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7일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기다리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과 악수를 하기 위해 다가가고 있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의 미래를 둘러싼 다양한 전망과 의견이 나오고 있다. 미래는 정해진 것이 아니라 오늘의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런 움직임들은 더욱 활발해져야 한다. 아래 내용은 미래학회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윤기영, 이명호 두 연구자가 ‘한반도 평화체제의 향후 30년 로드맵과 대응전략’을 고민한 결과물이다.
4·27 남북 정상의 판문점 선언 이후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장밋빛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해의 상황을 생각하면 극적인 반전이다. 물론 지금도 북-미 간 힘겨루기는 여전히 진행중이다. 그러나 진통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선 북-미 정상회담에 이어 종전선언, 평화협정 협상도 단계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앞으로 한반도에는 어떤 미래가 닥쳐올 것인가? 우리는 어떤 대응전략을 수립해야 하는가? 시행착오를 줄이고 더욱 바람직한 미래를 만들기 위해선 지금부터라도 긴 호흡으로 생각해야 한다. 미래 연구자로서 이를 위한 작은 시도로, 평화체제가 들어설 경우의 한반도 미래상과 대응전략을 따져보았다. 물론 여기서 언급하는 미래상은 하나의 가능성 모델일 뿐 개연성 있는 미래를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기간은 2048년까지 단기, 중기, 장기로 나눴다. 미래학에서 단기, 중기, 장기는 물리적 시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단기는 현재 추세에 대응하는 것을, 중기는 새로운 추세를 전망하고 미래전략을 세우는 것을, 장기는 바람직한 미래를 위한 씨앗을 심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단·중·장기 미래전략은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
북한의 평양역 앞 거리. 차량이 뜸하고 도로 포장 상태가 좋지 않다. 4월 초 남쪽 예술단이 북한 공연을 위해 방문했을 때 촬영한 것이다. 평양공연공동사진단
평화와 공존(2018~2023)
DMZ 국제 생태관광지로 부상
남쪽 한계기업들 회생 돌파구
북, 혼합형 점진 개방 정책 추구
IT 투자 늘려 감시체계 고도화
평화와 공존의 시대(2018~2023)
앞으로 5년은 남북 간 평화와 공존의 시대로 규정해볼 수 있다.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 협상 과정을 거치면서 남북은 서로 이해를 높이고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 방안을 찾는 대화와 소통을 확대해갈 것이다. 군사 대치 상황이 완화되면서 군부대의 후방 배치가 단계적으로 이뤄질 것이다. 비무장지대(DMZ) 지역은 세계적 생태지역의 하나로 보존되면서 세계적 관광지역으로 부상한다. 정치, 경제, 사회, 기술, 자원, 인구 및 환경 등 모든 분야에서 남북 대화와 토의가 시작된다. 우선 필요성과 이익이 명확한 분야부터 시작하나, 조만간 경쟁적으로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북한은 그 속도를 조절해갈 것이다.
미 중앙정보국(CIA)에 따르면 북한의 1인당 구매력기준 국내총생산(GDP)은 1800달러(2014년 기준)이다. 저임금에 양질의 노동력인 북한은 매력적인 투자처다. 미국 기업에도 마찬가지다.
미국 자본의 투자는 북한의 정권 유지에도 보증과 보험 역할을 한다. 투기적 자본도 북한에 눈독을 들일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 투자자본가 짐 로저스가 전재산을 북한에 투자하겠다고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투기 자본에 북한이 무방비로 노출되는 데 대해선 남한 금융 전문가의 역할이 있을 수 있다.
개성공단이 빠른 시일 안에 재개되는 것은 물론, 다른 경제특구도 추가로 조성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도로망 등에 대한 사회간접자본 투자도 진행된다. 남한의 일부 노동집약기업은 북한에 공장을 개설하면서 한숨을 돌릴 것이다. 외국으로 공장을 옮겼던 기업들도 북한을 겨냥해 돌아올 수 있다.
북한이 저임금 제조 기지로만 머물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노하우는 우주기술로 전환될 수 있다. 북한의 아이티 인력 또한 상당히 고급인력으로 평가받고 있다. 남북은 다양한 분야에 걸쳐 4차 산업혁명을 협업하여 준비하려 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은 지식혁명이다. 지식혁명은 창의성이 촉발한다. 창의성의 핵심은 연계지능이다. 남북 협력은 지식을 연계하는 데 최적의 환경이다.
