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태초의 고에너지 상태를 실험 수준에서 재현할 유럽 거대강입자가속기(<한겨레> 6월19일치 19면)의 이달 말 가동을 앞두고, 이 가속기가 풀어야 할 ‘우주의 수수께끼’를 물리학자 이종필 박사(고등과학원 물리학부 연구원)가 다섯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이달 말 본격 가동에 들어가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대형강입자가속기(LHC)는 세계 과학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강입자가속기는 두 갈래의 양성자 빔을 둘레 27㎞의 원형 지하터널에서 반대 방향으로 가속시키다 고에너지로 충돌시킨다. 이 때 충돌 에너지는 양성자 자신의 질량보다 1만4천배나 크다. 유사 이래 인류가 소립자로 만들어낸, 전대미문의 가장 큰 에너지다.
충돌 에너지가 높으면 고에너지에서만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갖가지 현상들을 관찰할 수 있다. 아직 인류가 양성자 질량의 1천배 가량 되는 에너지 영역을 탐사하지 못했기 때문에 과연 강입자가속기가 무엇을 보여줄지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현재 물리학이 처한 난제들을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무엇보다 ‘신의 입자’로 알려진 힉스 입자를 발견할 수 있을지가 최대 관심사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이 밝혀낸 소립자는 물질을 구성하는 6쌍의 구성입자와, 힘을 전달하는 4개의 매개입자들이다. 세상은 도대체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라는 원초적 질문의 답이 모두 여기에 들어 있다.
이 소립자들은 ‘표준모형’의 틀로 잘 이해된다. 이 표준모형에 따르면, 자연에는 ‘게이지 대칭성’이 있다. 게이지 대칭성이란 뭔가? ‘우리가 입자들을 관측하는 틀(게이지)을 바꾸더라도 물리법칙은 변하지 말아야 한다’는 물리의 원리다. 만약 물리법칙이 실험자의 편의에 따라 마구 바뀐다면 보편 법칙의 의미를 잃어 버릴 것이다. 그 동안 과학자들은 이 대칭성이 유지되려면 반드시 힘을 매개하는 입자들이 존재해야 함을 밝혀냈다. 과학자들은 마찬가지로 대칭성에 기대어 약한 핵력과 전자기력을 통합했으며 강한 핵력도 성공적으로 설명해냈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게이지 대칭성이 있으면, 사실 모든 입자는 질량을 가질 수 없다. 대칭성이란 한마디로 ‘구분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정육면체인 주사위에 눈을 표시하지 않으면 어느 면이 어느 면인지 분간할 수 없다. 당구공에 아무런 표시가 없으면 공이 회전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정육면체나 공이나 모두 대칭성이 무척 높기 때문이다. 소립자들을 서로 구분하는 가장 기본적인 물리량이 바로 질량인데, 게이지 대칭성은 이런 질량의 구분마저 지워 버린다.
과학자들은 게이지 대칭성을 유지하면서도 대칭성이 적절하게 깨져 소립자들이 질량을 얻게 되는 방법을 연구했다. 이 과정에서 도입된 입자가 ‘힉스’다. 힉스 입자가 대칭성을 유지하면서 소립자들과 상호작용을 하다가 갑자기 특정한 값을 갖게 되어 대칭성이 깨지면서 소립자들은 질량을 얻는다는 것이다.
힉스 입자는 다른 모든 입자들에 질량을 부여하는 구실을 하기 때문에 ‘신의 입자’라는 별칭을 얻었다. 표준모형이 나온 지 40년, 다른 모든 소립자들은 발견됐지만 아직도 신의 입자는 발견되지 않았다. 과학자들이 강입자가속기를 목 빠지게 기다려 온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종필 고등과학원 물리학부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