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정치 정치일반

‘냉철한 현실주의’ ‘고위험 고수익’…세기의 담판 결과는

등록 2018-06-11 15:05수정 2018-06-11 22:16

[북-미 정상회담 D-1] 김정은-트럼프 협상스타일 분석
그래픽 정희영 디자이너
그래픽 정희영 디자이너

김정은 ‘거래의 기술’보다 ‘거래의 결과’ 중시

형식보다 결과에 집중하는 목표지향성
협상에선 냉철한 현실주의자의 면모
명분보다 실리 추구하는 실용주의자
합의하면 이행 강조하는 과제점검형

1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협상 스타일은 올 들어 두 차례씩 열린 남북 및 북-중 정상회담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이웃끼리라고 해도 정상회담을 60일 사이에 네 차례나 하는 경우는 외교사에서 전례를 찾기 힘들다. 김 위원장이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결과를 추구하는 ‘목표지향형’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이 ‘거래의 기술’을 즐긴다면, 김 위원장은 ‘거래의 결과’를 중시한다고 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의 이런 특성이 제일 잘 드러난 것은 지난달 26일 판문점 북쪽지역에서 이뤄진 두번째 남북정상회담에서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북-미 정상회담 취소를 발표한 다음날 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일체의 형식 없이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문 대통령이 이를 흔쾌히 수락하면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은 실제로 거의 모든 의전을 생략한 채 진행됐다. 한 외교관은 “위기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목표에 다가서려는 김 위원장의 집요함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목표지향적 스타일은 이따금 파격이라는 행태로 나타난다. 김 위원장은 4월27일 판문점에서 열린 첫번째 남북정상회담에서 각본에 없던 장면을 몇차례 연출했다. 군사분계선을 넘어와문 대통령의 손을 잡고 다시 군사분계선을 건넜다. 남북 수행원들과 악수를 하고선 바로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다. 상대의 손을 꽉잡는 특유의 악수로 기선을 제압하곤 하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첫 만남에서 김 위원장이 어떤 파격을 보여줄지 주목된다.

김 위원장의 파격은 ‘즉흥적인 쇼’가 아니다. 그보다는 ‘철저하게 결과를 계산한 정치적 행위’에 가깝다. 트럼프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지난 3월말 김 위원장을 만났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당시 중앙정부국(CIA) 국장)은 김 위원장을 “정상회담을 철저히 준비하는 똑똑한 사람”이라고 묘사했다. 폼페이오 국장은 트럼프 행정부 고위 인사 가운데 유일하게 김 위원장을 대면한 사람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의 회담을 앞두고 각종 보고서를 읽으며 논리적 대결을 준비하고 있다는 보도를 보면, 폼페이오의 분석이 잣대가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트럼프 협상 스타일 비교

김 위원장은 명분보다 실리를 쫓는다. 이런 ‘실용주의적 모습’은 지난달 7~8일 중국 랴오닝성 다롄에서 열린 시진핑 주석과의 두번째 정상회담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김 위원장은 3월25~27일 베이징에서 열린 첫번째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을 평양으로 초청해놓고도 다롄을 찾았다. 미국과의 협상에서 난관에 부닥치자 중국이라는 힘을 활용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됐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이런 김 위원장을 ‘객관적 역학관계를 보는 냉철한 현실주의자’라고 평했다.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참매 1호’가 아닌 ‘중국 전용기’를 타고 싱가포르를 찾은 데서도 명분보다 실리를 앞세우는 스타일을 읽을 수 있다.

김 위원장이 이행을 중시하는 것도 목표지향적 스타일임을 방증한다. 김 위원장은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을 마친 뒤 만찬장에서 여러 차례 이행을 강조했다. 만찬에 참석했던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김 위원장은 아무리 좋은 합의나 글이 나와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낙심을 주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합의를 이행하는 데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회고한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김 위원장은 자기가 제시한 과제, 목표를 반드시 달성하고자 절치부심하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두번째 남북정상회담 제안에도 언행일치를 강조하는 스타일이 녹아 있다고 분석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정기적인 회담과 직통전화를 통하여 민족의 중대사를 수시로 진지하게 논의하겠다”고 한 판문점 선언을 이행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의 목표지향적 스타일은 그가 전략적 선택을 할 수 있는 과감함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과 전쟁위기설까지 나오는 상황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를 멈추지 않았던 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고, 대화 자세로 전환했다. 이후 북-미 정상회담까지 밀어붙이면서 ‘승부사의 기질’을 증명했다. 김연철 통일연구원장은 한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 형식보다는 내용을 중시하고, 명분보다는 실리를 택한다. 그리고 둘러가기보다 핵심에 직접 접근하는 걸 좋아한다"고 진단했다.

