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실험실의 연구윤리는 어디로 가고 있나?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논문 조작 사건에 이어 카이스트 연구진실성위원회의 자체 조사를 통해 드러난 김태국 교수의 논문 조작 의혹 사건이 국내 연구 진실성의 자정 능력과 실험실 문화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이번 사건과는 무관한 일반 실험실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카이스트 연구부정 자체검증 계기 ‘진실성위’ 활동 주목
위계서열 중시하는 ‘대학 실험실 문화’ 자성 목소리도
위계서열 중시하는 ‘대학 실험실 문화’ 자성 목소리도
지난달 29일 카이스트가 자체 조사를 통해 밝힌 김태국 생명과학과 교수 실험실의 논문 조작 의혹 사건(<한겨레> 1일치 10면)에 대한 학교 쪽의 추가 조사가 강도 높게 진행되면서 2006년 처음 도입된 연구진실성위원회의 자정 능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편에선 이번 사건을 대학 실험실 문화를 자성하는 계기로 삼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이번 연구부정은 생명과학과 연구진실성위원회(위원장 이균민 학과장)의 신속한 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교수들은 지난달 12일 처음 논문 조작 제보를 전해들은 뒤 다음날 조사위원 9명과 실무자 4명으로 위원회를 꾸리고 곧이어 김 교수 연구실을 폐쇄하는 한편 공저자 연구생 4명을 불러 논문 내용과 연구 과정에 대한 강도높은 조사를 벌였다. 위원회는 <사이언스> 등에 발표한 ‘노화 질병 신약의 원천기술’과 관련한 2편의 논문이 조작됐다는 충분한 증거와 증언을 확보했다며 이런 내용을 <사이언스> 등에 곧바로 알렸다. 이 과정에서 김 교수는 위원회에 한 차례 자신의 견해를 직접 밝혔다.
조사위원 교수들은 실추된 학교의 명예 회복을 위해서라도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태도를 나타냈다. 조사위원인 서연수 교수는“연구부정을 저지르기로 마음 먹으면 사실 부정을 예방할 방법은 없다”며 “하지만 일단 터진 부정에 대해선 위원회가 신속하고 단호하게 파헤치고 철저하게 처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신뢰 회복을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건은 지난 2006년 연구진실성위원회 제도가 국내 대학에 처음 도입된 이래 위원회가 직접 밝힌 사실상 첫번째 연구부정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위원회 안팎에선 이번 처리 과정을 본보기 삼아 국내 대학의 연구진실성위원회 활동과 권한을 강화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현재 이 사건은 카이스트 연구진실성위원회(위원장 양현승 연구처장)에 넘겨져 김 교수의 역할과 의도성, 논문 조작의 책임소재 등을 따지는 보완 조사가 진행 중이다. 위원회는 조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자세한 연구부정 사례 보고서를 낼 예정이다.
<사이언스>는 3일 온라인판에 ‘편집진의 우려 표명’이란 제목으로 “카이스트 쪽이 ‘초기 조사를 통해 김 교수의 논문에 과학적 진실성이 없음을 확신하게 됐다’고 알려왔다”고 밝히고 ”논문저자들과 카이스트와 함께 적절한 다음 단계를 밟을 것”이라고 공지했다. ‘적절한 다음 단계’로 <사이언스>는 교신저자인 김 교수의 동의를 받아 ‘논문 취소’ 조처를 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논문의 공저자인 연구생들이 김 교수가 총괄한 연구의 전체 진행을 잘 알지 못했으며 데이터 해석과 관련해 지도교수한테 문제제기를 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던 것으로 알려지자, 학계에선 우리 실험실 문화를 자성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제보자는 “(당시 실험실 분위기를) 지금 말할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균민 학과장은 “이번 사태가 정리되는 대로 학생과 교수들이 모두 모여 실험실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진단하는 토론회를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조사 활동을 하면서 학생들이 지도교수와 실험실의 문제를 털어놓을 수 있게 하는 실험실 문화와 제도의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사실 우리 실험실 문화는 그동안 여러 차례 지적돼왔다. 김동광 박사(과학사회학)는 “한국의 과학자 사회를 주제로 한 연구프로젝트에 참여해 최근 여러 대학 실험실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인터뷰를 했는데 상당수가 지도교수-박사후연구원-학생으로 이어지는 서열 문화를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는 “연구자들이 자기결정의 권리를 인식하지 못하고 서열에 순응하는 실험실 생활에 익숙하다면 연구윤리도 형식에 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현숙 서울대 교수(생명과학)는 “민주적 실험실을 만들려는 장기적인 ‘문화운동’이 필요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노벨상 수상자인 막스 페루츠가 ‘과학 연구실엔 어떤 위계도 있어선 안 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듯이 과학 연구야말로 자유로운 토론과 소통을 통해 창의적 발상을 얻는 활동이기에 소통과 토론의 협력연구가 중심을 이루는 현대과학에서 실험실 문화는 더욱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지도교수의 개성에 따라 실험실 분위기가 좌우되는 풍토는 개선돼야 한다며 학과에 ‘학생 고충 상담 교수’를 두는 방안을 제안했다. 황은성 서울시립대 교수(생명과학)는 미국 의과대학에서 널리 시행되는 ‘옴부즈맨’ 제도의 도입을 제안했다. 이른바 ‘연구실 고충처리기구’다. 그는 “미국 대학의 옴부즈맨은 본래 실험실 안의 오해와 의견의 불일치, 갈등, 개인의 스트레스 따위를 상담해주는 상담원 제도”라며 “연구윤리를 둘러싼 기성 연구자와 새 세대 연구자들의 의식 차이와 갈등을 해소하고 연구윤리 풍토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도 옴부즈맨의 도입을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이현숙 서울대 교수(생명과학)는 “민주적 실험실을 만들려는 장기적인 ‘문화운동’이 필요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노벨상 수상자인 막스 페루츠가 ‘과학 연구실엔 어떤 위계도 있어선 안 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듯이 과학 연구야말로 자유로운 토론과 소통을 통해 창의적 발상을 얻는 활동이기에 소통과 토론의 협력연구가 중심을 이루는 현대과학에서 실험실 문화는 더욱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지도교수의 개성에 따라 실험실 분위기가 좌우되는 풍토는 개선돼야 한다며 학과에 ‘학생 고충 상담 교수’를 두는 방안을 제안했다. 황은성 서울시립대 교수(생명과학)는 미국 의과대학에서 널리 시행되는 ‘옴부즈맨’ 제도의 도입을 제안했다. 이른바 ‘연구실 고충처리기구’다. 그는 “미국 대학의 옴부즈맨은 본래 실험실 안의 오해와 의견의 불일치, 갈등, 개인의 스트레스 따위를 상담해주는 상담원 제도”라며 “연구윤리를 둘러싼 기성 연구자와 새 세대 연구자들의 의식 차이와 갈등을 해소하고 연구윤리 풍토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도 옴부즈맨의 도입을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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