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균 카이스트 연구교수 물리학
‘빅뱅 머신’ LHC의 도전
우주의 수수께끼를 푼다⑤
우주의 수수께끼를 푼다⑤
태양계 행성들 가운데 공전 속도가 가장 빠른 것은 태양에 가장 가까운 수성이다. 태양에서 멀수록 공전 속도가 줄어들어 가장 바깥에 있는 해왕성(명왕성은 행성 자격이 박탈됐음을 기억하자)은 가장 느리게 공전한다. 태양계 대부분의 질량이 중심인 태양에 집중해 있기 때문이다.
40여년 전 과학자들은 은하 중심축의 둘레를 도는 안드로메다 은하의 회전 운동을 살피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은하 질량의 대부분이 가장 밝은 은하 중심부에 집중해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과학자들은 은하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태양계의 경우와 비슷하게) 은하의 회전 속도도 느려지리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랐다. 은하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은하의 회전 속도는 줄지 않고 거의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우리 은하를 포함해 다른 은하들에서도 비슷한 관측 결과가 나타났다.
이런 뜻밖의 관측 결과는 무엇을 말해 줄까? 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곧 전자기파의 방출·흡수를 관측할 수 없는 이른바 ‘암흑물질’의 막대한 질량이 은하에 적절히 퍼져 있을 가능성을 의미한다. 이젠 눈에 보이는 은하 부분이 거대한 암흑물질 안에 놓여 있으며, 이런 암흑물질이 은하 전체 질량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야말로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과연 암흑물질의 정체는 무엇일까? 왜 막대한 질량을 지니면서도 중력효과를 제외한 다른 방법으로는 관측하기 어려운 것일까? 물리학자들은 암흑물질의 유력한 후보로 ‘윔프’(WIMP)라 통칭되는 ‘약한 상호작용을 하는 무거운 소립자’를 꼽고 있다. 수많은 무거운 윔프들이 제공하는 질량이 있다고 보아야, 바깥쪽 은하에 나타나는 예상 밖의 회전 속도도 이해될 수 있다. 그런데 윔프들은 우리가 아는 보통 물질과는 ‘약한 상호작용’을 하기 때문에 직접 관측하기가 매우 어렵다. 초대칭 이론에 나타나는 ‘가장 가벼운 초대칭 입자’는 윔프의 대표적인 예다.
만약 윔프가 암흑물질의 중요한 구성요소이고 그 입자의 질량이 양성자 질량의 100배쯤 된다면, 1㎠ 면적당 10만여개의 암흑물질 입자들이 1초마다 우리 몸을 통과한다는 계산도 나온다. 물리학자들은 이런 윔프들이 보통 물질과 충돌할 때 남기는 ‘매우 미약한 신호’를 찾기 위해 깊은 땅속에 검출기를 설치한다. 우주방사선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짜 신호를 될수록 줄이기 위해서다. 윔프가 소멸할 때 태양이나 지구의 중심에서 생길 수 있는 높은 에너지의 중성미자를 관측하기 위해, 때론 깊은 물속에, 때론 남극의 깊은 얼음 속에 검출기를 설치하기도 한다.
아직 확실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암흑물질 입자를 찾으려는 물리학자들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 거대 강입자 가속기(LHC)의 실험은 새로운 방식으로 암흑물질의 신호를 찾게 될 것이다. 고에너지의 양성자-양성자 충돌을 통해 암흑물질 입자를 직접 만들어 내려는 것이다. 생성된 암흑물질 입자는 검출기에 별다른 흔적을 남기지 않고 빠져나가겠지만, 그로써 측정된 에너지의 결핍을 통해 간접 추적은 가능하다. ‘수렵에서 농경으로’ 암흑물질 찾는 방식도 바뀌고 있는 셈이다. <끝>
김영균 카이스트 연구교수 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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