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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미답의 성적으로 한때 ‘자전거의 전설’이었으나 각종 도핑 전력으로 이제는 ‘위대한 사기꾼’으로 전락한 랜스 암스트롱.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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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의 약물의 유혹, 도핑의 과학]
18화 혈액 도핑 ③ 적혈구생성인자EPO의 탄생과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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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미답의 성적으로 한때 ‘자전거의 전설’이었으나 각종 도핑 전력으로 이제는 ‘위대한 사기꾼’으로 전락한 랜스 암스트롱.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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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한 랜스 암스트롱
오프라 윈프리(이하 윈프리) : 동의해요. 제한 없이 가 보도록 하죠. 전 세계 모두가 당신이 대답하기를 기다려온 질문으로 시작할게요. 지금부터는 네 혹은 아니오가 좋겠어요, 괜찮죠?
랜스 암스트롱(이하 암스트롱) 네.
윈프리 : 시간은 많아요. 자세한 내용은 이야기 나누면서 다루도록 하죠. 일단은 네, 아니오로 대답해주세요. 자전거 타는 기량을 향상시키기 위해 금지한 물질을 사용한 적이 있나요?
랜스 암스트롱(이하 암스트롱) : 네.
윈프리 : 네 또는 아니오에요. 기량 향상을 위해 혈액 도핑이나 수혈을 한 적이 있나요?
암스트롱 : 네.
윈프리 : 테스토스테론, 코르티손, 성장 호르몬 같은 금지 물질을 사용한 적이 있나요?
암스트롱 : 네.
윈프리 : 네 또는 아니오에요. ‘투르 드 프랑스(프랑스 도로일주 자전거 대회)’에서 우승을 일곱 번 했는데, 금지 약물을 사용하거나 혈액 도핑을 한 적이 있나요?
암스트롱 : 네.
윈프리 : 당신 생각에는 도핑을 하지 않고 투르 드 프랑스를 연속으로 일곱 번 우승하는 것이 인간적으로 가능한가요?
암스트롱 : 내 생각에는 불가능해요.
윈프리 : 그렇다면 당신은 언제 도핑을 시작했죠?
암스트롱 : 네, 아니오는 끝난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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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랜스 암스트롱은 오프라 윈프리와의 인터뷰에서 오랫동안 부인하던 도핑 의혹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_0PSZ59A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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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달 작정했던 것이 평생의 연구 주제로
1955년 미국 시카고대학의 유진 골드와서(Eugine Goldwasser)는 지도 교수에게 새로운 과제를 부여 받았다. 방사선에 노출된 뒤 발생하는 빈혈의 회복 과정에 대한 것이었다. 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이 투하된 지 얼마 안 된 시대상을 반영하는 주제였다. 그는 몇 달 정도 연구하면 적혈구 생성을 촉진하는 물질을 찾고, 기존 연구에 복귀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무려 22년이 지나서야 적혈구생성인자(erythropoietin; EPO) 발견에 성공했고, EPO 연구는 평생의 연구 주제가 되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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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에서의 유진 골드와서 교수. 네이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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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는 신체 어느 기관에서 EPO를 생성하는지조차 알려지지 않은 때였다. 골드와서는 실험용 쥐의 내분비 기관을 하나하나 제거하면서 적혈구 생성 여부를 살펴봤다. 반복되는 지루한 실험 끝에 신장(콩팥)을 제거한 쥐에서 빈혈이 교정되지 않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장이 바로 적혈구를 생성하는 물질을 만들거나 다른 곳에서 만들어진 호르몬을 활성화시키는 곳이었다. 이런 발견은 만성 신장 질환 환자들이 흔히 빈혈을 겪고 있는 의료 현장의 상황과도 맞아 떨어졌다.
다음 차례는 실제 그 물질을 찾아 정제하는 것이었다. 골드와서는 200개가 넘는 단백질을 후보에 올렸다. 하지만 EPO는 매우 소량으로 존재했고, 정제 과정 중 쉽게 분해되는 어려움이 있었다. 빈혈이 있으면 적혈구 생성을 위한 EPO를 많이 만들 것으로 가정하고, 시카고 인근의 도살장을 매년 돌아다니면서 빈혈을 유발시킨 양의 혈액을 차곡차곡 모았다. 그리고 1971년 양의 혈장(血漿; 혈액에서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을 제외한 액체 성분) 470리터에서 200마이크로그램(㎍)의 EPO를 정제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순도가 낮아 추가 연구를 진행하기에는 무리였다.
