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4.04 04:59
수정 : 2019.04.04 07:32
②부동산 이해충돌 현장을 가다-공약
지역구 농지 보유 36명 전수조사
안상수·염동열·주광덕 등 10명
소유지와 개발 수혜지 겹쳐
전문가 “잠재적 이해충돌 상황”
[탐사기획] 여의도 농부님, 사라진 농부들
64만6706㎡. 국회의원 99명(배우자 소유 포함)이 보유한 농지 면적이다. 그들의 농지는 자신의 개발 공약과 가까웠고, 예산을 확보해 도로를 내거나 각종 규제 해제에 앞장서면서 땅값이 뛰었다.
2526.1㎞. 5개월간 국회의원 소유 농지를 찾아다닌 거리다. 풀이 허리만큼 자라도록 버려진 땅, 씨앗이 심기지 않은 논과 밭이었다. 전체 국회의원 298명 가운데 농지를 보유한 의원은 33%다.
1549.4㎢. 2008년부터 2017년까지 10년 동안 서울과 인천을 합친 규모의 농지가 사라졌다. 값싼 땅이 새도시, 산업단지 등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외지인들은 개발 예정지 인근을 사들였고, 농부는 그 땅의 소작농이 되었다. 땅을 잃은 농부들은 더 값싼 경작지를 찾아 떠났다. 의원은 농지를 왜 매입했을까. 국회의원 소유 농지를 둘러싼 이해충돌 문제와 사라진 농부들의 사연을 6차례에 걸쳐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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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토평동에 자리한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 소유 농지. 주 의원은 “농사를 짓고 배나무를 심었다”고 말했으나 농사지은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구리/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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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공약 안에 자신의 땅이 있었다. 지역구에 농지를 보유한 의원 36명 가운데 10명이 자신의 땅과 가까운 곳에 개발 또는 각종 규제 해제를 공약으로 제시한 것으로 3일 확인됐다.
<한겨레>가 농지를 갖고 있는 국회의원 99명(배우자 소유 포함) 가운데 지역구와 농지 주소가 일치하지 않는 의원과 비례대표를 제외한 36명을 전수조사한 결과, 10명(27.8%)의 토지가 개발 공약 수혜지와 인접한 것으로 나타났다. 손혜원 의원의 목포 부동산 매입으로 이해충돌이 우리 사회 쟁점으로 제기됐으나 여야 간 의견이 갈리면서 정치적 논쟁으로 변질했다. 국회에 이해충돌 상황이 얼마나 빈번한지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가운데 토지를 중심으로 공약과의 연관성을 분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회의원의 포괄적 업무 범위 가운데 중심축인 공약과 각종 개발 정책이 값싼 농지와 임야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점을 고려해 그 연관성을 분석한 것이다.
대다수 개발 공약은 지방자치단체나 국토교통부가 이미 추진 중인 사업으로, 의원이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예산 확보와 법안 개정, 대정부 질문 등 직무를 수행할수록 개발 시기가 당겨지거나 자산 가치도 증가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인천시 강화군 길상면 일대 휴먼메디시티 조성 공약을 제시한 안상수 자유한국당 의원은 당선 5개월 뒤인 9월 길상면 온수리 농지 2필지를 샀다. 염동열 자유한국당 의원은 2013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자신의 땅과 가까운 특정 목장을 거론하며 수목원과 연계된 사업을 산림청장에게 권유하고, 강원도 산지 관광 활성화를 위해 규제 완화에 앞장섰다. 변호사 신분이었을 당시 경기도 구리시 토평동 개발제한구역 농지를 매입한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은 18대 총선에서 ‘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특별조치법’ 개정 추진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전문가들은 국회의원이 소유 토지 인근에 개발 공약을 제시하는 행위가 ‘잠재적 이해충돌’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정형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약도 실현되고 자신의 이익도 챙기는 잠재적 충돌 상황”이라며 “이해충돌 관련 입법이 미비한 상태에서 토지와 공약의 연관성을 들여다본 자료는 이해충돌 방지를 입법화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봉 한국법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국회의원의 경우 일반 공직자보다 포괄적인 업무를 하는데 공약 안에 토지가 있다면 잠재적 이해충돌의 요소가 있다. 다만 규제의 목적과 범위, 방식을 생각해봤을 때 어느 정도까지 행위를 규제해야 규제 비용보다 효과가 높을지 정책적 판단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유리 기자
nopimul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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