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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0.01.10 21:08 수정 : 2020.01.11 15:32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해 12월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공수처법 선거법 날치기 저지 규탄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집회는 불법성이 강했지만, 황 대표 등 자유한국당 지도부 인사들은 참가자들을 제지하기는커녕 오히려 부추겼다. 연합뉴스

[토요판] 표창원의 여의도 프로파일링
① 국회 난입 사태

보수 자처하는 이들의 국회 난입
하루 종일 가득했던 소음과 욕설
한국당 대표는 이들 인도해 나가고
원내대표는 문자로 진입 도운 정황

‘법과 질서’는 보수정당의 핵심 가치
국회 난입 사태 부추긴 한국당
보수의 근본가치 법치주의 저버려
공론장 토론 등 합법활동 외면해

보수 위기의 원인 분석, 반성 못하고
‘너희도 마찬가지’ 태도로 공격만
보수정치 부활·재탄생하지 않으면
한국 사회 전체에 도움되지 않아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해 12월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공수처법 선거법 날치기 저지 규탄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집회는 불법성이 강했지만, 황 대표 등 자유한국당 지도부 인사들은 참가자들을 제지하기는커녕 오히려 부추겼다. 연합뉴스

▶국회의원이자 ‘범죄 프로파일러’인 표창원 박사가 의원으로서 보고 듣고 겪은 사실과 언론과 정부, 대중 등 정치 환경, 정치인 언행의 동기와 의도 등을 종합·분석해 독자들에게 보고한다. 한국 정치의 병리현상을 해부하고, 문제의 원인을 추적해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국민을 위한 국회와 정치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염원을 담았다. 격주 연재.

2019년 12월16일 대한민국 국회 의사당 앞과 의원회관 주변 및 경내 일원은 하루 종일 폭력과 고함, 욕설 등에 휩싸여 흡사 전쟁터 같았다. 현장과 주변에 있던 사람들 입에서 난장판, 아수라장, 아비규환 같은 말들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언론과 방송의 헤드라인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초유의 사태가 대한민국 대표 보수정당,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당원들도 참가한 집회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황교안 대표와 심재철 원내대표 등 지도부 인사들은 공개적으로 불법 집회의 지속과 폭력 난동을 부추기고 응원하기까지 했다. ‘법과 질서’를 가장 중요한 가치의 하나로 삼는 보수정당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그것도 일시적인 착오나 의도하지 않은 실수가 아닌, 철저하게 준비하고 계획한 뒤에 행해진 ‘기획 행사’ 과정에서 발생했고 제지나 중단 노력도 전혀 없었다는 점에서 충격을 금할 수 없다.

하루 종일 의원회관에 실질적 ‘감금’ 상태에 있던 우리는 확성기와 집단적 고함을 통해 귀청을 흔들어대는 듣기 민망한 막말과 욕설, 공격적 구호 등에 시달려야 했다. 간혹 들려온 싸우는 듯한 소음과 비명, 물건이 부서지는 소리 등은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이쯤 되면 자유한국당은 ‘법과 질서’라는 보수정치의 핵심 가치를 공개적으로 그리고 공식적으로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이런 태도는 국회 경위에게 전치 12주의 중상을 입힌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 저지’ 국회 본회의장 의장석 점거 회의 방해 사태는 물론, 뒤이은 장외투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법질서’ 사실상 포기한 한국당

사실 법질서, 법치주의, 법과 원칙에 대한 보수정치의 신념과 중시는 철학을 넘어 가히 종교적이라고 할 수 있다. 보수의 정체성과 본질이 ‘지키는 것’이며, 그 지키려는 대상인 체제와 질서, 문화와 전통의 ‘심장’과 ‘영혼’이 바로 ‘헌법과 법률’, 바로 법체계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진보는 국가와 사회의 기득권 지배구조를 해체·변화시키고 좀더 이상적인 평등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실정법 체계와 내용 및 그 집행의 문제점을 찾아 도전하고 비판하고 저항하는 운동, 개혁, 혁명을 시도하고 전개해 나간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국가보안법,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 경찰관 직무집행법, 테러방지법 등을 둘러싼 보수와 진보의 시각차다. 보수는 국가 체제와 사회질서를 지키기 위한 규정과 절차를 입법하고 강화해왔다. 그 내용이나 집행에서 인권 침해나 부당성이 제기되어도 ‘악법도 법, 일단 법 절차는 지켜야 하고 위반하면 응당 처벌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앵무새처럼 반복해왔다. 보수에게 법과 질서는 종교의 경전, 계명이요, 그 고의적인 위반은 ‘신성 모독’에 해당한다.

