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뇌의 프라이버시’를 아시나요
뇌영상·정신약물 발달로
‘뇌윤리’ 쟁점화 머지않아
‘뇌윤리’ 쟁점화 머지않아
#1. 부부가 이혼 법정에서 말다툼을 한다. 판사는 아내의 뇌영상을 살피곤 이내 판결을 내린다. “뇌기능 자기공명영상을 보니 앞쪽 대상피질, 미상핵, 피각 등의 활동이 증가하지 않아 아내의 사랑이 식었음이 입증됐으므로….”
#2. 대학생 ㄱ씨는 시험을 앞두고 ‘똘똘한 약’으로 불리는 값비싼 정신약물 몇 정을 어렵게 구해 챙겨놓았다. 똘똘한 약을 먹은 ㄱ씨와 약 없이 시험을 치른 친구는 공정한 게임을 한 것일까?
현대 뇌과학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이런 가상의 미래도 현실이 될지 모른다고, ‘신경윤리’(뇌윤리)를 연구해 온 장대익 동덕여대 교수(생물철학)가 23일 경고했다. 그는 “뇌영상 기술과 정신약물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뇌 진단과 치료가 점점 일상화하는 현실에서 이젠 신경과학에 대한 반성적 토론이 필요한 때”라며 “국내에서도 뇌과학에 대한 윤리적 성찰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달 말 뇌를 주제로 서울에서 열리는 ‘월드사이언스 포럼’에 참석하는 마이클 가자니가 미국 교수 등 인지과학·철학자들은 신경과학이 일상이 되는 미래 ‘신경사회’에선 새로운 성격의 윤리 문제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내다본다.
신경윤리학이 생겨난 배경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뇌기능 자기공명영상(fMRI) 같은 뇌영상 연구들을 통해 기억·심리까지도 들여다보고 예측하며 미리 조정할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등장하고, 뇌 기능을 높이는 갖가지 정신약물들이 개발되면서 윤리의 영역을 위협하고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했다.
신경윤리를 주장하는 학자들은 뇌영상 기술이 무분별하게 쓰이면 ‘뇌 프라이버시’나 뇌영상 해석의 부정확성 문제들이 철학 토론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장 교수는 “다른 사람의 뇌영상에 담긴 신경 상태나 뇌 정보가 적절한 규제 없이 유통된다면 뇌 프라이버시가 인권의 쟁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범죄 용의자의 뇌 반응을 살피는 ‘뇌영상 거짓말 탐지기’의 정확성 논란도 일어나고 있다고 소개했다. 윤리학자들은 기억이나 집중력 같은 뇌 기능을 높여주는 약물들이 갈수록 더 많이 개발되면서 사람의 정신능력이 빈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국가뇌연구원이 내년에 착공해 2012년께 문을 열고 뇌과학 영역이 점차 확장하는 등 뇌 연구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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