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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박정희는 왜 컬러 TV 방영을 두려워했을까

등록 2018-01-22 11:06수정 2018-01-22 14:15

[역사 속 오늘] 47년 전 오늘, 1971년 1월 22일
박정희, 장발족 TV 출연 금지 지시
“장발족 히피 등의 TV 출연을 금지할 것 . 신문 ·방송 등은 국민계도와 교양에 주력할 것 .”

<경향신문> 1971년 1월 23일 치.
<경향신문> 1971년 1월 23일 치.
오늘로부터 47년 전인 1971년 1월 22일. 집권 8년 차에 접어들었던 박정희 정권은 각 부처별 지시사항을 발표했다. 18개 부처에 전달된 50여 개에 달하는 지시사항은 경제성장과 국민 생활 개선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 지시사항들에는 장기집권에 필요한 국민 감시 규제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특히 정부가 적극 개입해 문화 전반에 걸쳐 검열을 주도해 ‘국가에 의한 국가를 위한’ 국민을 만들기 위해 혈안이 돼 있었다. TV라는 매체는 박정희식 독재 정권 통치에 필요한 ‘국민정신교육’의 필수 도구였다.

장발족 TV 출연 금지 지시

1960년대부터 미국의 청년층이 주도한 ‘히피’ 열풍이 세계로 퍼져갔다. 히피족은 인간성의 회복과 자연으로의 귀의 등을 주장하며 기존 기성세대의 잘못된 제도와 가치관을 부정했다. 자유로운 ‘히피’ 분위기는 곧 한국 청년층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박정희는 자신의 독재체제에 반하는 빌미를 가져올 이런 움직임을 가만두고 보지 않았다. “건전한 사회 기풍 진작”이라는 명목 아래 국민 생활 전반에 걸쳐 감시 체제를 구축해 나갔다.

<동아일보> 1971년 1월 22일 치(왼쪽). MBC 대학가요제 제1회 &#39;나 어떡해&#39; 샌드 페블즈. 박정희 시대의 검열과 통제는 대중문화의 폭을 크게 좁혔다. 당시 대학가요제는 방송을 장악한 정부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한겨레>자료사진.
<동아일보> 1971년 1월 22일 치(왼쪽). MBC 대학가요제 제1회 '나 어떡해' 샌드 페블즈. 박정희 시대의 검열과 통제는 대중문화의 폭을 크게 좁혔다. 당시 대학가요제는 방송을 장악한 정부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한겨레>자료사진.
박정희는 당시 신범식 문화공보부 장관에게 “히피 머리형의 장발족은 국영뿐 아니라 민간 텔레비전 방송에도 절대 출연하지 못하게 하라”고 직접 지시했다. 심지어 TV 외화에 나오는 외국인 장발 화면은 내용의 흐름과 상관없이 무조건 삭제 조처하는 웃지 못할 일들도 일어났다.

<경향신문> 1971년 7월 7일 치(왼쪽). 한국 사회에서 자유가 극도로 억압된 시기였던 1970년대에는 정치적 자유주의뿐 아니라, 시민들의 일상적 생활마저 국가의 간섭 대상이었다. 서울 도심에서 벌어진 장발 단속 모습. <한겨레>자료사진.
<경향신문> 1971년 7월 7일 치(왼쪽). 한국 사회에서 자유가 극도로 억압된 시기였던 1970년대에는 정치적 자유주의뿐 아니라, 시민들의 일상적 생활마저 국가의 간섭 대상이었다. 서울 도심에서 벌어진 장발 단속 모습. <한겨레>자료사진.
뿐만 아니라 공권력을 이용해 히피 머리형의 장발족에 대한 일제 단속을 벌였다. 길거리에서 경찰이 시민을 마구잡이로 연행해 머리를 깎은 뒤 집으로 돌려보냈다. 연행자가 서명한 삭발 동의서에 의한 것이었다지만 이는 경찰 쪽의 형식적 절차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당시 정부 대변인 쪽 윤주영 문화공보부 장관은 “장발 추악한 작폐 등은 사회윤리와 법질서를 문란 시키고 있으며, 특히 청소년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쳐 건전한 국민정신을 해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박정희는 아울러 신문·방송·영화·음악·도서 등 문화 전반에 걸쳐 검열을 강화하도록 하는 ‘자율 규제 강화 방안’을 지시하기도 했다. 문화 탄압이 강화되면서 예술과 국민들의 의사 표현에 대한 자유는 갈수록 침해를 받았다. 반면 TV에서는 연일 박정희 독재 정권의 입맛에 꼭 맞춘 획일적인 박정희식 ‘민족문화’로 도배되어 갔다. TV를 활용한 문화 탄압은 국민들의 일상까지 파고들었다.

