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핵융합 에너지 만들기
‘이터’ 한국사업단장 이경수 박사
‘태양을 상자 안에다 담겠다고 한다. 생각은 멋지다. 그런데 어떻게 (태양을 담을) 상자를 만들지?’ 프랑스의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피에르질 드젠이 태양의 핵융합 반응을 지상에서 구현해 엄청난 에너지를 얻겠다는 국제핵융합실험로(이터·ITER)의 구상이 ‘이루기 쉽지 않은 꿈’임을 두고 했다는 유명한 말이다. 2015년 실험로 건설까지 무려 50억8천만 유로가 들어가는 이 ‘사상 최대의 국제 실험’은 과연 현실이 될 것인가? 지난 24일 이터 기구가 공식출범을 선언함으로써, 이제 적어도 핵융합 국제실험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됐다.
‘탈탄소·탈자원’…2040년대엔 실제 발전소 건설
내벽재료 개발 관건…환경단체들 “돈 낭비”냉랭 최근 이터 한국사업단장에 임명된 이경수 박사는 “이터 프로젝트가 20여년의 태동기를 거치고 막 이륙했다”며 “2016년 국제핵융합실험로가 눈앞에서 실제 가동되고 2020년대 중반 핵융합 반응을 수천 초 이상 지속하는 데 성공하면 에너지의 개념을 바꿀 만한 패러다임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핵융합을 전공한 그는 1991년 귀국 이후 한국에서 핵융합 연구 분야를 조직하고 국가핵융합연구사업의 초안을 짜는 데 참여했던 주요 인물이다. 그는 국제핵융합연구평의회의 의장이기도 하다. 지난 29일 그를 만나 핵융합 에너지의 ‘장밋빛 전망’보다 이터가 풀어야 할 ‘현실적 난제’들을 주로 물어봤다. 무엇보다 관심은 지난 수십년 동안 ‘꿈’으로 남아 있던 핵융합 연구가 과연 현실의 발전소로 이어질 수 있을지 여부다. 사실 이터는 석유와 우라늄을 대체하고 지구온난화 위기를 해결할 친환경 에너지의 시대를 열겠다고 내세우지만, 정작 환경단체들은 “위험한 장난감에 돈을 낭비하지 말고 재생에너지 개발에 더 돈을 쏟아라”며 대체로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또 일부 과학자들은 수억도 이상의 초고온에서 일어나는 핵융합 반응을 장시간 견뎌낼만한 반응로를 쉽게 만들 수 있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이미 인공태양을 담을 상자는 만들어졌지요. 이제 꿈은 아닙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상자의 내구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겁니다. 그건 이터가 직면한 가장 큰 현실의 문제입니다. 초고온 플라즈마와 핵융합 때 생기는 중성자 에너지를 오래 견뎌낼 반응로의 내벽 재료를 개발해야 합니다. 냄비가 좋지 않아 물을 끓이다 불을 끄고 자주 냄비를 갈아야 하면 물을 끓이는 데 많은 비용이 들어가니까요. 장시간 견딜 반응로 내벽 재료엔 여러 후보물질이 있는데, 그걸 찾아 개발하는 게 관건입니다.”
아무리 실험에 성공해도 발전소가 되려면 경제성이 중요하다. 현재 핵융합으로 전기를 생산하면 그 단가는 잘 해야 1㎾당 600~700원이라고 한다. 원자력의 수십원대와는 비교하기도 힘들다. 이 단장은 “에너지 생산의 효율성이 성패를 가름할 중요 변수”라고 말했다. “들어간 에너지보다 얻는 에너지가 지금보다 훨씬 더 커야 합니다. 생산 단가는 적어도 100원 아래로 떨어져야 하고요.” ‘단가 100원’은 핵융합의 가능성을 보여줄 중요한 수치다.
초고온 플라즈마를 강력한 자기장 안에 가두는 초전도체 기술도 획기적으로 발전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여러 기술적 과제들 외에도 핵융합 연구자들이 풀어야 할 ‘사회적’ 문제들도 많다. 이터는 2030년대에 시험발전소(데모플랜트)를 짓고 2040년대엔 실제 행융합발전소를 짓겠다는 목표 일정을 제시했다. 갈 길은 멀고 막대한 돈은 계속 들어간다. 실험로가 완공된 뒤에도 20년 동안 대략 50억 달러의 운영비가 더 들어갈 전망이다. 싸고 깨끗한 미래 에너지의 가능성이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면 ‘돈 먹는 하마’라는 따가운 여론을 피하기는 힘들다. 이 단장은 “목표 실현에 불확실성이 있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이터는 매우 엄격한 협정에 따라 7개국이 협력해 이루는 공동연구이고 그래서 그 목표도 매우 보수적으로 설정됐다”며 목표의 실현 가능성을 거듭 강조했다. “특히 2020년대 중반에 핵융합 반응이 수천 초 이상 지속되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질 겁니다. 에너지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혁명이 일어나고 세계 ‘에너지 기술의 헤게모니’에도 큰 판도 변화가 일어날 겁니다.” 그가 말하는 ‘혁명’은 지금의 탄소 연료와 유한한 우라늄 자원에서 벗어나는 ‘탈탄소, 탈자원 에너지’의 전략을 담고 있다. “물론 핵융합 에너지가 온난화 위기를 다 해결할 수 없다는 말은 맞습니다. 하지만 탄소 시대는 끝나고 있고 끝날 수밖에 없지요. 우리가 언제까지 석유, 석탄과 우라늄 자원에 매달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재생에너지도 발전 규모는 크지 않습니다. 100년 뒤의 지구를 상상해보세요. 계속 자연 자원을 태워 고갈시켜며 살 수 있을까요?” 