가 마련된다면 정보감독위원회는 직무감찰에, 의회는 예결산 심의에 좀더 무게를 두는 방식의 통제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국정원 등 정보기관 내부에 민간인이 참여하는 감찰위원회를 구성하거나, 그동안 배제됐던 감사원의 정보기관 회계감사를 허용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박병수 기자 suh@hani.co.kr
오랜 역사만큼 감시체계 철저 외국에선 정보기관을 운용한 역사가 오래 된 나라일수록 정보기관에 대한 통제와 감시가 체계적이고 치밀하게 이뤄지고 있다. 정보기관이 불법행위를 하거나 권한을 남용했을 때 국민과 국가가 입는 피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행정부와 의회에 정보기관 감시·감독 기구를 두고 있지만, 행정부의 주도권이 인정되는 분위기다. 대통령 직속 정보감독위원회(IOB)는 민간인을 포함한 3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정보기관의 각종 실정법 위반 사항 등을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정보활동의 합법성에 대한 기준을 검토한다. 정보감독위원회는 권한행사에 필요한 조사 활동을 할 수 있다. 정보기관들은 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모든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의회의 통제는 다양한 상임위 활동을 통해 이뤄진다. 상·하원에 정보위원회가 설치된 것은 1976년과 1977년이며, 1980년 정보감독법 제정 이후 정보위의 정보기관 감독권이 강화됐다. 그러나 정보기관의 예산은 여전히 세출위원회에서 담당하며, 국방위원회 등 다른 상임위도 사안에 따라 정보기관의 활동을 감독하고 있다. 1994년 정보기관법을 제정한 영국도 행정부와 의회, 양쪽에서 비밀정보국(SIS), 보안부(SS), 정보통신본부(GCHQ) 등 모든 정보기관을 통제하고 있다. 행정부에서는 수상이 임명하는 감독관이 정보기관 감독권을 행사하며, 결과를 수상에 보고하고 의회에도 공개한다. 의회에는 9명의 위원들로 구성된 정보 및 보안위원회가 설치되어 있다. 위원회는 정보기관의 활동을 감시한 뒤 연례보고서를 작성해 수상과 의회에 보고한다. 독일에서는 1970년대 중반부터 주의회 차원에서 정보위원회 설치가 논의되다가 1978년 연방 차원에서 의회통제위원회가 구성됐다. 1999년 법개정으로 권한이 강화된 의회통제위원회는 헌법보호청, 연방정보국, 군 방첩대 등 비밀정보기관의 예산안을 심사하고 정보기관의 보고를 받는다. 필요할 경우 정보기관 방문, 청문회 개최 등을 할 수 있다. 또 위원 3분의 2의 의결로 전문가를 위원회에 참여시켜 개별사안에 대해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박병수 기자
“국내·해외 조직 나누고 수사권 없애야” 국회 국정원 개혁 2차 공청회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가정보원 개혁소위는 22일 ‘국정원 개혁을 위한 2차 공청회’를 열어, 다양한 국정원 조직 개편 방안을 수렴했다.