북한의 광물자원 투자도 초기에 상당히 검토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환경오염을 낳을 수 있다. 경제적 효율성에 매몰된 일부 기업은 북한 광물자원에 대한 난개발을 야기할 것이다. 생존을 우선해온 북한은 환경문제와 관련한 규제가 체계적이지 않다. 이에 대비해 남북 공동 환경협의체를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북한의 개방정책은 베트남과 싱가포르 식을 혼합한 점진적 개방정책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과 베트남은 개방 초기에 연평균 10%, 7%의 성장률을 보여주었다. 북한의 낮은 지디피와 양질의 노동력, 남한의 경제개발 경험 공유 등을 고려하면 10% 성장률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현재 남북의 기대수명은 10년 이상 격차가 있다. 이 차이는 빠른 속도로 좁혀질 것이다. 경제상황이 개선되면 북한의 합계출산율도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의 저출산 고령화 현상이 근본적으로 개선되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은 주민감시 체계를 고도화하기 위해서 아이티 기술과 인프라에 집중 투자를 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도 국방비보다 경찰 예산이 더 많다. 국제 인터넷망에 연결되지 않은 인트라넷은 한동안 유지되겠지만, 아이티 감시 체계가 고도화하면서 인터넷망도 단계적으로 개방될 것이다. 이 경우 북한 인권 문제가 논란이 될 수 있다.
남북의 평화와 협력 기조는 지속되지만, 주변국들은 각자 한반도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핵 폐기에 걸리는 기간을 고려하면, 그사이에 다양한 변수가 존재한다. 트럼프 정권이 재선에 실패하거나, 일본의 보수우경화가 브레이크 없이 진행되거나, 미-중 갈등이 깊어지는 것 등이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을 이틀 앞둔 지난 4월25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통일대교 남단에서 ㈔통일의길과 고양시민회 회원들이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며 한반도기를 걸고 있다. 파주/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번영과 갈등(2024~2033)
남북철도, 유럽대륙까지 연결
북, 개발 본격화 체제경쟁 시도
상호방문 확대…시민갈등 부각
남북, 새 체제 반영한 개헌 나서
번영과 갈등의 시대(2024~2033)
중기 미래에 해당하는 2024년부터 10년간 남북은 공동번영의 성과를 거두고,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협력도 새로운 단계에 진입한다. 이 시기에 남북 철도가 유럽대륙으로 연결되고, 대규모 경제협력 사업도 성과를 내며 더 큰 협력 계획이 진행된다. 러시아 천연가스를 시베리아와 북한을 거쳐 남한으로 운송하는 파이프관 건설이 완료되면서 동북아에는 새로운 전략적 협력 구도가 조성된다. 온난화와 대기 악화로 몽골 지역에서 태양광 발전을 하여 러시아의 극동 지역, 중국의 동북3성과 한반도로 전력을 보내는 글로벌 전력망 사업의 일환으로 착수된다. 남북한 시민의 접촉면이 넓어지면서 그만큼 갈등도 커지기 시작한다.
북한은 우주 로켓 개발을 지속해 상업용 인공위성 발사 사업에 성공하고, 로봇 등 첨단 산업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산업 클러스터를 중심으로 한 북한의 도시개발은 산업 경쟁력과 삶의 질 향상이라는 성공적인 도시화 모델로 평가받게 된다. 이는 북한 정권에 자신감을 주는 동시에 남북 간 체제 경쟁이 나타날 수 있다. 급속한 북한의 경제성장은 당 간부와 관료층과 결탁한 일부 특권층의 형성과 부패로 이어진다.
남한은 이 시기에 북한과의 경제협력으로 인한 경제성장 효과가 감소하고, 전 산업분야에서 자동화가 심화되면서 실업문제가 다시 커진다. 북한에서도 양극화가 사회문제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에 따라 남북 경협에 대한 비판이 이슈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
남북 상호방문 허용 범위는 확대될 것이다. 개성, 개마고원 및 백두산 등 일정 지역을 대상으로 단순 관광을 목적으로 북한에 방문하는 것이 확대된다. 남북 학생 교류와 상호 유학도 시작할 것이다. 상호 방문이 늘어나면서 시민 간 갈등도 현실화한다. 사상과 경제력의 차이는 민족 정서만으로 메우기에는 그 골이 넓고 깊다. 남한의 일부 자유주의 세력과 종교는 북한의 민주화와 선교를 위한 지원 활동을 벌일 것이다. 북한의 사회주의 세력은 남한에서 자신들의 세력을 구축하는 활동을 벌일 수도 있다. 이에 따라 남북 사이에는 사소한 긴장과 갈등이 발생한다.
