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박용근 교수 연구팀이 슈퍼렌즈로 촬영한 이미지. 1천만분의 1m(100나노미터) 크기의 작은 불꽃을 움직여 영문자 ‘NANO’를 일반 광학현미경으로 찍었을 때(위 사진)와 슈퍼렌즈로 찍었을 때(아래)의 영상. 카이스트 제공
기존 광학현미경보다 해상도 3배 뛰어나…100㎚ 크기 물체 관측
국내 연구진이 세포 속 단백질처럼 너무 작아서 광학현미경으로도 볼 수 없는 100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크기의 이미지를 페인트 스프레이를 이용한 ‘슈퍼렌즈’로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이 슈퍼렌즈는 기존 광학현미경보다 해상도가 3배 가량 뛰어나 초정밀 반도체 공정이나 세포 안 구조 관찰 등에 응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물리학과 박용근·조용훈 교수 공동연구팀은 17일 빛의 회절한계 때문에 광학렌즈로는 볼 수 없었던 100나노미터 크기 이미지를 2차원으로 실시간 관찰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의 논문은 물리학계 최고 권위지인 <피지컬 리뷰 레터스> 9일(현지시각)치 온라인판에 실렸다.
연구팀은 수백나노미터 크기의 구조물을 촬영하고 100나노미터 크기 점원에서 나오는 빛의 움직임을 촬영해 영문자로 ‘나노’(NANO)라는 글자의 선명한 영상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그림 참조) 박용근 교수는 연구의 의미에 대해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불빛을 쥐불놀이할 때처럼 연속적으로 움직여 글자를 만든 뒤 이를 촬영해 슈퍼렌즈가 제대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지난해 4월 박 교수 연구팀이 페인트 스프레이를 이용해 기존 광학렌즈보다 3배 가량 해상도가 뛰어난 ‘슈퍼렌즈’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데 이은 후속 연구다.
박용근 교수는 “개발된 기술은 광학 측정과 제어가 요구되는 모든 분야에서 핵심 기반기술로서 사용될 수 있다. 특히 살아 있는 세포의 구조를 촬영할 수 있어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슈퍼렌즈는 가시광선 파장 영역보다 작은 물질을 볼 수 없는 광학현미경의 한계를 극복한 것으로, 전자현미경 등처럼 물체에 가공을 가하지 않고 실시간으로 촬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 받고 있다. 광학현미경으로 물체를 관찰할 수 있는 것은 물체에서 나와 렌즈까지 온 빛을 굴절시켜 우리 망막에 맺히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400~700나노미터인 가시광선의 파장보다 작은 물체는 렌즈로 굴절시켜 상을 맺개 할 수 없어 광학현미경으로나 볼 수 없다. 전자현미경은 전자가 튀어나오는 것을 모아 상을 맺히도록 하는 원리로, 물체에 전자를 튀어나오게 하는 물질을 코팅해야 한다. 때문에 살아 있는 세포의 구조를 생생하게 찍을 수 없다.
우리가 광학현미경으로 아주 작은 나노크기 물체를 보지 못하는 것은 그 물체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 필요한 주요정보가 담겨 있는 산란광이 광학현미경까지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공중에 떠 있는 먼지를 눈으로 볼 수 없지만 깜깜한 방에 빛을 쬐었을 때 먼지가 보이는 것처럼 느끼는 것은 먼지 주변의 산란광을 볼 수 있어서다.
박용근 교수 연구팀은 흔히 사용하는 스프레이로 산란이 심한 물질(페인트)을 뿌리고 이 물질 주변에 만들어지는 근접장(산란정보)을 제어해 페인트 층을 통과한 뒤 나올 때 초고해상도 초점을 형성하도록 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소리에 비유하자면 늙어서 귀가 어두워지면 고주파 소리를 못 듣는 것과는 반대로 저주파의 경우 소리가 뭉뚱그려져 뭉개짐으로써 감지를 못하듯이, 빛의 산란광도 물체에서 멀리 가는 원격장과 가까이 머무는 근접장이 있으며 작은 물체의 경우 그 물체 주변에 근접장이 갇혀 뭉뚱그려져 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당구대에서 당구공을 특정한 방향으로 칠 경우 이리저리 튀다가 한 곳으로 빠져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빛의 위상(방향)을 조절함으로써 나노물체 주변의 산란광들이 순차적으로 전달되면서 에너지가 집적되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