이날 공청회에서 김영수 서강대 교수(정치외교학)는 “국정원이 정치기관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벗기 위해서는 원장과 차장, 기조실장 등 고위급 간부를 전·현직 정보 전문가로 임명하고, 임기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또 현재 해외·국내·북한 등 세 분야로 돼 있는 국정원 조직을 △정보 △공작 또는 업무 △과학기술 등으로 재편하고, 남북관계의 경우 특보를 운영할 것을 제안했다. 고위직에 전문가 임명·임기제 도입도 제안 민병설 세명대 교수(경찰행정학)는 “지역별 차장 중심의 업무 분장을, 정보·운영 등 기능 중심의 실무형 차장보 업무 체제로 바꾸는 게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도청 등 국정원의 정치 성향 활동을 뿌리뽑기 위해 원장 임기제를 도입하고, 차장급 이상 간부는 퇴직 뒤 3년 동안 정치 활동 및 공공기관 등의 취업을 금지하도록 하는 내용의 서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와 달리 장주영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무총장은 국정원 조직을 국내와 해외 분야로 나눌 것을 제안했다. 장 총장은 “국내 정보기관은 국내 보안정보 수집 업무를, 해외 정보기관은 국외·대북 정보를 담당하도록 하고, 필요한 경우 업무협의체를 구성해 협의하도록 하면 된다”고 말했다. 장 총장은 특히 “정보기관의 조직과 활동은 비밀이기 때문에, 적법 절차에 따라 공개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수사를 정보기관이 맡아선 안 된다”며 국정원의 수사권 폐지를 주장했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정부, 민간인도 참여하는 위원회 신설해 직무 감찰
대통령직속 국가정보위·감사원 감사 허용 등도 논의 국정원이 정보위에 내놓는 자료도 제한적이다. 국회 정보위 국정원개혁소위원장인 임종인 열린우리당 의원은 22일 “정보위에서도 1급 비밀은 통제가 심해,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2급 비밀로 분류되는 예산안은 법적으로 ‘부실’이 허용되어 있다. 세목이 아니라 총액으로 보고하면 되고, 예산안 관련 첨부서류도 면제된다. 덕분에 국정원은 뒤로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어 감청장비를 개발하고서도 “도청은 없다”고 태연히 거짓말을 할 수 있었다. 불법도청 사건이 터진 뒤인 지난 8월, 국회 정보위에는 처음으로 예결산심사소위원회가 구성됐다. 김남수 정보위 입법조사관은 “전체회의와 달리 소위에서는 사업단위별로 세목보고도 이뤄지고 관련 내역자료도 제출되는 등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상세내역 보고는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장유식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예산회계에 관한 특례법과 국정원의 자료제출 거부권 등이 폐지되고, 의원들이 전문 보좌기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정보기관의 특수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북한학)는 “미국 중앙정보부도 예·결산 관련 중요예산의 분산은닉, 총액개념 보고 등 정보기관의 특수성을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정보위를 겸임상임위가 아니라 독립된 별도의 상임위로 만들어 위원들의 전문성을 크게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달 10일 정보위의 국정감사는 다른 상임위와 일정이 겹치는 바람에 위원 12명 가운데 3명만 출석했다. 이래서는 정보위가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 행정부 자체의 감시·감독 시스템으로는 미국처럼 정보감독위원회를 신설하는 방안이 주로 논의되고 있다. 민간인도 참여하는 정보감독위원회가 정보기관의 불법 행위 등을 대통령에 직접 보고해 조처를 취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정보기관들을 통제하는 국가정보위원회 설립도 거론되고 있다. 대통령 직속의 국가정보위원회에 정보기관 예산조정권과 정보기관장의 인사 추천권을 부여하고 모든 정보기관을 통합·조정하도록 해, 특정 정보기관의 독주를 제어한다는 것이다. 장유식 처장은 “행정부와 의회의 2중 통제 장치가 마련된다면 정보감독위원회는 직무감찰에, 의회는 예결산 심의에 좀더 무게를 두는 방식의 통제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국정원 등 정보기관 내부에 민간인이 참여하는 감찰위원회를 구성하거나, 그동안 배제됐던 감사원의 정보기관 회계감사를 허용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박병수 기자 suh@hani.co.kr
