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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거대 바이러스’, 생명 진화 수수께끼 열쇠일까

등록 2018-03-06 15:25수정 2018-03-06 18:04

브라질 호수와 해안 퇴적층에서
유전자 최대 1425개 지닌
세포 닮은 ‘투판 바이러스’ 발견
‘제4생명’·‘유전자도둑’ 가설 다시 관심
거대 바이러스인 투판 바이러스를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한 모습(위)과, 바이러스의 내부 구조를 볼 수 있는 투과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한 모습(아래). 출처: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Jonatas Abrahao et al.(2018)
거대 바이러스인 투판 바이러스를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한 모습(위)과, 바이러스의 내부 구조를 볼 수 있는 투과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한 모습(아래). 출처: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Jonatas Abrahao et al.(2018)
바이러스는 스스로 증식하지 못하기에 세포 생물을 감염시킨 뒤 그 생명 시스템을 이용해 복제하고 증식한다. 또한 먹고 소화하며 대사 활동을 하는 생물과 달라, 바이러스는 생물계 바깥에 놓여 구분돼 왔다. 그런데 지난 10여 년 새 바이러스와 생물 간의 경계선을 흐릿하게 만드는 새로운 존재들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보통 바이러스의 유전자 수는 손에 꼽을 정도이지만 이와 달리 수백 개 내지 천 개 넘는 유전자를 지니고 몸집도 큰 이른바 ‘거대 바이러스(자이언트 바이러스)’가 2003년 이래 발견되고 있다.

지난해 4월 세포 생물처럼 스스로 단백질을 합성하는 데 필요한 웬만한 유전자 세트를 갖춘 거대 바이러스 ‘클로스뉴’가 보고돼 관심을 끈 데 이어, 최근 단백질 합성 유전자 세트를 훨씬 더 잘 갖춘 신종 바이러스가 새로 발견됐다. 이들은 실제 단백질을 합성하지 못하면서도 단백질 합성에 필요한 웬만한 유전자들을 갖추고 있는 색다른 존재로 관심을 받고 있다.

세포 닮은 거대 바이러스, 제4생명인가? 유전자 도둑인가?

https://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791284.html

한겨레 자료그림
한겨레 자료그림
이번에 발견된 바이러스에는 발견지인 브라질 현지에서 전해지는 ‘천둥의 신’의 이름을 따서 ‘투판 바이러스(tupanvirus)’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프랑스 엑스마르세유대학과 브라질 미나스제라이스연방대학 등 소속의 공동연구진이 브라질 호수와 해안 깊은 곳의 퇴적물에서 찾아내 과학저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보고했다. 투판 바이러스는 최대 1425개 유전자를 지니며 150만 염기쌍 규모를 갖춘 거대 바이러스다.

연구진이 공개한 투과전자현미경 영상은 기이한 모습의 바이러스 구조를 보여준다. 자기 유전체를 껍질(캡시드)로 감싼 몸체는 450나노미터(nm)에 달하는데, 그 몸체에는 550나노미터에 달하는 2개의 긴 꼬리를 달고 있다. 겉모습을 모여주는 전자현미경 영상은 나사 모양의 밤송이 같기도 하다(맨위 그림).

이런 모양이나 구조보다 학계의 관심을 끈 것은 투판 바이러스의 유전체다. 연구진은 이 바이러스의 디엔에이(DNA)에 단백질을 만들 수 있는 유전자가 1275~1425개나 있으며, 특히 그중에는 단백질을 합성할 때 꼭 필요한 유전자 세트들이 거의 완비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때문에 투판 바이러스는 지금까지 발견된 거대 바이러스들 중에서 세포 생물과 가장 많이 닮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합성 공장 구실을 하는 세포소기관인 리보솜의 관련 유전자들은 다 갖추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달리 말하면, 단백질을 만드는 데 기계 구실을 할 만한 유전자 세트는 갖추고 있지만 실제로 단백질 합성 공장을 가동할 수는 없는 셈이다.

거대 바이러스는 세포 생물처럼 대사 활동과 증식하는 데 필요한 단백질을 만들어내지 못해 사실상 자신에게는 불필요한 이런 유전자 세트들을 왜 지니고 있는 걸까?

이런 물음은 지난해 4월 클로스뉴 바이러스가 발견됐을 때 이미 제기된 바 있다. 당시 연구진은 이런 거대 바이러스들이 숙주인 아메바 같은 단세포 진핵생물을 감염한 뒤 복제, 증식하며 세포 바깥으로 나올 때 그 유전자 일부를 훔쳐와 점점 몸집을 키우며 진화했으리라는 가설이 제시된 바 있다.

당시 이 연구진에 참여한 이태권 연세대 교수(원주캠퍼스 환경공학과)는 지난해 <한겨레> 보도에서 “클로스뉴 바이러스의 유전자들이 어떤 단일한 생물체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숙주 생물에서 가져온 것으로 분석됐다”는 해석을 내놓은 바 있다. 애초에 작은 바이러스가 유전자를 여기저기에서 가져와 제몸에 저장하면서 점차 몸집을 키웠으리라는 추정이다. 하지만 이런 ‘유전자 탈취’ 가설은 필요하지 않은 것은 버리는 생물 진화 과정에서 거대 바이러스는 사실상 쓸모없는 유전자들을 왜 계속 간직하고 있는지를 충분히 설명하지는 못한다.

다른 추정으로는 ‘제4의 생명영역’ 가설이 일찍부터 제기된 바 있다. 현대 생물학은 지상의 생물을 박테리아(세균), 고세균, 그리고 동식물이 포함된 진핵생물이라는 3대 영역으로 분류하는데, 거대 바이러스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제4의 생명영역”에 분류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지구 생물의 역사에서 이미 존재했던 것이 대부분 사라지고 그 일부만이 남은 것이 지금의 거대 바이러스라는 것이다. 이런 가설에도 많은 반론들이 제시되고 있다.

현재로서는 지금까지 발견된 거대 바이러스의 종이 많지 않고 많은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기에, 거대 바이러스들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언제부터 존재했는지에 관한 그 ‘기원’ 논쟁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세포 생물과 바이러스 간의 경계 지대에 놓인 거대 바이러스가 자신의 정체성뿐 아니라 세포 생물의 기원에 관한 수수께끼에 대해 무언가 새로운 단서를 던져줄 수도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에 관심 대상이 되고 있다. 오철우 선임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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