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유회사인 엑손에서 연구개발을 지휘했던 에드워드 데이비드 전 회장이 “현대의 첨단 과학기술은 기본적으로 수학적 기술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지적했듯이, 과학기술의 역사에서 수학이 한 역할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당장 요즘의 우리사회의 모습을 살펴봐도 수학의 역할은 크다.
전자상거래 같은 안전한 인터넷 통신에 필수적인 암호화 기술이나, 지문을 저장하고 인식하는 데 필요한 데이터 압축 기술과 신용카드의 비밀번호를 대신할 수 있다는 홍채 등 생체인식 기술의 발달은 수학의 도움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이런 기술은 국방에도 직결돼 세계 각국은 자국의 방위를 위해 많은 수학자를 고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미국 국가안전국(NSA)에는 수학 관련 전문연구원이 4천명이나 있다. 또 자기공명영상(MRI) 같은 첨단 의료장비에 담긴 영상처리 기술도 기본적으로는 수학의 기술이다. 금융기관의 위험 관리와 새로운 금융상품의 개발에도 금융수학이 활약하는 것처럼 수학의 존재는 잘 보이지 않지만 모든 첨단 기술을 지원하며 발전하고 있다.
생물학의 발전에도 수학적 기술은 점차 필수가 되고 있다. 인간게놈프로젝트(HGP)가 완성되고 사람의 유전자 수가 겨우 수만개 밖에 안된다는 것이 알려졌을 때 사람들은 꽤 의아해 했다. 그러나 유기체의 복잡성이 유전자의 ‘수’가 아니라 유전자들 사이의 ‘상호관계’, 곧 네트워크에 있다는 것을 알고는 많은 과학자들이 유전자 네트워크를 규명하려는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이미 전자공학·물리학·사회학·경제학에서 나오는 네트워크의 문제들을 풀기 위해 과학자들은 ‘그래프이론’이라고 불리는 잘 발달된 수학 이론을 사용해왔다. 하지만 매우 복잡한 생명 현상을 설명하는 데에 지금의 수학은 턱없이 부족해 새로운 수학 이론이 발견돼야 한다. 이는 엄청난 부의 창출과 직결될 것이다. 생명과학자로서 이런 현실을 잘 이해한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의 전 소장 코웰 박사는 수학자들이 폭발 일보 직전에 있는 거대한 데이터를 해결할 새로운 수학을 개발해야 한다며 수학 연구비를 5배 이상 지원하게 한 바 있다.
과학기술 선진국들은 수학 강국이 곧 기술 강국이 된다는 것을 일찍이 간파하고 산업과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복잡성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수학을 활용하고 필요한 방법론을 개발하기 위해 수학연구소를 세워 지원하고 있다. 이들 연구소가 수학의 발전에 기여함은 물론이고 여러 과학기술과 융합하여 연구과제를 도출하고 해결하는 ‘커뮤니케이션 센터’의 역할을 맡고 있다.
우리 정부도 국가수학연구소 설립을 위해 올해에 10억원의 예산을 책정했다고 한다. 비록 적은 예산으로 뒤늦게 시작하지만 시작이 반이라 했으니 무척 다행스런 일이다. 새로 세워지는 수학연구소는 해외 수학연구소들의 성공사례를 잘 살펴 국가 과학기술 혁신에 필요한 문제 해결에 큰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혜숙 이화여대 교수·수학, 와이즈거점센터소장 hsllee@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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