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전국의 약수, 온천수, 샘물 등을 분석해 좋은 물 지도를 작성할 예정이다. 픽사베이
지난 22일은 제27회 ‘세계 물의 날’이다. 1992년 리우환경회의가 물 부족을 방지하고 물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결의안을 발표하자 유엔이 다음해 제정한 기념일이다. 우리나라는 1990년 7월1일을 물의 날로 정했다가 1995년부터 이날로 변경했다. 인간이 이용할 수 있는 지구 위의 물은 전체의 1%에 불과하고, 그 대부분은 지하수이다. 지하수는 흙이나 암석 등 땅속의 빈 곳(공극) 안에 존재하는 물을 가리킨다. 하지만 현재 먹는 물은 지표수에서 반, 지하수에서 반을 얻고 있다.
인구가 증가하고 경제 수준이 높아지면서 물 사용량이 늘어 지하수 개발이 촉진되면서 부작용이 벌어지고 있다. 물 수요량은 인구 증가율보다 1.5배 많다고 알려져 있다. 지난 19일 서울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2019 좋은 물 포럼’에 참석한 중국 지린대 수샤오스 교수는 “중국 16개 성의 50개 시에서 지반 침하가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함께 참석한 일본 구마모토대의 준시마다 교수도 “30~40년 전 도쿄와 나고야에서 과잉 양수로 지반 침하가 일어나고 지하수위가 40~50m 낮아져 과잉 양수를 금지했다”고 전했다. 준 교수는 인구 70만명인 구마모토시의 경우 상수를 지하수로만 공급하는데 지하수 확보를 위해 농사를 짓지 않는 논에 물을 저장하도록 하는 등 물 순환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구마모토시는 이런 노력으로 2013년 물의 날에 유엔이 주는 수자원 관리 우수사례로 상을 받기도 했다. 지하수로 이 상은 받은 경우는 유일하다. 준 교수는 “구마모토에서도 농축산업 등에 의한 질산성 질소의 오염이 식용수 기준에 임박할 정도로 심각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08년부터 주민들에게 친환경 인증을 내주는 제도를 시행하고 2014년에는 물순환기본법을 제정했다. 이런 활동이 일본 안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곳으로도 확산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백화점 생수 판매장에 전시된 국내외 생수 제품들. <한겨레> 자료사진
우리의 몸은 성인의 경우 60%가, 어린이의 경우 80%까지 물로 이뤄져 있다. 뇌는 85%가 물이고 뼈도 22%가 물로 구성돼 있다. 돌처럼 딱딱한 치아조차 10%는 물이다. 하루 충분히 섭취해야 하는 물은 간단히는 자신의 몸무게에 30㎖를 곱한 양이다. 성인의 경우 대략 2.5ℓ 안팎이다. 절반은 음식으로 섭취되니 하루 1ℓ 이상 물을 마셔야 한다는 얘기다. 김지연 서울과학기술대 식품공학과 교수는 “칼슘과 마그네슘 등 물 속에 있는 미네랄은 세포의 항상성(정상성)을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칼슘 섭취가 주로 유제품을 통해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물을 통한 섭취가 비슷한 양에 해당한다. 문제는 물속 칼슘이 체내에 흡수돼 건강에 영향을 끼치는지인데, 지난해 말 이탈리아 플로렌스대 등 공동연구팀이 학술지 <뉴트리언츠>에 발표한 논문을 보면 칼슘이 많이 들어 있는 물을 3주일 동안 섭취했을 때 소변에 칼슘양이 유의미하게 늘어나 물속 칼슘이 세포로 흡수된다는 것을 입증해주고 있다. 김 교수는 또 마그네슘이 당뇨병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논문들도 최근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김 교수 연구팀은 미네랄 함량이 높은 해양심층수로 장 건강과 관련한 실험을 진행했다. 칼슘과 마그네슘이 많이 들어 있는 물을 실험실 장세포에 투여한 결과, 세포와 세포를 연결하는 융합막(tight junction) 건강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확인됐다. 병에 걸리거나 늙어 장내 융합막 세포 사이가 벌어지면 장 누수 증후군이 생기고 세균 등이 침투해 염증을 일으킨다. 김 교수는 “고령화로 생기는 생활 불편 가운데 하나가 장 건강을 잃는 것으로 물을 마시면 장으로 직접 들어가기에 미네랄이 풍부한 물로 장 질병을 예방하거나 조절하는 것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어떤 물이 좋은 물인지는 물의 용도에 따라 다르다. 픽사베이
물속 미네랄의 효능이 알려지면서 국내 먹는 물 수질 기준(경도)도 리터당 300㎎이 2011년 리터당 1000㎎으로 완화됐지만 우리나라 광천수(미네랄워터)는 화강암 지역인 서쪽 지방에서만 생산된다. 물의 경도는 일반적으로 칼슘과 마그네슘의 양으로 계산한다. 윤성택 고려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먹는 샘물과 온천수의 총용존고형물(TDS·물을 180도로 끓였을 때 남는 물질) 분포를 조사해보면 중간 부분이 비어 있다. 이는 해당하는 물이 한반도에 없다는 것이 아니라 수질 기준이 엄격하기 때문이다. 기준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생수 제품인 ‘예센투키’는 티디에스가 1만1000~1만4000㎎/ℓ에 이른다.
고경석 한국지질자원연구원(지자연) 지하수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오색·삼봉·개인 약수 등 유명 약수들은 미네랄 함량이 높은 퇴적암·석회암 지역에 많이 분포해 있다. 좋은 물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각 지역 광천수의 특성에 대한 상세한 조사·분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자연은 현재 온천 40개, 샘물 38개, 약수 97개 등 모두 176곳의 수원을 채취해 분석을 진행하고 있다. 연구팀은 2021년까지 좋은 물 수질 성분 분포지도를 만들어 배포할 계획이다. 고경석 책임연구원은 “좋은 물이라는 개념은 마실 때와 커피를 끓일 때, 맥주 등 술을 빚을 때 모두 다르다.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진 다양한 물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근영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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