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부터 구태의연한 이야기로 시끄러웠습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1일 발표한 신년사에서 ‘인공기 달력’을 언급하며 ‘종북몰이’에 나섰기 때문입니다.
홍준표 대표는 2018년 신년사에서 “인공기가 은행 달력에 등장하는 그런 세상이 됐다. 금년 선거는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는 그런 선거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홍 대표가 말한 ‘인공기 달력’은 우리은행에서 제작한 2018년 탁상달력입니다. 이 달력에는 초등학생 조아무개양이 그린 그림이 실렸는데요. 지난해 우리은행이 문화체육관광부 후원을 받아 주최한 ‘제22회 우리미술대회’ 초등학교 4~6학년부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입니다. 주최 쪽은 심사평에서 “평화를 의미하는 통일나무를 표현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행복한 미소가 느껴진다”고 호평했습니다. 그림에서 인공기는 ‘통일나무’에 태극기와 나란히 걸려있습니다. 당연하게도, 통일이라는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서입니다. 홍 대표는 이런 초등학생의 작품을 두고 색깔론, 종북몰이에 나선 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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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니 “종북세력은 홍준표와 자유한국당의 희망 속에 존재하는 그 무엇”(최홍재 바른정책연구소 부소장)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겁니다. 지난해 7월 바른정당이 주최한 ‘종북몰이 보수 청산 토론회’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토론회에 참석한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은 “종북몰이 극우 정당은 이제 해산돼야 한다”고까지 말했습니다. 바른정당 사람들은 거의 모두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에서 자유한국당(새누리당 후신) 의원들과 한솥밥을 먹던 사람들입니다. 그런 그들마저 자유한국당이 ‘종북세력’이라는 상상의 적을 만들어 적대적 공존을 꾀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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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자유한국당이 말하는 ‘종북’, ‘종북세력’은 무엇일까요. 정권교체의 출발점이었던 ‘촛불 정국’에서 대선, 문재인 정부 출범에 이르기까지, 자유한국당의 시대착오적 ‘종북몰이’ 발언들을 모아봤습니다.
■ 촛불 정국: “촛불집회 조직·자금, 종북세력이 다 준비”
2016년 11월29일 김종태 당시 새누리당 의원(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2017년 2월 의원직 상실)은 당 의원총회에서
“현재 촛불시위는 평화시위가 아니다. 종북세력은 시위 때마다 분대 단위로, 지역별 책임자를 정해 시위에 나온다. 조직과 자금을 다 준비했다”고 말해 거센 비판을 받았습니다. 김 전 의원의 발언이 있기 사흘 전인 2016년 11월26일 열린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 규탄 제5차 촛불집회에는 전국에서 190만 명이 참여했는데요.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반박하고 종북세력의 자금 유입을 입증할 만한 근거는 지금껏 나오지 않았습니다.
2016년 11월17일 오후 국회 본청에서 열린 박근혜 특검법 전체회의에서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이 "촛불에 밀려서 원칙을 저버린 법사위라니. 촛불은 촛불일 뿐이지 바람이 불면 다 꺼진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11월17일에는 김진태 자유한국당(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나와
“(촛불집회에) 불순세력이 있었다. 촛불은 촛불일 뿐 바람 불면 다 꺼진다”고 말해 논란을 불렀습니다. 김 의원은 최순실씨의 전 남편 정윤회씨의 국정 개입 의혹이 불거졌던 2014년 12월15일 국회 긴급현안질의에 나서 당시 야당이었던 새정치민주연합을 두고
“근거도 없이 대통령 중상모략…이러니 (야당이) 종북숙주 소리 듣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2016년 11월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다른 참석자의 발언 도중 생각에 잠겨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더 노골적인 발언을 꼽자면 이정현 당시 새누리당 대표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박근혜 복심’이라고 불렸던 그는 야당의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 요구는 “
인민재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2015년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를 두고
‘적화통일을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발언했다가 지역구인 전남 순천에서 활동하는 변호사에 의해 명예훼손과 모욕 혐의로 고발당하기도 했습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운동이 ‘대북 지령’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한 의원도 있었는데요. 윤재옥 자유한국당 의원은 2015년 10월 28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북에서 지령 내려서 에스엔에스(SNS)에서 대남공작기관과 일부 (국내) 종북세력을 선동하고, 또 해외 종북세력 단체를 이용해서 남남갈등을 조장하는 그런 조짐이나 동향이 보인다”고 주장했습니다. 어떤 논리도, 근거도 없는 ‘막말’이 집권여당의 국회의원들 입에서 나온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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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선: “문재인 찍으면 김정은이 대통령 된다”
홍준표 대표는 제19대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패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탄핵도 원인이었고, 시간도 부족했지만 그래도 희망을 걸 수 있었던 것은 친북좌파 정권의 탄생에 대한 국민적 저항감이었습니다. 비록 친북좌파 정권이 탄생했지만 이 나라가 친북, 좌편향되는 것은 자유한국당이 온몸으로 막을 겁니다. 이제 새로운 성전이 열립니다. 이번 대선이 끝이 아닌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겠습니다.”
