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와 보수 성향이 어우러져 조화로운 사회를 이룬다. 그림은 진보와 보수, 남녀노소 차이를 넘어 공존하는 공간으로서 서울광장을 표현한 고경일 상명대 교수(만화가)의 만화작품(2012). <한겨레> 자료사진
[사이언스 온]뇌 영상으로 보는 정치 성향
2011년 영화 <킹스 스피치>에서 말 더듬는 왕의 역할을 열연한 영국 배우 콜린 퍼스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런데 그해는 연기자인 그에게 신경과학 분야의 경력이 추가된 한 해이기도 했다. 평소 정치·사회 현안에 관심을 기울이며 인권과 공정무역 같은 사회참여 활동에 나서던 그는 2010년 <비비시(BBC)> 라디오 프로그램의 객원 편집위원으로서 색다른 실험을 계획했다. 정치 성향에 따라 뇌 구조에 차이가 있는지 알아보고자, 대학 연구진의 도움을 얻어 영국 보수당과 노동당 하원의원 2명의 뇌를 자기공명영상(MRI)으로 촬영한 것이다. 후속 연구에도 관여한 그는 2011년 신경과학 논문에 어엿한 공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진보와 보수 성향 뇌에선 어떤 일이?
퍼스가 참여한 영국 료타 카나이 연구팀의 실험결과를 살펴보자. 연구팀은 참가자의 정치 성향이 뇌의 어떤 영역과 연관성을 갖는지 살폈는데, 참가자가 자신을 진보적이라고 여길수록 전측 대상피질의 회색질 부피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자신을 보수적이라고 생각하는 참가자들에선 편도체의 회색질 부피가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 성향이 진보적인지 보수적인지는 안전한 상태가 무너지는 상황이 닥칠 때 공포와 불확실성을 심리적으로 어떻게 처리하는지에 따라 나눌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불확실이나 갈등 상황을 관찰할 때 활발하게 기능하는 전측 대상피질의 부피가 진보 성향 참가자들에서 증가한 것은, 이들이 변화가 초래하는 불확실성과 갈등을 더 잘 견딜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추론할 수 있다. 반면에 편도체의 기능 중 하나는 공포 처리인데 편도체가 클수록 공포에 민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보수 성향 참가자는 변화의 기로에 설 때 두려움을 더 느끼며 기존 신념을 더 굳게 붙잡는 경향을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외부자극 민감, 변화에 유연한 진보성향
인간의 별명 중 하나가 호모 폴리티쿠스, 즉 정치적 동물이다. 그래서인지 정치 성향이나 가치 판단, 의사결정 등을 다루는 연구들은 매우 많고 다양하다. 그동안 교육, 민족, 종교, 소득 등 사회적 요인에서 그 답을 찾아왔다면, 최근엔 신경과학의 측면에서 정치를 바라보려는 연구, 즉 신경정치학(neuropolitics)도 눈길을 끌고 있다.
이 분야의 연구에서 제시되는 진보주의자의 모습을 먼저 살펴보자. 이들은 외부 상황 변화나 갈등에 대체로 유연한 모습을 보이곤 하는데 이는 유전자에서 비롯한 것일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2574명의 유전자 정보를 살핀 미국 제이미 세틀 교수의 2011년 논문을 보면, 진보 성향은 신경전달물질 도파민과 관련한 특정 유전자(‘DRD4-7R’)와 연관 관계가 있다고 한다. 이 유전자는 새로움을 추구하는 기질과 연관되는데, 이렇게 보면 진보 성향의 사람이 변화를 잘 받아들이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특정 유전자가 곧바로 개인의 정치 성향을 결정하진 않는다. 이 유전자를 지닌 사람들은 청소년기에 많은 친구를 둔 환경적 요소가 동반될 때에만 진보 성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외부 자극에 민감한 성향을 눈동자 반응에서 확인하려는 연구도 있었다. 2010년 미국 마이클 도드 교수의 실험결과에 따르면, 보수 성향에 비해 진보 성향의 참가자한테서 다른 사람의 눈동자가 응시하는 방향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경향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눈으로 말해요’란 말이 있듯이 인간은 눈을 통해 상대방의 마음을 짐작하며 반응하는데, 진보 성향에서 이런 경향성이 더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이런 결과는 개인의 자율성을 중시해 증세나 복지를 탐탁치 않게 여기는 보수주의자에 비해, 진보주의자는 상대적으로 외부 자극에 민감하고 다른 사람을 더 많이 신경을 쓰는 성향을 지닌다고 해석될 수 있다.