김 위원장의 이력이나 신상정보는 단편적이다. 김 위원장이 권력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 악화한 2009년 무렵으로 알려져 있다.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스위스 베른의 한 공립학교에서 중·고교 과정을 마치고, 2002년부터 2006년까지 군 간부 양성기관인 김일성군사종합대학에서 군사학을 공부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스위스 유학 시절 동료 학생들과 잘 어울렸고, 야심에 차 있었으며, 농구를 좋아한 것으로 전해진다.

유강문 선임기자 moon@hani.co.kr

김정은-트럼프 걸어온 길 

트럼프, 핵 빅딜로 ‘거래의 달인’ 입증할까

트럼프, 김정은과 협상 ‘게임’으로 일컬어
부동산거래 달인 “나만큼 잘하는 이 없어”
공격적 협상으로 고위험 고수익 추구 성향
국내정치 악재들도 북-미 회담 집착 요인

“누구나 게임을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게임을 하고 있다고 보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북-미 정상회담 취소 선언으로 전세계를 발칵 뒤집어놓고 이틀 뒤 태연하게 한 말이다. 대화 상대방을 ‘게임’의 상대로 보고 크고 작은 강온 전략으로 승리를 만들어가겠다는 그의 승부사 기질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평소 “나만큼 거래를 잘 하는 사람이 없다”고 자부해온 트럼프 대통령은 12일 싱가포르 카펠라 호텔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마주앉아 일생일대의 거래에 나선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격적이고 저돌적인 스타일 때문에 지난해 취임 뒤 수많은 논란을 낳았지만, 역설적으로 그의 그런 기질이 있었기에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도 성사될 수 있었다. 그는 부동산 사업에서 억만장자 성공 신화를 일군 사업가이자 리얼리티 오디션 프로그램 <어프렌티스>로 명성을 쌓은 ‘연예인’이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만든 이 두 가지 핵심 배경은 협상 스타일에도 그대로 묻어난다.

평생을 비즈니스 협상이라는 승부의 세계에서 살아온 그는 큰 수익을 노리고 크게 판돈을 거는 ‘고위험 고수익’ 전략을 구사해왔다. 1987년 펴낸 책 <거래의 기술>에 적은 주요 원칙이 “두려움을 버리고 크게 생각하라”다. 북한과의 협상에서 그는 지난해 “화염과 분노”를 언급하며 군사적 긴장감을 최고조로 높였다. 그는 북한에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라는 높은 요구치를 내밀어왔고, “성과가 없을 것 같으면 회담장에서 걸어나올 것”이라고 했으며, 북-미 정상회담이 최근 확정되기 전까지도 “최대한의 압박”을 말해왔다. 지난달 24일에는 북한의 “엄청난 분노와 공개적 적개심”을 이유로 정상회담을 돌연 취소한다고 발표해 세계를 패닉에 빠뜨렸다. 군사적 충돌이나 정상회담 유실이라는 고위험이 우려됐지만, 다행히 회담 성사라는 고수익이 돌아왔다.