만약 대기업 회장과 사장들이 힘들고 어렵다고 노조처럼 파업하고, 검사나 경찰관들이 범죄자들처럼 법을 어기고, 군 장성들이 일선 장병들처럼 소원수리함에 요청사항을 써 넣는다면…. 그것도 한두번의 특별하고 일시적인 사건이 아니라 일상적이고 조직적으로 행한다면, 목적 달성 등 성공 여부를 떠나 그들의 정체성과 본질 자체를 버리고 포기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답답하거나 화가 나서 연락을 끊고 잠적하는 대기업 임원도 있고, 불법 수사나 범죄 행위로 처벌받는 검사나 경찰관도 있으며, 고충을 털어놓고 하소연하는 장군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공개적이고 조직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개인적 일탈’일 뿐이다.

보수 정치인들 역시 보수정치의 가치와 이념에서 벗어나는 언행을 할 수 있고, 이는 진보 정치인 역시 마찬가지다. 언론의 가십, 스캔들로 종종 목격되는 모습이다. 하지만 국회의장실을 점거하면서 경찰관을 폭행하고, 국회사무처에 법안이 제출되지 못하게 물리력을 동원해 막고, 회의가 열리지 못하게 인력을 동원해 회의장을 점거하고, 동료 의원을 감금하고, 팩스로 제출된 법안을 힘으로 뺏고, 광화문 광장에서 불법 집회에 참여하고, 이를 격려 응원하면서 당원들의 참여를 부추기는 등의 불법과 무질서 행위를 공식적이고 지속적으로 행하는 ‘정당’, ‘정치인’을 ‘보수’라고 부르기는 힘들다.

급기야 2019년 12월16일 ‘보수 정당’ 및 소위 ‘태극기 부대’ 등 ‘보수 세력’들은 현행법상 집회 금지 구역이며 입법부의 심장인 국회를 경찰과 국회사무처의 제지와 통제를 무력화시키며 불법으로 점거농성하는 초유의 사태를 자행했다. 이들은 하루 종일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들어 입법부의 업무를 통째로 마비시킨 후 경찰의 여섯차례에 걸친 해산 퇴거 명령에도 불응하다가 어두워진 뒤에야, 황교안 대표의 뒤를 따라 국회 밖으로 유유히 걸어 나갔다. 당일 오전에, 자유한국당이 의원들을 동원해 난동 행위자들을 국회 안으로 진입시킨 정황이 아래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소속 의원들에게 보낸) 문자 내용에 그대로 담겨 있다.

〔알림〕 오늘 11:00에 “공수처법 선거법 날치기 저지 규탄대회”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규탄대회 참석자를 국회 출입구 쪽에서 통제중인 상황입니다. 의원님들께서는 지금 즉시 국회 출입구로 가셔서 지지자 및 참석자를 안내해서 모셔오도록 부탁드립니다. ―원내대표 심재철 드림

지난해 12월16일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공수처법 선거법 날치기 저지 규탄대회’ 참석자들이 국회 안으로 들어서려 하자 경찰들이 막고 있다. 이날 국회는 하루 종일 이들의 난입 시도로 소란스러웠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성찰 없는 공격, 초조함이 빚은 비극

한국의 대표적인 보수정당을 자처하는 자유한국당은 도대체 왜 이런 행태를 보일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및 사법처리가 부당했다는 믿음, 민주당 등 진보세력이 집회와 시위 등 다중의 물리력으로 만들어낸 결과이니 보수진영도 똑같이 하면 문재인 정부를 전복시킬 수 있다는 생각, 정부와 국회, 언론, 사법부, 경찰 등이 모두 좌파에게 장악되어서 이대로 두면 좌파 장기집권 체제가 되어 나라가 망할 것이라는 두려움…. 충분히 할 수 있는 생각이고 생길 수 있는 우려다. 입장을 바꾸면 진보진영도 반대의 생각과 우려를 늘 해오고 있다. 독재, 친일, 재벌 및 기득권의 부당하고 불공정한 지배와 이익 공고화, 차별의 구조화 등.