그의 결론은 “결국에 에너지원을 아주 적게 쓰고도 원자력의 300배나 되는 에너지를 얻을 핵융합이 미래 에너지의 대안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사실 ‘중수소 200g과 삼중수소 300g만으로 100만㎾급 발전소 2기를 하루 가동할 수 있다’는 핵융합의 계산법은 매력적이다. 원자력과 핵융합 분야 연구자들 사이에 이는 미묘한 갈등에 대해 그는 “일부 원자력계 인사들의 목소리가 확대 해석된 것”이라며 “실제로는 원자력의 축적된 경험과 기술이 핵융합 연구에 필요하다는 점이 점차 널리 공유되고 있다”고 말했다. ‘핵융합을 평화적으로 활용하자’며 1950년대 이래 이어져온 핵융합 연구는 이제 독립된 국제기구에 둥지를 트고 ‘에너지 혁명’과 ‘인공태양 발전소’의 오랜 꿈을 이루려는 본격적인 첫걸음을 내딛고 있다. 글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사진 이터 한국사업단 제공
내벽재료 개발 관건…환경단체들 “돈 낭비”냉랭 최근 이터 한국사업단장에 임명된 이경수 박사는 “이터 프로젝트가 20여년의 태동기를 거치고 막 이륙했다”며 “2016년 국제핵융합실험로가 눈앞에서 실제 가동되고 2020년대 중반 핵융합 반응을 수천 초 이상 지속하는 데 성공하면 에너지의 개념을 바꿀 만한 패러다임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핵융합을 전공한 그는 1991년 귀국 이후 한국에서 핵융합 연구 분야를 조직하고 국가핵융합연구사업의 초안을 짜는 데 참여했던 주요 인물이다. 그는 국제핵융합연구평의회의 의장이기도 하다. 지난 29일 그를 만나 핵융합 에너지의 ‘장밋빛 전망’보다 이터가 풀어야 할 ‘현실적 난제’들을 주로 물어봤다. 무엇보다 관심은 지난 수십년 동안 ‘꿈’으로 남아 있던 핵융합 연구가 과연 현실의 발전소로 이어질 수 있을지 여부다. 사실 이터는 석유와 우라늄을 대체하고 지구온난화 위기를 해결할 친환경 에너지의 시대를 열겠다고 내세우지만, 정작 환경단체들은 “위험한 장난감에 돈을 낭비하지 말고 재생에너지 개발에 더 돈을 쏟아라”며 대체로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또 일부 과학자들은 수억도 이상의 초고온에서 일어나는 핵융합 반응을 장시간 견뎌낼만한 반응로를 쉽게 만들 수 있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이터’ 한국사업단장 이경수 박사. 이터 한국사업단 제공.
초고온 플라즈마를 강력한 자기장 안에 가두는 초전도체 기술도 획기적으로 발전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여러 기술적 과제들 외에도 핵융합 연구자들이 풀어야 할 ‘사회적’ 문제들도 많다. 이터는 2030년대에 시험발전소(데모플랜트)를 짓고 2040년대엔 실제 행융합발전소를 짓겠다는 목표 일정을 제시했다. 갈 길은 멀고 막대한 돈은 계속 들어간다. 실험로가 완공된 뒤에도 20년 동안 대략 50억 달러의 운영비가 더 들어갈 전망이다. 싸고 깨끗한 미래 에너지의 가능성이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면 ‘돈 먹는 하마’라는 따가운 여론을 피하기는 힘들다. 이 단장은 “목표 실현에 불확실성이 있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이터는 매우 엄격한 협정에 따라 7개국이 협력해 이루는 공동연구이고 그래서 그 목표도 매우 보수적으로 설정됐다”며 목표의 실현 가능성을 거듭 강조했다. “특히 2020년대 중반에 핵융합 반응이 수천 초 이상 지속되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질 겁니다. 에너지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혁명이 일어나고 세계 ‘에너지 기술의 헤게모니’에도 큰 판도 변화가 일어날 겁니다.” 그가 말하는 ‘혁명’은 지금의 탄소 연료와 유한한 우라늄 자원에서 벗어나는 ‘탈탄소, 탈자원 에너지’의 전략을 담고 있다. “물론 핵융합 에너지가 온난화 위기를 다 해결할 수 없다는 말은 맞습니다. 하지만 탄소 시대는 끝나고 있고 끝날 수밖에 없지요. 우리가 언제까지 석유, 석탄과 우라늄 자원에 매달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재생에너지도 발전 규모는 크지 않습니다. 100년 뒤의 지구를 상상해보세요. 계속 자연 자원을 태워 고갈시켜며 살 수 있을까요?” 그의 결론은 “결국에 에너지원을 아주 적게 쓰고도 원자력의 300배나 되는 에너지를 얻을 핵융합이 미래 에너지의 대안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사실 ‘중수소 200g과 삼중수소 300g만으로 100만㎾급 발전소 2기를 하루 가동할 수 있다’는 핵융합의 계산법은 매력적이다. 원자력과 핵융합 분야 연구자들 사이에 이는 미묘한 갈등에 대해 그는 “일부 원자력계 인사들의 목소리가 확대 해석된 것”이라며 “실제로는 원자력의 축적된 경험과 기술이 핵융합 연구에 필요하다는 점이 점차 널리 공유되고 있다”고 말했다. ‘핵융합을 평화적으로 활용하자’며 1950년대 이래 이어져온 핵융합 연구는 이제 독립된 국제기구에 둥지를 트고 ‘에너지 혁명’과 ‘인공태양 발전소’의 오랜 꿈을 이루려는 본격적인 첫걸음을 내딛고 있다. 글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사진 이터 한국사업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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