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간질성 폐렴,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 추정”
3세 어린이 살균가습기 켜고 자다가 폐질환 사망
피해 자녀 부모들, 살균제 제조업체에 소송 모색중
3세 어린이 살균가습기 켜고 자다가 폐질환 사망
피해 자녀 부모들, 살균제 제조업체에 소송 모색중
2008년 서울아산병원과 서울대병원의 교수 9명은 급작스런 폐렴으로 입원한 아이들 15명에 대해 연구한 논문을 썼다. 교수들은 2006년 독감을 앓은 아이들이 며칠 만에 호홉곤란을 겪더니 이어 폐세포가 손상돼 절반가량이 숨졌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른바 ‘소아 급성 간질성 폐렴’. 하지만 원인은 밝혀내지 못했다. 그저 “어떤 미생물이 관여하지 않았을까” 추정했을 뿐이다.
당시 논문을 쓴 전종근 부산대 의대 교수는 19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예전에는 급성 간질성 폐렴이 단발적으로 한두 건 발생했지만, 2006년 즈음에는 환자가 갑자기 불어나 원인을 알고 싶었다”며 “당시 역학조사를 하지 않아 가습기 살균제를 생각지 못했지만, 그때 어린 환자들의 증상은 최근 보건복지부가 가습기 살균제를 원인으로 추정한 간질성 폐렴과 똑같았다”고 말했다. 전 교수 등이 쓴 논문은 급성 간질성 폐렴을 다룬 국내 최초의 논문이었다.
서울에 사는 준식(3·가명)이에게도 지난 1월17일 중순 갑자기 감기가 찾아왔다. 지난해 10월부터 석 달 동안 매일 가습기 살균제 10㎖를 가습기에 넣고 잔 터였다. 준식이의 엄마 이정민(33·가명)씨가 말했다. “아이가 갑자기 피곤해하더라고요. 입맛도 없는지 좋아하는 음식도 안 먹고. 동네 소아과에선 보통 감기라고 했죠.”
하지만 일주일 뒤 준식이는 가슴이 패일 정도로 거친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기흉(폐에 구멍이 생겨 늑막 안에 공기가 차는 질환)이었다. 사흘 뒤 준식이는 혼자 숨을 쉬지 못했다. 폐에선 섬유화(딱딱해짐)가 진행됐다. 결국 인공적인 폐호홉을 위해 폐에 관을 집어넣었고, 준식이는 수면치료를 받아야 했다. 의사도 정확한 병명을 몰랐다. 준식이의 진단서에는 간질성 폐질환, 급성 호홉곤란 증후군, 패혈증, 호흡 부전, 간질성 폐기종, 상세 불명의 공기가슴증 등 10가지 병명이 적혀 있을 뿐이다. 2월27일 오후 1시, 준식이의 혈압이 떨어졌다. 동공은 반응을 멈췄다. 감기로 병원을 찾은 지 40일 만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준식이를 떠나보내지 못했다. 준식이의 유골함은 아직 거실에 있다. 가습기 살균제는 한 달에 한 통씩 딱 세 통을 썼다. 이정민씨가 세 장의 영수증을 꺼내 보여주며 말했다. “준식이가 저 세상에 간 이유를 알기 전까지는 유골함을 못 보낼 것 같아요.”
질병관리본부는 지난달 말 임산부들에게 발생한 원인 미상의 폐 손상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일 수 있다는 역학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병원에 입원한 20살 이상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역학조사 결과다. 살균제가 원인이라면 면역력이 약한 영·유아는 큰 규모로 피해를 입었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간질성 폐렴을 앓은 아이를 둔 엄마 수십명은 여러 인터넷 카페 등에 모여 살균제 제조업체에 대한 법적 소송 등 대응을 모색하고 있다. 환경단체인 환경보건시민센터와 가습기살균제피해자모임은 “정부 발표 뒤 피해 가족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와 여러 사례를 추산해보면 최근 2~3년 동안 숨진 사례만 100건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며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제보센터’를 인터넷 홈페이지(eco-health.org)에 열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원인 미상의 폐질환에 가장 취약한 영유아를 중심으로 실태조사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20일 오전 10시30분 서울 중구 정동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는 피해사례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이 열린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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