문제는 방법과 수단, 절차다. 누가 어떤 생각과 믿음, 걱정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건 이를 표현하거나 달성 혹은 방지하려는 시도는 모두 법과 절차, 질서, 원칙의 준수하에서 행해져야 한다. 적어도 ‘보수’의 가치와 정체성을 표방하는 개인이나 집단이라면 그렇다. 더구나 그 법과 절차 등은 대부분 보수 학자, 법률가, 관료, 정치인 혹은 정당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고 수십년간 억울함, 부당함, 두려움을 호소하는 시민, 학생, 노동자들에게 적용되고 집행되고 강요되어 오던 것들이다. 이러한 기본적 ‘상식’은 현대 인류가 공유 공감하고 있다. 보수가 ‘법질서’를 포기한다는 것은 ‘보수의 정체성과 본질을 버리겠다’는 선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문재인 정권을 타도하고, 좌파 독재를 중단시키는 ‘더 큰 목적’을 위해 불법과 폭력, 무질서의 방법을 택하겠다는 ‘보수 사망’ 결정이다.

일부에서는 자유한국당의 이런 모습과 행태를 보고 ‘극우 집단화’했다고 분석한다. 비록 자유한국당의 최근 행태들이 유럽의 민족주의, 국가주의 정당 등 소위 극우 정당의 모습과 유사하지만, 여전히 당헌과 당규, 정강의 내용은 ‘보편적인 대중 정당’의 틀을 유지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념·정책으로 이민 반대, 외국인 차별, 성소수자 차별 등 폐쇄적 국수주의 극우를 표방하고 있는 상황은 ‘아직’ 아니다. 보수정치의 다른 기본 가치들인 자유, 안보, 친기업을 대표한다고 주장하면서 여전히 중도 성향 시민들에게까지 손을 내밀고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가장 핵심적 가치인 ‘법과 질서’를 포기한 자유한국당은 국회의 회의나 공론의 장에서의 토론 등 ‘합법적 정치활동’을 통한 이념 추구와 정책 실현 노력마저 사실상 내팽개쳤다. 그러다보니 실제 사회의 자유 수준을 높이거나 안보를 강화하거나 기업의 자유와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결과’를 전혀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보수정당, 보수정치로서의 기능이 완전히 중단·실종된 상태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은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과오를 인정한 뒤 원인을 분석해서 정면으로 대응해 위기를 극복해내려는 ‘용기’의 부족이 야기한 퇴행적, 병리적, 일탈적 행태의 지속적 악화에서 비롯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자신들의 잘못으로 인해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이 부패 국정농단 등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고 사법부마저 신뢰가 붕괴되었으며 다수의 국민으로부터 외면받고 있는 냉엄한 ‘현실’을 결코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희도 마찬가지야’라는 태도로 정부 여당의 흠집을 찾고 공격하기에만 의존하며 모든 것을 걸고 있다.

그런데 ‘조국 논란’ 등으로 급락할 듯하던 여권에 대한 지지 여론은 다시 회복세를 타며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의 초조함이 결국 자유한국당의 ‘법질서’ 포기라는 행위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인내심을 가지고 차분하고 합리적인 ‘보수다운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정상적인 국회 의정활동 등을 통해 비판해왔다면, 검찰의 수사와 언론의 보도 등과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정부와 여당에 더 심각한 타격을 입혔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자유한국당의 착각이 정부 여당의 문제 해결과 위기탈출 공간과 시간 그리고 기회를 만들어주고 있다. 이는 민주당 등 진보 정치세력의 근본적인 쇄신과 혁신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

보수정치의 부활을 기대한다

어떤 국가, 사회든 보수와 진보 그리고 중도와 환경 등 다양한 이슈 중심의 정치세력들이 경쟁하며 견제와 균형을 이뤄야 썩지 않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다. 과거 군사독재와 ‘정경언검’ 유착 등 불공정한 ‘기울어진 운동장’에 의존해 패권적인 기득권을 유지해온 한국 보수정치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급격히 와해되어 보수정치의 핵심 가치마저 내팽개친 현 상황은 대한민국과 국민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않다. 보수정치의 부활과 재탄생은 필수다. 지금 당장의 이해와 권력, 유불리만 좇아 유력자 밑으로 줄 서며 이합집산하는 구태에 의존하면 영혼 없는 ‘좀비 정치’의 지속일 뿐이다. 보수정치의 역사와 현실에 대한 냉정하고 엄격한 성찰과 이를 통한 용기 있는 헌신을 결의하는 보수 정치인들의 진지한 노력을 기대한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지난해 12월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열린 ‘공수처법 선거법 날치기 저지 규탄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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