갑작스레 닥친 공포와 불확실성
진보·보수 성향따라 뇌 반응 달라
진보일수록 전측 대상피질 크고
보수일수록 편도체 회색질 비대
진보는 타인 눈 움직임에 더 예민 하지만 뇌영상으로 어찌 다 알까
적절한 해석과 활용 유익하지만
과장과 단순화는 오히려 해로워 공포·혐오 예민, 자기집단 보호 보수성향 다음으로 보수주의자의 특징에 관한 연구를 살펴보자. 앞서 얘기했듯이 이들은 공포에 더 민감한 성향을 지니는데, 이는 실제의 신체 반응에서도 확인된다고 한다. 미국 존 히빙 교수는 2008년 발표한 연구에서, 실험 참가자한테 위협적인 사진(예컨대, 얼굴에 거미가 붙어 겁에 질린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들의 피부전도 반응(SCR)을 측정했다. 우리가 공포를 느끼면 교감신경이 활성화해 몸에선 땀이 나는데 피부에 물기가 많아지면 전기 전달 속도가 빨라진다. 따라서 피부전도 반응을 측정하면 참가자가 얼마나 공포를 느끼는지 측정할 수 있다. 이 연구에선 보수 성향의 참가자가 위협적인 사진을 볼 때 피부전도 반응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공포에 대해 보수 성향의 생리적 민감도가 더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보수 성향은 혐오 같은 부정적 감정에도 민감한 모습을 보인다. 2011년 네덜란드 요엘 인바 교수는 미국인 2만5588명을 대상으로 정치 성향에 따라 얼마나 혐오에 민감한지, 그리고 2008년 대선에서 공화·민주 양당 후보 중 누구를 선택할 것인지 조사했다. 이 연구에선 혐오 자극에 예민한 사람일수록 보수 성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순수의 반대 개념인 ‘오염’이 보수 성향과 밀접한 연관을 보였는데, 오염에 대한 민감도가 높은 사람일수록 맥 케인 후보 대신 버락 오바마 후보한테 표를 던질 가능성이 더 낮은 것으로 관찰됐다. 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혐오는 예컨대 상한 음식을 먹은 뒤 생길 수 있는 전염병을 미리 피하게 하는 마음 진화의 산물로 이해된다. 이런 심리적 반응은 풍습이 다른 외부 집단에 노출되는 것을 막아 병원체 같은 낯설고 위험한 요인이 유입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 부정적 정서에 민감한 보수 성향의 밑바탕엔 자기 집단을 보호하려는 노력이 깔려 있는 것으로 풀이되곤 한다. 신경정치학 해석은 신중하게!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한국방송의 <과학카페> 프로그램에선 흥미로운 실험 하나를 진행했다.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으로 확인해보니, 민주당 지지자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사진을 봤을 때 부정적 감정과 연관되는 편도체가 활성화했다. 이는 이들이 원초적인 위협을 느끼는 것으로 해석됐다. 반면 한나라당 지지자한테선 갈등과 불확실을 처리하는 전측 대상피질이 활성화했다. 이는 당시 이 후보를 둘러싼 비비케이(BBK) 논란이 한창이었기에, 이 후보를 지지하면서도 어떤 심리적 갈등을 느끼기 때문인 것으로 추론됐다. 신경정치학 연구를 잘 이용하면 정치인은 유권자를 더 잘 분석해 맞춤형 선거전략을 세울 수 있다. 또한 유권자는 뇌의 작동 원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정치인의 선거전략에 더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앞뒤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아전인수 격으로 결론을 내릴 위험도 있다. 특히 신경과학과 관련해선 뇌의 한 영역이 한 가지 기능만을 담당하지 않는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특정한 뇌 영역이 활성화했다고 해서 이를 꼭 특정 감정과 일대일로 연관지을 수만은 없는 것이다. 신경정치학은 성과만큼이나 한계도 두드러지지만 정치적 가치와 관련해 인간 뇌가 어떻게 반응하고 의사결정을 내리는지 보여주면서 새로운 통찰을 던져준다. 마침 오늘은 6·4 지방선거 투표날이다. 정치 성향까지 신경과학으로 분석하려는 ’과학적인’ 세상에, 네거티브 광고에 넘어가거나 묻지마 지지를 던지는 ‘비과학적인’ 모습이 이번 투표에선 사라져야 하지 않을까? 최강 의사, 르네스병원 정신과장 ※ 과학웹진 사이언스온에 실린 글을 필자가 줄이고 다듬어 다시 썼습니다.