동물의 EPO를 미량 얻는 데 그친 골드와서는 소변으로 눈을 돌렸다. EPO는 신장에서 생성되기 때문에 혈액보다 오히려 소변에서 EPO를 얻기 쉬었다. 하지만 소변의 여러 효소가 EPO를 비활성화시키는 문제가 있었다. 연구가 답보 상태일 때 그는 일본의 과학자 다카시 미야케(Takaji Miyake)와 협업하면서 돌파구를 찾는다. 1975년 성탄절 미야케는 시카고를 방문했고, 우아한 팔머하우스호텔 로비에서 비단 보자기로 정성스럽게 포장한 상자 하나를 그에게 건넸다. 재생 불량성 빈혈 환자들의 소변 2550리터를 모아 건조시킨 가루였다.[2] 호텔의 성탄절 장식과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그에게는 최고의 성탄절 선물이었다.
골드와서는 다시 연구에 박차를 가했다. 18개월 뒤 마침내 결실이 맺혔다. 이온 교환 크로마토그래피(chromatography; 혼합물 시료에서 매질 내에서의 이동 속도 차이를 이용해서 분리하는 방법), 에탄올 침전법, 겔 여과법, 흡착 크로마토그라피 등 7단계의 과정을 거쳐 인간의 EPO 8밀리그램(mg)을 정제하는 데 성공했다.[3] 비록 작은 시험관 하나를 겨우 채울 정도였지만 이전에 빈혈인 양에서 얻은 EPO의 40배에 달하는 분량이어서 단백질의 특성 연구나 임상 실험을 진행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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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EPO의 전기영동(electrophoresis) 분석 결과. 단계적으로 불순물이 사라지면서 순수하게 정제된 EPO(7번)를 확인할 수 있다. 생화학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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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와서는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약물 개발을 위해 암젠(Amgen)이라는 신생 회사와 손을 잡았다. 암젠의 연구원 후쿠엔 린(Fu-Kuen Lin)은 그가 건넨 시료의 아미노산 서열을 바탕으로 EPO 유전자를 찾아내 복제하는 데 성공했다. 이어서 햄스터의 난소 세포에 유전자를 삽입하는 방식으로 EPO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다. 임상 시험 후 1987년 암젠은 ‘이포젠(Epogen)’이라는 이름으로 유전자 재조합 EPO 시판에 나섰다. 골드와서의 오랜 연구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EPO는 투석을 받는 만성 신장 질환이나 암 환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이들은 신장에서 충분한 EPO를 생성하지 못하거나 항암 치료의 후유증으로 빈혈에 시달렸고, 정기적으로 수혈을 통해 혈액을 보충해야 했다. 하지만 잦은 수혈로 인해 환자들은 염증성 질환이나 체내 장기에 철이 축적되는 위험에 노출되었다. 적혈구 생성을 돕는 EPO는 기존의 문제를 모두 해결할 뿐만 아니라 환자들의 삶의 질도 현격하게 향상시켰다. 비록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골드와서의 마음도 뿌듯했다.
“EPO가 투석 환자의 빈혈을 고치는 데 얼마나 효과적인지, 그리고 반복적인 수혈을 어떻게 피하게 하는지 보고 있노라면 여전히 만족스럽습니다.”[4]
하지만 병원 밖에서는 골드와서에게 불만족스러운 일이 발생했다. 운동 선수들이 EPO를 경기력 향상 약물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적혈구를 늘려 지구력을 증가시키는 EPO는 금세 영약(靈藥)이 되었다. 매년 7월 자전거를 타고 3주 동안 프랑스 전역과 인접 국가를 일주하는 투르 드 프랑스는 어느새 경기력이 아닌 EPO의 각축장이 되었다. 1998년 대회 때 페스티나(Festina) 팀의 도우미가 EPO를 포함한 여러 약물과 주사기를 차로 옮기다가 걸린 뒤 많은 선수들의 적발로 이어진 일명 ‘페스티나 사건(Festina affair)’은 이러한 민낯을 보여 준 대표적인 사례였다.
