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조작 의혹을 받고 있는 논문들 중 사진 자료 부분. 실험 내용은 논문마다 다른데도, 논문에 쓰인 실험 사진은 같다.
사이버 ‘연구진실성 검증’ 나선 ‘브릭’ 게시판
성균관대 교수 한약효과 논문 20편 분석 잇따라
BK21 연구비 지원받아…학교쪽 “조사 진행중”
성균관대 교수 한약효과 논문 20편 분석 잇따라
BK21 연구비 지원받아…학교쪽 “조사 진행중”
‘표절에 데이터 조작 의혹까지…’. 의혹을 받고 있는 연구자는 그릇된 ‘관행’ 탓에 벌어진 일이라고 말하지만, 다른 연구자들은 해도 너무했다며 거세게 비판하고 있다. 국가지정연구실을 운영하는 국내 교수 연구팀이 발표했던 논문 여러 편에 같은 실험 사진이 재활용된 사실이 밝혀져 ‘데이터 조작’ 의혹이 일고 있다.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의 온라인 게시판(bric.postech.ac.kr)에서는, 지난 2일 이후 익명의 여러 연구자들이 김아무개 성균관대 교수가 쓴 논문들에 데이터 조작과 표절 의혹이 있다는 분석 글을 잇따라 올리며 사실상 ‘연구 진실성’ 검증에 나서고 있다. 지적된 논문 자료들을 보면, 김아무개 교수가 책임저자로 2003~2006년 외국 과학저널에 발표한 4편의 다른 논문들엔 같은 실험 사진이 실렸다. 한약 효과를 검증한 다른 논문 4편에서도 또다른 실험 사진이 거의 동일하게 쓰인 것이 발견됐다. 논문을 검토한 국내 한 생명과학 교수는 “같은 데이터가 서로 다른 논문들에 재활용된 게 분명하다”며 “일부러 데이터를 조작하려는 의도 없이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 논문들은 약리 작용을 하는 여러 한약 물질들이 유전자 발현과 디엔에이(DNA)의 전사과정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지 등을 규명한 것으로, 여러 외국 학술지들에 발표됐다.
또 김 교수는 <네이처>(1999), <사이언스>(1997)에 실린 외국 연구팀의 논문 상당 부분을 거의 그대로 베껴 2007년 국외 <민족약학 저널>, <식물요법 저널>에 발표했다는 표절 의혹도 받고 있다. 대부분 논문들은 연구실적 평가 때 ‘점수’의 근거가 되는 국제 공인 학술지(SCI급)들에 실렸다. 김 교수는 지난해 10월에도 미국 연구팀이 표절 검색 소프트웨어(‘데자뷔’)로 찾아냈다며 누리집에 공개한 표절·중복게재 의혹 논문 목록에도 포함돼 문제가 된 바 있다. 지금까지 의혹 대상이 된 논문은 20편가량이다.
온라인에선 사태가 점점 커졌지만 대학은 신중한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성균관대 쪽은 “학술진흥재단(학진)이 자세히 조사해 줄 것을 요청해와 (지난해부터) 조사가 진행 중”이라고 말했으나 조사 범위와 일정은 밝히지 않았다. 이 대학의 교수는 “여러 동료 교수들이 김 교수 논문들을 나누어 분석한 뒤 보고서를 지난해 말 학교 쪽에 제출했다”며 “한두 차례 심사 회의가 열린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데이터 조작 의혹에 대해 김 교수는 “지난해 말 같은 사진이 여러 논문들에 실린 사실을 발견해 학교와 학진에 이미 보고하고 소명했으며 지금은 학교의 판단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으나 자세한 경위는 밝히지 않았다. 표절 의혹에 대해선 “한의학 과학화를 위해 한약의 약효를 검증하면서 기존의 좋은 실험방법을 빌려 쓰다 보니 이런 일이 생겼다”며 “이 분야의 잘못된 관행을 이젠 그만둬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그동안 국내외 학술지에 논문 310여편을 냈으며, 그의 연구실은 지난해 연구비를 지원받는 국가지정연구실로 지정됐고 2006년부터는 학진의 ‘비케이(BK)21’ 연구비 지원도 받고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학계에선 논문 편수만을 지나치게 중시해 개인과 연구기관의 순위를 매기는 분위기와 평가체제의 맹점을 자성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 대학 교수는 “한 해에 논문 서너 편을 내는 일도 어려운데 이런 식으로 여러 편 낸 실적 덕분에 국가 지원을 받고 있다면 이는 매우 잘못된 일”이라며 “대학이 지원 연구비에 연연하지 말고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학진 관계자는 “비케이21 선정 기준엔 40여 항목이 있으며 논문 편수만으로 선정하진 않는다”며 “학교의 조사 결과를 보고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사이버 실명제가 사회 쟁점이 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 일은 누리꾼의 익명성 덕분에 과학 연구윤리를 자유롭게 검증하는 사이버 공간이 생길 수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도 눈길을 끈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