컬러 TV 수출은 하면서 자국민들은 흑백 TV만 시청

박정희가 독재 정권의 통치 수단으로써 TV를 이용한 것에는 내용적인 측면에만 국한돼 있지 않았다. 박정희는 흑백 TV에서 컬러 TV로의 전환에 있어서도 박정희식 ‘민족주의’를 핑계로 국민들을 통제하려 했다.

<동아일보> 1975년 10월 8일 치.
<동아일보> 1975년 10월 8일 치.
한국의 컬러 TV 생산은 1974년 한국나쇼날이 최초였다. 하지만 박정희는 “컬러 TV를 방영하게 되면 소비성만 높아진다”며 “컬러 TV의 방영은 아직 시기가 이르므로 서두르지 말라”고 지시한다. 당시 농촌에는 막 흑백 TV가 보급됐을 시기였기 때문에 도시와 농촌 간의 격차에서 오는 불만을 사전에 차단하려 한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수시로 농촌을 방문해 농민들과 막걸리를 마시며 근대화를 강조했다. (왼쪽)  1970년대 유신의 퍼스트레이디 시절 박근혜가 새마을운동 캠페인을 하던 모습. 박근혜 후보 캠프 제공. <한겨레> 자료사진.
박정희 전 대통령은 수시로 농촌을 방문해 농민들과 막걸리를 마시며 근대화를 강조했다. (왼쪽) 1970년대 유신의 퍼스트레이디 시절 박근혜가 새마을운동 캠페인을 하던 모습. 박근혜 후보 캠프 제공. <한겨레> 자료사진.
아울러 컬러 TV의 방영으로 1970년 시작된 지역사회 개발 계획인 ‘새마을운동’을 위한 효율적인 인력동원에도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했다. 박정희가 직접 발의해 중앙정부의 주도로 전개된 새마을운동은 농촌 사람들의 자각은 일깨우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하행·하달된 사업지침에 따라 움직였다. 그저 ‘새벽종이 울리면’ ‘잘살아 보세!’를 외치며 일터로 나가 단기간에 성과를 내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박정희는 1975년 10월 당시 상공부 장관 이낙선, 기업가들과 함께한 한국 전자박람회 개막식 자리에서 “컬러 TV의 방영 여부를 1981년 이후에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1981년 전 1인당 국민소득이 1000달러가 넘으면 다시 고려하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우리와 같은 아시아권에 속한 일본은 1960년부터 컬러 TV 방영을 시작했다. 당시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은 400여 달러에 불과했다. 심지어 북한도 우리보다 6년이나 앞선 1974년 이미 컬러 TV 방영을 시작했다.

1970년대 삼성전자의 흑백 TV 조립라인. <한겨레>자료사진.
1970년대 삼성전자의 흑백 TV 조립라인. <한겨레>자료사진.
박정희의 컬러 TV 방영 반대는 경제적인 이유만 고려한 것은 아니었다. 박정희는 컬러 TV가 보급돼 서구와 일본 등 외국 문물들이 화려한 총천연색으로 소개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검열로 문화적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 독재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화려한 컬러 TV 속 세상보다는 어두운 흑백 TV 속 세상을 보면서 사는 국민들이 통제하기에 훨씬 쉬웠을지도 모른다. 이로써 한국은 컬러 TV를 생산해 수출했지만, 자국민들은 흑백 TV를 시청할 수밖에 없는 나라가 됐다.

1980년에 보급된 컬러 텔레비전. <한겨레>자료사진.
1980년에 보급된 컬러 텔레비전. <한겨레>자료사진.
한국에 컬러 TV 방영은 박정희가 숨진 지 1년이 지난 이듬해 1980년 12월 1일이 되어서야 가능해졌다. 이마저도 정권을 이어받은 전두환이 당시 심각한 경제 상황에 대해 국민들의 불만을 무력화시킬 목적으로 시행한 것이었다. 전두환은 이른바 ‘3S 정책(스크린(Screen), 스포츠(Sports), 섹스(Sex))’을 바탕으로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돌리는 우민화 정책에 컬러 TV를 적극 활용했다. 박정희와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독재 정권의 컬러 TV 사용법이었던 셈이다.

참고문헌

<한국 현대 생활문화사 1970년대 > 김경일 외 지음

<한국 방송의 어제와 오늘 > 정순일

<한국형 경제건설 3> 오원철

<문화방송사사 1961~1982> 문화방송

<동아일보> 1971년 1월 22일 치

<경향신문> 1971년 1월 23일 치

<경향신문> 1971년 7월 7일 치

<동아일보> 1971년 10월 8일 치

강민진 기자 mj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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