중기 미래에 4차 산업혁명 촉매기술의 많은 것이 성숙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인공지능, 가상현실, 무인자동차기술, 생명과학기술, 위성기반 무선통신기술의 일반화, 핵융합 발전 상용화 등은 한반도에 다양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북한 당국은 기술 발달에 위협을 느낄 수도 있다.
이 시기 세계는 양극화가 더욱 심화될 것이다. 남한은 양극화 완화를 위해, 북한은 경제 개방 주도권 확보를 위해 각기 헌법 개정을 고려할 것이다. 1972년 남한과 북한이 상대 헌법 개정 내용을 고려하고 헌법을 개정했듯이, 이번에도 그렇게 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1972년 헌법이 양쪽에서 모두 독재를 강화하는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상호 동질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다.
변혁과 초월(2034~2048)
단일국가 수립 움직임 가시화
도시 중심으로 국가 권력 분산
북, 남쪽 시민 제한적 이주 허용
개마고원에 스마트도시 들어서
변혁과 초월의 시대(2034~2048)
포스트 자본주의 사회의 도래, 포스트 휴먼의 등장, 도시 단위 거버넌스의 등장 등 이 시기 한반도는 변혁과 초월의 갈림길에 직면하게 된다. 경제협력이 상당 기간 이어지면서 남북의 경제력 차이는 크게 줄어든다. 이에 따라 통일비용 부담이 줄어들고, 1국 2체제도 가능할 것이라는 희망을 갖는다.
남북한 내의 사회적 갈등은 점차 완화되고, 남한과 북한에 유학을 다녀온 젊은이들이 각기 사회 주역이 되면서 사회 통합은 가속화한다. 남북 간 결혼 사례도 증가한다. 북한은 자국민의 이주에는 엄격하나, 남한 시민의 이주는 일정한 지역에 한해 적극 허용하면서 남북의 인구 차이도 줄어든다. 특히 지구 온난화의 진행과 자연환경으로 인해 개마고원에 스마트도시가 건설되고 관광지로 개발된다. 원격근무, 원격교육, 원격의료 기술이 성숙하면서 북한으로 이주하는 디지털 노마드가 늘어날 것이다.
인공지능과 블록체인 기술 등의 영향으로 정부 조직과 기능에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참여민주주의 강화로 국가에서 도시로 권력이 분산되고, 자치권을 가지는 도시가 늘어날 것이다. 이는 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남북한 정부는 단일 국가를 수립하기 위한 움직임을 가시화할 것이다. 그중의 한 시나리오는 이렇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경제체제와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정치체제가 한 국가 내에서 공존하는 방안에 합의한다. 중앙정부는 외교와 국방을 담당하고, 시도의 지방정부는 정치체제와 경제체제를 시민의 의사로 결정하도록 하는 헌법을 마련한다. 국가 권력은 남북한의 대통령이 외교와 국방을 담당하고, 시도의 주권을 인정하고, 인구에 비례한 하원과 시도를 대표하는 상원으로 중앙권력을 분산하는 헌법을 통과시킨다.”
한반도 평화를 향한 불꽃은 외부의 작은 기침에도 흔들려왔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앞으로도 계속 흔들리게 될 것이다. 남북 내부 요인, 외부 국제정치, 기술과 자연환경의 변화 등 모두가 영향을 미칠 요소들이다. 한반도의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성 속에 있다. 불확실한 미래에 좀더 안정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선 체계적인 미래예측과 원려심모(遠慮深謀, 멀리 내다보고 깊게 생각하는 것)가 필요하다. 이것이 예측적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이제 남북한 당국자가 모여 한반도의 미래 로드맵에 대해 대화하고 고민하고 논의하고 수립해야 할 때다.
윤기영/에프엔에스 미래전략연구소장
이명호/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