이처럼 극단의 수를 던지는 방식 때문에 예측 가능성이 그만큼 낮다는 점도 트럼프 대통령의 특징이다. 그는 지난 3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김정은 위원장의 정상회담 제안을 전달하자 즉석에서 수용하고 이를 곧 발표하도록 했다. 당시 당황한 트럼프 대통령의 참모들이 북-미 정상회담 시점이라도 늦춰서 발표하도록 설득하려 애를 먹었다는 후문이다. 외교 전문가들은 그의 이런 즉흥성과 예측 불가능성 때문에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예상하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협상의 기본은 자신의 이익을 관철해내는 것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 점에서 그 어떤 국가 정상들보다도 집요하고 철저하다. 그의 관심은 대체로 단기간에 손에 잡히는 금전적·실질적 이득에 맞춰져 있다. 그는 미국의 무역 적자를 해소하겠다며 중국과 무역 전쟁을 벌이는 것은 물론, 동맹국인 독일·영국·캐나다·프랑스 등에도 철강과 알루미늄에 고율 관세를 부과했다. 그는 북한 비핵화에 대한 경제적 보상에서도 “한국·중국·일본이 도울 것”이라며 미국의 역할은 뒤로 빼놓고 있다. 일각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협상에서 핵탄두보다도 미국 본토에 위협이 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우선 제거하는 데 초점을 맞출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같은 배경에서다.

트럼프 대통령의 자기 과시 욕구가 매우 크다는 점도 이번 회담의 주요 변수가 될 수 있다. 그가 북한 얘기를 할 때마다 빠뜨리지 않는 얘기가 “전임 대통령들이 못 해낸 걸 내가 해낸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7일 기자회견에서도 “(북한 문제는) 다른 대통령들이 해결했어야 한다. 그때 했으면 훨씬 쉽고 덜 위험한 방법으로 해결될 수 있었다”며 “내가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또 지난달 10일 북한에 억류됐다가 풀려난 한국계 미국인 3명을 새벽 3시께 공항에서 맞이하면서 생중계 카메라 앞에서 “이 시간대 텔레비전 시청률로는 역사상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을 것”이라고 했다. 자신을 승자로 부각하며 스포트라이트를 집중시키는 데에 집착이 매우 강한 것이다.

세종연구소 진창수 전 소장 등은 지난달 30일 미국 워싱턴 정가를 방문한 뒤 펴낸 보고서에서 “워싱턴 조야에선 트럼프가 북-미 정상회담에서 나쁜 거래를 하고 대성공으로 포장하려 하지 않을까” 염려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고 전했다. 진 전 소장 등은 “이것은 비핵화 협상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트럼프의 개인적 기질·성향 자체에 대한 냉소적 평가와 불신이 결합된 결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 대화에 적극 나선 데에는 국내 정치적 요인도 빼놓을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하원 435석 전체와 상원의 3분의 1(33석)을 뽑는 11월 중간선거에서 상·하원 공화당 우위 구도를 더 강화해 2020년 11월 대선에서 재선하기 위한 안정적 기반을 만들고자 한다. 이 길에 걸림돌인 ‘러시아 스캔들’과 성 추문 등을 떨쳐내기 위해 북핵 문제 해결이라는 성과가 절박하다. 그로서는 잘 되면 노벨평화상까지 노려볼 수 있는 큰 호재가 아닐 수 없다.

‘협상의 달인’을 자처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과 한반도, 세계가 ‘윈-윈’할 수 있는 거래를 만들어낼까.

싱가포르/황준범 기자 jaybee@hani.co.kr

[화보] 북-미 정상회담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정치 많이 보는 기사

‘부정선거 전도사’ 황교안, 윤 대리인으로 헌재서 또 ‘형상기억종이’ 1.

‘부정선거 전도사’ 황교안, 윤 대리인으로 헌재서 또 ‘형상기억종이’

선관위 “선거망 처음부터 외부와 분리” 국정원 전 차장 주장 반박 2.

선관위 “선거망 처음부터 외부와 분리” 국정원 전 차장 주장 반박

오세훈, ‘명태균 특검법’ 수사대상 거론되자 ‘검찰 수사’ 재촉 3.

오세훈, ‘명태균 특검법’ 수사대상 거론되자 ‘검찰 수사’ 재촉

이재명 “국힘, 어떻게 하면 야당 헐뜯을까 생각밖에 없어” 4.

이재명 “국힘, 어떻게 하면 야당 헐뜯을까 생각밖에 없어”

이재명, 내일 김경수 만난다…김부겸·임종석도 곧 만날 듯 5.

이재명, 내일 김경수 만난다…김부겸·임종석도 곧 만날 듯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