제19대 대통령 선거 당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의 온라인 선거 홍보물.
홍준표 대표는 대선 후보 시절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친북 좌파’라는 표현을 반복해가며 ‘종북 딱지’를 붙이려고 했습니다. 당시 온라인 선거 홍보물만 봐도 노골적인 문구가 자주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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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찍으면 김정은이 대통령 된다
-문재인 상왕은 이해찬,
태상왕은 종북좌파
-언론·포털 장악, 관권개입, 여론조작…온갖 적폐를 일삼는 친북좌파들. 언론도 관도 모두 좌파 문재인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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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선거는 친북좌파정권이냐? 보수우파정권이냐를 선택하는 체제선택 전쟁
-김종필(JP) 전 총리는 홍준표 후보가 예방한 자리에서 문재인 후보를 겨냥해 수위 높은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당선되면 김정은 만나러 간다고 했는데, 이런 사람이 뭐가 잘한다고 지지를 하느냐.
김정은이 할아버지라도 되나…빌어먹을 자식” 또한 “뭘 봐도 문재인은 안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제19대 대통령 선거 당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의 온라인 선거 홍보물.
유세장에선 더 노골적인 말도 나왔습니다. 홍 대표는 선거운동 마지막 날인 지난해 5월8일 서울시청 건너편 대한문 앞에서 태극기를 든 지지자 수천 명 앞에서 “전교조를 완전 손보겠다. 종북이념에 미친 종북집단, 이거 내가 절대 용납 안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종북집단’을 손보겠다는 홍 대표의 바람과 달리 제19대 대선은 문재인 후보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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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정부 출범: “문재인 정부는 주사파 정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자 홍 대표는 이번엔 문재인 정부를 일컬어 “주사파 정부”라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홍 대표는 지난해 6월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대선 패배 원인에 대해 “자유한국당이 정의와 형평을 상실한 이익집단이었기 때문에 청·장년의 지지를 상실했다. 친박당이 몰락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쓴 뒤 “자유한국당이 이들의 지지를 회복하려면 철저하게 자유 대한민국의 가치를 지켜야 한다.
주사파 정권에 맞서기 위해서는 그들 못지않은 이념적 무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은 당시 “주사파 정책을 펴지도 않았는데 주사파라고 비판하면 공격하는 사람만 비판받는다. 요즘은 더 심각한 게 ‘신주사파’다. 신주사파는 평소에 취객이 주사하듯이 발언하는 정치인이다. 신주사파 수령이 ‘레드준표’ 아니냐”고 꼬집었습니다. (
▶관련 기사: 하태경 “취객 홍준표가 신주사파 수령”)
강동호 자유한국당 서울시당위원장이 2017년 6월16일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막말을 쏟아내고 있다. 유튜브 갈무리
홍 대표의 발언 뒤에는 ‘국지적 도발’이 이어졌습니다. 강동호 자유한국당 서울시당위원장은 지난해 6월15일 홍 대표가 참석한 자유한국당 서울시당 당사 이전 개소식에서 “문재인이가 청와대 전세 내서 일을 시작했는데, 적폐 청산이라고 해서 정치보복을 시작했다.
친북하는 종북하는 문재인은 우리 보수 우리 주류세력을 죽이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문 대통령을 일컬어 ‘깡패 같은 놈’이라고도 칭해 당시 큰 논란을 불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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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희경 자유한국당 의원(왼쪽),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국회방송 갈무리
또한 전희경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해 11월6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주사파,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운동권이 장악한 청와대”라고 주장했습니다. 전 의원의 말을 들은 임종석 비서실장은 “국민의 대표답지 않게 질의를 한다. 충분히 국회를 존중하고, 최선을 다해서 인내하고 답변해 왔으나 더 답변할 필요를 못 느낀다”며 언성을 높였습니다. (
▶관련 기사: 전희경 “주사파 청와대”에…임종석 “그게 질의인가”)
■ ‘종북몰이는 가장 무능하고 비겁한 전략’ 비판
자유한국당은 왜 ‘종북몰이’를 놓지 못하는 걸까요. 지난해 7월 바른정당이 주최한 ‘종북몰이 보수 청산 토론회’에 발표자로 나선 홍진표 시대정신 상임이사는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종북몰이 선동에는 두 가지 의도가 있다. 첫째, 자유한국당 주류의 생존기반을 거기서 찾으려 한다. 자유한국당은 현 정부를 극단적인 종북으로 몰고 자신들은 반대편에 서려고 한다. 중도는 설 자리가 없게 만들려는 것이다. 둘째, 바른정당과 보수혁신 경쟁을 해야 하는데, 종북몰이는 혁신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종북몰이 선동을 붙잡고 혁신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가장 무능하고 비겁한 전략이다.”
이제 홍준표 대표에게 다시 되묻고 싶습니다. “대표님, 문재인 찍으면 김정은이 대통령 된다면서요? 그 말 끝까지 책임지실 꺼죠?”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