자전거경주 선수들, 너도나도 EPO 주입 나서
매년 4월 벨기에에서 ‘라 플레쉬 왈론(La Flèche Wallone)’이라는 도로 자전거 경주 대회가 열린다. 이 대회의 마지막 구간인 ‘뮤어 데 위(Mur de Huy)’는 ‘위의 벽’이라는 이름답게 평균 9.3%, 최대 26%에 이르는 높은 경사도로 유명하다. 1994년 대회에서는 이탈리아의 게비스-발란(Gewiss-Ballan) 팀의 선수 세 명이 1~3위를 휩쓸었다. 이들의 경기력은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나머지 선수들이 좇아갈 엄두조차 못 냈다. 그나마 추격했던 선수가 1분14초 뒤에 결승점을 통과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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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라 플레쉬 왈론에서 게비스-발란팀 선수들이 마지막 구간을 전력으로 질주하는 장면. https://www.youtube.com/watch?v=oUexQc8w9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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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팀이 유례없는 성적을 거두자 도핑 의혹이 불거져 나왔다. 특히 관심은 팀 닥터인 미켈레 페라리(Michele Ferrari)에게 쏠렸다. 그가 근래에 개발된 EPO를 열성적으로 지지한다는 소문이 있기 때문이었다. 한 기자의 질문에 그는 EPO를 처방하지는 않지만 남용을 막기 위해 전문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EPO는 위험하지 않습니다. 위험한 건 남용이죠. 오렌지 주스를 10리터 마시면 위험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5]
대중의 정서를 고려하지 않은 발언은 그의 발목을 잡았다. 페라리는 팀 닥터를 그만둬야 했다. 하지만 경기력을 향상시킨 명성은 천천히 퍼져 나갔다. 다음해 그는 유명 자전거 선수들을 개인적으로 돕는 일을 시작했다. 고객 중 한 명은 1994년 라 플레쉬 왈론에서 선두보다 2분32초나 늦게 들어온 랜스 암스트롱이었다. 하지만 5년 뒤 그는 투르 드 프랑스에서 우승하며 전설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적혈구를 증가시키는 EPO는 출시 직후부터 운동 생리학 연구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수혈이 지구력을 향상시키는 것을 처음으로 규명한 스웨덴의 뵨 에크블롬(Björn Ekblom) 교수도 그 중 하나였다.[6] 그는 15명의 남성에게 EPO를 주입하면서 이들의 최대산소섭취량(VO2max; 운동할 때 단위시간당 신체가 섭취하는 산소의 최대량으로 유산소 운동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흔히 사용됨)을 살펴봤다. 몇 주 뒤 이들의 VO2max는 약 10퍼센트 상승했다. 그는 1990년 한 인터뷰에서 참가자들에게 나타난 운동 능력의 변화를 이렇게 표현했다.
“이건 마치 100미터 달리기 경주에 참가할 때 10미터 앞에서 출발하는 것과 같습니다.”[7]
1990년 국제올림픽기구(IOC)는 EPO를 금지 목록에 올렸다. 하지만 검출 방법이 없었기에 실효성이 없는 조치였다. 그 사이 자전거 선수들은 속속 EPO 행렬에 동참했고, 각종 기록은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한 예로 1980~1990년 사이 투르 드 프랑스에서 선수들의 평균 속도는 시속 37.5킬로미터였지만, 1995~2005년 사이에는 시속 41.6킬로미터로 빨라졌다.[8] 이런 경향은 가파른 오르막 경사로 유명한 ‘알프 드 에즈(Alpe d’huez)’ 구간에서도 확인된다. 1994~2008년 사이의 최고 기록 평균은 1977~1993년 사이의 그것보다 무려 4분 30여초나 단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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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2013년 투르 드 프랑스 알프 드 에즈 구간에서 최고 기록의 변화 양상. 최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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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스 암스트롱은 EPO를 포함한 약발(?)로 1999년부터 2005년까지 투르 드 프랑스를 7연패했다. 긴 기간 동안 어떻게 도핑 검사를 피할 수 있었을까? 2012년 미국반도핑위원회(USADA) 보고서를 살펴보면 암스트롱이 얼마나 용의주도했는지 알 수 있다.[9] 일단 대회 전후 검사의 경우에는 검사관이 집에 올 때 없는 척하거나 근처 호텔에 머무르면서 가능한 한 피했다. 또 대회 기간 중 검사가 불가피할 때는 미리 식염수를 주입해 적혈구 용적률(hematocrit; 전체 혈액 중에서 적혈구가 차지하는 용적)을 낮췄다.
미켈레 페라리의 의학적 도움도 컸다. 1999년 투르 드 프랑스를 우승할 때는 아직 검출 방법이 없던 EPO를 선택했지만, 이듬해 검사가 도입된다는 소문이 돌자 걸리지 않을 수혈로 복귀하는 민첩성을 보였다. 또한 소량의 EPO를 피부 및 대신 정맥 속으로 투여하면 검사에 걸리지 않는 것을 파악해 적극 활용했다. 테스토스테론의 경우에는 검사의 민감도가 높지 않았기에 역시 검사 시점을 피해 소량을 사용하는 기지(?)를 발휘했다.