오랜 역사만큼 감시체계 철저 외국에선 정보기관을 운용한 역사가 오래 된 나라일수록 정보기관에 대한 통제와 감시가 체계적이고 치밀하게 이뤄지고 있다. 정보기관이 불법행위를 하거나 권한을 남용했을 때 국민과 국가가 입는 피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행정부와 의회에 정보기관 감시·감독 기구를 두고 있지만, 행정부의 주도권이 인정되는 분위기다. 대통령 직속 정보감독위원회(IOB)는 민간인을 포함한 3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정보기관의 각종 실정법 위반 사항 등을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정보활동의 합법성에 대한 기준을 검토한다. 정보감독위원회는 권한행사에 필요한 조사 활동을 할 수 있다. 정보기관들은 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모든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의회의 통제는 다양한 상임위 활동을 통해 이뤄진다. 상·하원에 정보위원회가 설치된 것은 1976년과 1977년이며, 1980년 정보감독법 제정 이후 정보위의 정보기관 감독권이 강화됐다. 그러나 정보기관의 예산은 여전히 세출위원회에서 담당하며, 국방위원회 등 다른 상임위도 사안에 따라 정보기관의 활동을 감독하고 있다. 1994년 정보기관법을 제정한 영국도 행정부와 의회, 양쪽에서 비밀정보국(SIS), 보안부(SS), 정보통신본부(GCHQ) 등 모든 정보기관을 통제하고 있다. 행정부에서는 수상이 임명하는 감독관이 정보기관 감독권을 행사하며, 결과를 수상에 보고하고 의회에도 공개한다. 의회에는 9명의 위원들로 구성된 정보 및 보안위원회가 설치되어 있다. 위원회는 정보기관의 활동을 감시한 뒤 연례보고서를 작성해 수상과 의회에 보고한다. 독일에서는 1970년대 중반부터 주의회 차원에서 정보위원회 설치가 논의되다가 1978년 연방 차원에서 의회통제위원회가 구성됐다. 1999년 법개정으로 권한이 강화된 의회통제위원회는 헌법보호청, 연방정보국, 군 방첩대 등 비밀정보기관의 예산안을 심사하고 정보기관의 보고를 받는다. 필요할 경우 정보기관 방문, 청문회 개최 등을 할 수 있다. 또 위원 3분의 2의 의결로 전문가를 위원회에 참여시켜 개별사안에 대해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박병수 기자
“국내·해외 조직 나누고 수사권 없애야” 국회 국정원 개혁 2차 공청회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가정보원 개혁소위는 22일 ‘국정원 개혁을 위한 2차 공청회’를 열어, 다양한 국정원 조직 개편 방안을 수렴했다.
신기남 국회 정보위원장이 22일 국회에서 열린 ‘국가정보원 개혁을 위한 제2차 공청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김경호 기자 jiojae@hani.co.kr
이날 공청회에서 김영수 서강대 교수(정치외교학)는 “국정원이 정치기관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벗기 위해서는 원장과 차장, 기조실장 등 고위급 간부를 전·현직 정보 전문가로 임명하고, 임기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또 현재 해외·국내·북한 등 세 분야로 돼 있는 국정원 조직을 △정보 △공작 또는 업무 △과학기술 등으로 재편하고, 남북관계의 경우 특보를 운영할 것을 제안했다. 고위직에 전문가 임명·임기제 도입도 제안 민병설 세명대 교수(경찰행정학)는 “지역별 차장 중심의 업무 분장을, 정보·운영 등 기능 중심의 실무형 차장보 업무 체제로 바꾸는 게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도청 등 국정원의 정치 성향 활동을 뿌리뽑기 위해 원장 임기제를 도입하고, 차장급 이상 간부는 퇴직 뒤 3년 동안 정치 활동 및 공공기관 등의 취업을 금지하도록 하는 내용의 서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와 달리 장주영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무총장은 국정원 조직을 국내와 해외 분야로 나눌 것을 제안했다. 장 총장은 “국내 정보기관은 국내 보안정보 수집 업무를, 해외 정보기관은 국외·대북 정보를 담당하도록 하고, 필요한 경우 업무협의체를 구성해 협의하도록 하면 된다”고 말했다. 장 총장은 특히 “정보기관의 조직과 활동은 비밀이기 때문에, 적법 절차에 따라 공개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수사를 정보기관이 맡아선 안 된다”며 국정원의 수사권 폐지를 주장했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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