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심요건 완화·시효배제 등 내용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과거사위)의 출범은 과거사 정리의 ‘완결판’은 아니다. 위원회의 활동으로 드러난 ‘진실’을 바탕으로 피해자의 상처를 보듬고, 다시는 이런 불행이 생기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일 등이 숙제로 남아 있다.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이를 위해 △확정판결이 난 과거사 사건의 재심요건 완화 △국가 범죄의 민사상 시효 배제 △피해자의 명예회복과 배상 등 크게 세 갈래의 보완 입법을 추진 중이다.
당정은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8·15 경축사에서 과거사 정리의 필요성을 언급한 뒤 ‘진실규명과 화해를 위한 당정 공동특위’를 구성해 관련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당정은 우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에서 국가 공권력에 의한 범죄로 판정이 나는 과거사 사건의 경우, 과거사위의 조사 결과를 근거로 법원에 재심을 청구할 수 있도록 과거사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권위주의 통치 아래서 이뤄진 국가 범죄의 경우 사법부의 독립성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재판이 이뤄지거나, 국가 권력에 의해 증거가 인멸된 경우가 많은데도, 현행 형사소송법상 재심 요건이 너무 까다로워 ‘사법적 명예회복’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와 함께, 국가가 과거사 사건과 관련한 민사상 시효 이익을 포기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국가 범죄로 피해를 본 사람들이 소멸 시효와 관계없이 민사상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처다.
민법에 이런 특례를 신설할 경우,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손해배상 청구가 법원에서 기각된 최종길 서울대 교수 유가족을 비롯해, 국가 범죄로 형이 확정됐거나 희생된 피해자나 유가족도 배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그러나 형사상 공소시효의 배제 또는 연장 문제에 대해서는 위헌 논란 등이 걸림돌이 돼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과거사 피해 보상에 대한 방침도 정했다. 제주 4·3사건, 여순 사건 등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은 직접적인 개별 보상 대신 진상규명을 통한 명예회복과 위령사업을 먼저 추진하기로 했다. 다만, 거창사건처럼 구체적 증거로 국가의 불법행위가 드러난 경우에는 의료·생계 지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그러나 인민군이나 중공군, 좌익세력 등에 의해 희생된 피해자나 ‘명백한 좌익 활동자’ 등은 보상 고려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당정의 과거사 보완 입법은 앞으로 과거사위 활동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당정은 다음달까지 구체적인 법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위헌 요소가 있다는 등의 이유로 부정적 태도를 보이고 있어 실제 입법까지는 진통이 예상된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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