진보와 보수 성향을 띤 참가자들의 뇌는 공포나 불확실성 조건에 각기 다른 부위에서 주로 반응하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가나이 교수 연구팀 제공
진보·보수 성향따라 뇌 반응 달라
진보일수록 전측 대상피질 크고
보수일수록 편도체 회색질 비대
진보는 타인 눈 움직임에 더 예민 하지만 뇌영상으로 어찌 다 알까
적절한 해석과 활용 유익하지만
과장과 단순화는 오히려 해로워 공포·혐오 예민, 자기집단 보호 보수성향 다음으로 보수주의자의 특징에 관한 연구를 살펴보자. 앞서 얘기했듯이 이들은 공포에 더 민감한 성향을 지니는데, 이는 실제의 신체 반응에서도 확인된다고 한다. 미국 존 히빙 교수는 2008년 발표한 연구에서, 실험 참가자한테 위협적인 사진(예컨대, 얼굴에 거미가 붙어 겁에 질린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들의 피부전도 반응(SCR)을 측정했다. 우리가 공포를 느끼면 교감신경이 활성화해 몸에선 땀이 나는데 피부에 물기가 많아지면 전기 전달 속도가 빨라진다. 따라서 피부전도 반응을 측정하면 참가자가 얼마나 공포를 느끼는지 측정할 수 있다. 이 연구에선 보수 성향의 참가자가 위협적인 사진을 볼 때 피부전도 반응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공포에 대해 보수 성향의 생리적 민감도가 더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보수 성향은 혐오 같은 부정적 감정에도 민감한 모습을 보인다. 2011년 네덜란드 요엘 인바 교수는 미국인 2만5588명을 대상으로 정치 성향에 따라 얼마나 혐오에 민감한지, 그리고 2008년 대선에서 공화·민주 양당 후보 중 누구를 선택할 것인지 조사했다. 이 연구에선 혐오 자극에 예민한 사람일수록 보수 성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순수의 반대 개념인 ‘오염’이 보수 성향과 밀접한 연관을 보였는데, 오염에 대한 민감도가 높은 사람일수록 맥 케인 후보 대신 버락 오바마 후보한테 표를 던질 가능성이 더 낮은 것으로 관찰됐다. 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혐오는 예컨대 상한 음식을 먹은 뒤 생길 수 있는 전염병을 미리 피하게 하는 마음 진화의 산물로 이해된다. 이런 심리적 반응은 풍습이 다른 외부 집단에 노출되는 것을 막아 병원체 같은 낯설고 위험한 요인이 유입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 부정적 정서에 민감한 보수 성향의 밑바탕엔 자기 집단을 보호하려는 노력이 깔려 있는 것으로 풀이되곤 한다. 신경정치학 해석은 신중하게!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한국방송의 <과학카페> 프로그램에선 흥미로운 실험 하나를 진행했다.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으로 확인해보니, 민주당 지지자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사진을 봤을 때 부정적 감정과 연관되는 편도체가 활성화했다. 이는 이들이 원초적인 위협을 느끼는 것으로 해석됐다. 반면 한나라당 지지자한테선 갈등과 불확실을 처리하는 전측 대상피질이 활성화했다. 이는 당시 이 후보를 둘러싼 비비케이(BBK) 논란이 한창이었기에, 이 후보를 지지하면서도 어떤 심리적 갈등을 느끼기 때문인 것으로 추론됐다. 신경정치학 연구를 잘 이용하면 정치인은 유권자를 더 잘 분석해 맞춤형 선거전략을 세울 수 있다. 또한 유권자는 뇌의 작동 원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정치인의 선거전략에 더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앞뒤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아전인수 격으로 결론을 내릴 위험도 있다. 특히 신경과학과 관련해선 뇌의 한 영역이 한 가지 기능만을 담당하지 않는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특정한 뇌 영역이 활성화했다고 해서 이를 꼭 특정 감정과 일대일로 연관지을 수만은 없는 것이다. 신경정치학은 성과만큼이나 한계도 두드러지지만 정치적 가치와 관련해 인간 뇌가 어떻게 반응하고 의사결정을 내리는지 보여주면서 새로운 통찰을 던져준다. 마침 오늘은 6·4 지방선거 투표날이다. 정치 성향까지 신경과학으로 분석하려는 ’과학적인’ 세상에, 네거티브 광고에 넘어가거나 묻지마 지지를 던지는 ‘비과학적인’ 모습이 이번 투표에선 사라져야 하지 않을까? 최강 의사, 르네스병원 정신과장 ※ 과학웹진 사이언스온에 실린 글을 필자가 줄이고 다듬어 다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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