암스트롱은 이외에도 같은 팀 선수들을 조직적인 도핑에 가담시켜 공범을 만들고, 자신을 반대하거나 도핑 혐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에게는 협박과 고소를 일삼으면서 압박을 가했다. 도핑 검사에 걸렸을 때는 서류를 조작해 의료목적 사용 면책을 사후에 얻거나 상급 기관에 뇌물을 제공하며 무마하려 했다. 그러나 결국 꼬리가 잡히면서 1998년 8월 이후 모든 기록은 지워졌으며, 영구적으로 선수 자격 정지라는 철퇴를 맞았다. 스포츠 역사상 가장 광범위하고 정교한 방식으로 도핑의 정수(精髓)를 선보였던 암스트롱의 불명예스러운 퇴진이었다.
골드와서와 암스트롱의 엇갈린 운명
EPO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만성 빈혈 환자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과거에는 번거로운 수혈을 통해 부족한 적혈구의 양을 늘렸지만, 이제는 간편하게 주사만으로 해결이 가능하다. 동시에 EPO는 지구력이 중요한 종목의 운동 선수들이 알게 모르게 많이 사용하는 약물이다. 적혈구가 증가하면 근육에 더 많은 산소를 보낼 수 있기에 EPO 도핑 소식은 최근에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EPO와 연관해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유진 골드와서와 랜스 암스트롱의 엇갈린 운명이다. 골드와서 교수는 EPO를 최초로 정제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학교의 무관심으로 특허를 등록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EPO를 시판한 암젠은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 들였지만 약물 개발 과정에 고문으로 참여했던 그는 금전적인 혜택을 거의 얻지 못했다. 오죽했으면 훗날 "EPO 연간 수익의 1퍼센트의 1퍼센트(0.0001%)만 있었어도 연구실에는 아주 큰 도움이 되었겠죠"라고 아쉬워 했겠는가.[10]
암스트롱은 도핑 사실이 적발된 뒤 명예뿐만 아니라 재산도 크게 잃었다. 후원사의 경제적 지원이 끊겼고, 각종 손해 배상 소송에 2500만달러가 넘는 돈을 지출했다. 하지만 2009년 개인적 친분이 있던 사업가에게 투자한 10만달러가 그를 경제적 나락에서 건져냈다. 해당 자금은 차량 공유 업체 우버에 투자되었는데, 이후 우버가 급성장하면서 투자 가치는 약 2000만 달러가 되었다.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우직했던 골드와서와 부정직했던 암스트롱이 정반대의 삶을 사는 것은 왠지 씁쓸한 장면이다.
이제까지 병원 혹은 운동장에서 EPO의 밝은 면을 살펴 봤다(물론 EPO 도핑은 불법이다). 어두운 면은 없을까? 페라리의 표현대로 EPO는 정말 오렌지 주스처럼 안전한 것일까? 1991년 EPO가 유럽의 자전거 선수 18명의 목숨을 앗아갔다는 한 신문사의 기사는 논란의 서막을 올렸다.(④부에서 계속)
최강/정신과의사∙다사랑중앙병원 원장
ironcnhoi@hanmail.net
참고자료
1. Wojchowski, D., Eugene Goldwasser (1922-2010). Nature, 2011. 470(7332): p. 40.
2. Goozner, M., The $800 Million Pill: The Truth Behind the Cost of New Drugs. 2005: p. 18.
3. Miyake, T., C.K. Kung, and E. Goldwasser, Purification of human erythropoietin. J Biol Chem, 1977. 252(15): p. 5558-64.
4. Goldwasser, E., Erythropoietin: a somewhat personal history. Perspect Biol Med, 1996. 40(1): p. 18-32.
5. Rouet, J.-M., Gewiss roule en Ferrari. L'Equipe, 1994.
http://www.cyclisme-dopage.com/actualite/1994-04-22-lequipe.htm.
6. Ekblom, B. and B. Berglund, Effect of erythropoietin administration on maximal aerobic power. Scand J Med Sci Sports, 1991. 1(2): p. 88-93.
7. Specter, M., 'Supermen' on new blood drug endanger sprots and themselves. THe Washington Post, 1990.
http://www.washingtonpost.com/archive/politics/1990/04/02/supermen-on-new-blood-drug-endanger-sports-and-themselves/88b26457-f736-44b9-b2d2-c8fe8e6b1090/.
8. Hamilton, T. and D. Coyle, The Secret Race: Inside the Hidden World of the Tour de France. 2012: p. 33.
9. Agency, U.S.A.-D., et al., U.S. Postal Service Pro Cycling Team Investigation2012: USADA.
10. Pollack, A., Eugene Goldwasser, Biochemist Behind an Anemia Drug, Dies at 88. The New York Times, 2010.
http://www.nytimes.com/2010/12/21/health/21goldwasser.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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